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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Dec 02. 2016

#52까미노데산티아고-우리의 산티아고는

-멜리데-아르수아

이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남은 거리는 52Km.  

평소처럼 걷는다면 이틀이면 가능할 거리다. 

이제 정말 목적지에 가까워왔는지, 오늘의 목적지나 내일의 목적지를 이야기하던 까미노의 사람들의 대화주제에 산티아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산티아고에는 무엇이 있다더라, 거기에 가면 이런걸 할 수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 

그 중 하나는 대향로의 이야기였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는 매일 정오 미사가 열리는데 그 중 백미는 순례자들을 위한 향로라고 했다. 이 행사는 엄청나게 큰 향로를 천정에 매달아 흔드는 건데 귀한 순례자들에게 향을 쏘여주는 축복의 의미와 함께, 옛날 옛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몇십일을 베드벅과 피부병에 시달리며 거지꼴로 걸어온 사람들과 그들에게 뿜어나오는 악취를 향연기로 정화시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 대향로는 여름 성수기(?)에는 거의 매일 나오지만 이 시기쯤 되면 매일매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요일과 특별한 날에만 매단다고 했다. 마침 이 날은 토요일, 이틀을 열심히 걸으면 일요일에도 도착할 수 있다. 만약 토요일에 40Km가까이 걸어간 뒤, 일요일 새벽에 남은 길을 출발한다면 12시 전에 성당에 도착해 대향로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비행기가 월요일 새벽에 뜨는 관계로 일요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산티아고에 들어가야 하는 J언니는 대향로 얘기를 듣자 일요일 12시 미사에 들어가겠다며 함께 대향로를 보자며 나와 신학생에게 제안했다. 그러나 며칠 전부터 ‘천천히 걷겠다’를 입에 달고 살아온 나와 신학생은 더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750Km에 가까운 길을 26일동안 걸었다. 생장에서 나눠준 안내지의 추천일정은 총 34일. 그런걸 치면 엄청나게 빨리 걸은 편이었다. 생장에서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난 빨리 걸을 필요없어', '난 좀 천천히 걸으려고'를 입에 달고 살았으면서 말이다. 평균으로 따져보면 하루에 삼십킬로미터 가까이, 그중 하루에 사십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던 날은 4일이나 됐다. 이런 언행불일치한 인간 같으니라고. 


나는 기왕 대향로를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차피 내 목적은 종교와는 관계없는 거였으니 못봐도 그리 아쉽지 않다는 생각이었고, 신학생은 보고싶긴 했지만 그래도 더이상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걷겠다는 입장이었다. 둘은 나머지 넷과 떨어져 오늘 13Km정도 떨어진 아르수아까지만 걷기로 했다. 삼일동안 하루 20Km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월요일에 여유롭게 산티아고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아쉬워하는 나머지 사람들과 떨어져 천천히 걷기 시작하는데 앞서가던 무리 중 막내가 뒤떨어져 우리와 함께 걸었다. 이 막내도 다리가 아팠는데 그동안 같이 걷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 그동안 무리했다고 했다. 이제는 좀 천천히 걷겠다며 우리 쪽으로 온 막내는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장기여행 중이라 배낭무게도 비슷하게 무거웠고  산티아고 이후 스케줄이 없는 것도 비슷한 친구였다. 


전날 멜리데에 도착할 때부터 내리기 시작했던 비는 하루종일 내렸다. 지금도 까미노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이 길을 얘기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게 비 얘기일만큼 이 길을 걸으며 비는 징글징글하게 많이 맞았다. 

처음 생장에서 구입했던 9유로짜리 튼튼하고 두껍고 무거웠던 우비는 이미 얇아져있었고 비를 조금만 맞아도 우비 안쪽으로 물이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익숙했던 비지만, 그래도 새로운 마음으로 불평을 하자 신학생이 가이드북을 찾아보고는 말했다. 

원래 갈리시아 지방은 유독 날씨변화가 심하고 비바람이 심하게 친대요. 여긴 원래 그런 곳이고, 오히려 그동안 우리가 쨍쨍한 날씨에서 걸은 것은 행운이래요. 그리고 이 우비를 쓰는 것도 이제 며칠이면 끝나겠죠.

신학생의 말로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며칠 후면 우비와는 영원히 작별이구나 생각하니 눅눅한 우비가 아주 조금은 보송해지는 기분이었다. 


비가 오는 날은 언제나 그렇듯 더욱 힘들었다. 겨우 17Km를 걸었는데도 2시가 넘어서야 아르수아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일찍 알베르게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폭우가 쏟아졌다. 알베르게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꽤 이른 시간이었는데 알베르게 안엔 한국인 청년이 한 명 있었다. 우리의 신학생이 먼저 다가가 안녕하세요, 일찍 들어왔네요 하고 말을 걸었다. 그 친구가 대답하길 알베르게에 일찍 들어온게 아니라 하루 더 묵고있는 거라고 했다. 그동안 열심히 걷다 다리가 아파 산티아고를 포기하려는 중이라며. 이제 산티아고까지 겨우 35Km를 남겨둔 이 시점에서 말이다. 

