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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Dec 09. 2016

#54까미노데산티아고-까미노블루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었다. 이제는 걷지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오래오래 자려고 했는데 새벽에 깼다. 평소 같았더라면 일어나 침낭을 돌돌말아 정리하고 씻으러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일어나지 않고 계속 침낭 안에서 꾸물거렸다. 이젠 더 이상 배낭을 챙겨 걷지 않아도 된다.  

아침에 공항으로 떠나는 J언니를 배웅하고 피스테라까지 걸어가기로 했다는 두명을 보내고, 신학생, 막내와 알베르게 거실에 앉아 오늘의 계획을 나눴다. 천천히 준비해 순례자 증서를 받고, 성당근처에서 여유롭게 브런치도 먹고, 12시 미사도 드리자고 했다.  

그러나 다리도 쉴 겸 천천히 걸어 성당앞에 오니 벌써 열시반, 너무 늑장을 부렸던가 보다. 덕분에 아침을 못 먹을 기세다.  


전날밤 비어있던 광장엔, 관광객에서부터 시작해 이미 들어와 있는 순례자들, 지금 막 배낭을 메고 산티아고로 들어오는 순례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광장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축하해요’하며 말을 걸고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모두 환하게 웃었다.  


역시 사람이 걷는 속도는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아서일까. 배낭을 메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대체로 낯익다. 이 친구는 저쪽 알베르게에서 봤던, 저