아쉬워하며 억지로 걷기엔 비행기 스케줄이 빠듯한데다 열흘 후 군입대를 남겨두고 있어 아픈 다리로 무리하기가 꺼려진단다. 조금 있으면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가방을 챙기는 청년에게 내가 말을 걸었다. 

조금 무리하더라도 천천히 걷는 건 어떻겠냐고. 이틀만 더 가면 산티아고인데 700Km를 넘는 시간을 걷고 가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지 않겠느냐, 우리가 유럽인도 아니고 이 길에 언제 다시 올 지도 모르는 일인데.  

신학생도 함께 설득에 들어갔다. 원한다면 내가 옆에서 천천히 함께 걸어주겠다고, 산티아고까지 걷고 간다면 군에서도 큰 힘이 될 거라고.  

고민하며 조금 넘어올 듯 싶던 청년은 결국 짐을 챙겨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로 떠났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대성당의 모습은 보고싶다고 했다. 안타까웠지만 결국 그것도 그 친구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었다. 이 순간에 가장 안타까운건 나나 신학생이 아닌 산티아고를 35Km를 남겨두고 돌아가는 그 친구일테니 말이다. 나중에 정말 마음에 남는다면, 22개월 후에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려서 이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아직 그에게 주어진 시간도 기회도 많을테니까. 단지 지금의 포기가 미래의 자학으로 남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청년을 배웅하고는 저녁식사를 기다리며 오랜만에 와이파이를 했다. 갈리시아로 넘어온 이후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찾기 어려워 며칠만의 일이었다. 한참을 지난 메시지와 글을 확인하다 문득 여기가 어디쯤일까 싶어 구글맵을 켰다. 푸른 점이 마지막으로 위치를 검색했던 모스크바에 머물러 있었다. 화면 상단의 탐색아이콘을 터치했다. 파란색 점이 모스크바에서 한참을 넘어와 스페인에서도 한참 서쪽으로 치우친 이곳에 도착했다. 깜박꺼리는 푸른점 뒤쪽으로 아르수아의 지명이 보였다. 그 옆으로 내가 걸어왔던 익숙한 지명이 보였다. 아르수아, 멜리데, 곤사르, 사리아... 익숙한 지명을 따라 조금씩 지도를 옆으로 옆으로 동쪽으로 이동했다.  꽤 긴 거리를 되짚어가자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과 국경 너머의 생장 피에 드 포르의 지명이 나왔다. 

매일이 비슷한 날이라 걸으면서도 잘 몰랐지만 800Km란 거리는 구글맵에서조차 꽤 긴 거리였다. 국경 너머 그 지명을 보자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단순히 걸어보겠다고 나왔을 뿐인데, 그저 매일매일 단순하게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었을 뿐인데 이만큼을 걸었구나. 나는 한국에서도 해본 적 없는 일종의 스페인 국토횡단을 해버렸구나. 

구글맵의 화면을 다시 왼쪽으로 이동시키며 다시 걸은 길을 되짚었다. 생장에서 시작해서 론세스바예스를 거쳐 다시 걸은 길을 되짚어 아르수아까지 오며, 그동안 나 정말 수고했구나 싶어 뿌듯하다가도 허탈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참, 말 그대로 길고도 짧은 한달이고, 그 사이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 순간엔 그 말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실컷 와이파이를 하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야 저녁시간이 됐다. 밥을 해먹고 비오는 걸 쳐다보고 있는데 어쩐지 우리를 따라온 막내가 우울해 보였다. 저녁을 먹을때까지만 해도 괜찮은듯 싶었는데 저녁먹고 앞서 걸어나간 동행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우울해진듯 싶었다. 

그동안 함께 걷던 사람들과 혼자 떨어져 걸으니 외로운 것 같았다. 막내가 느끼는 마음이 어떨지 짐작가기에 아무 말 없이 내버려뒀다. 이만큼을 걸어오고 이런 빗소리를 들으며 있자니 나도 A와 J가 정말 보고 싶었다. 따져보면 그들과 걸은 시간과, 지금 함께 있는 사람들과 걸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오랫동안 함께 걸어서였을까. 내 동행은 그들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함께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즐겁고, 함께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한편으론 다른 사람을 보고싶어 하고 외롭다는 마음을 갖고, 외롭다는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 지금 함께 걸은 사람에게 미안해져 결국 아무 말하지 못하게 되는 이런 건 어떤 감정에서 나오는 걸까.  


밤 늦도록 알베르게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낮부터 빨아 난롯가에 널어둔 양말도 계속 눅눅하기만 했다.  

모두 일찍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이렇게 내 산티아고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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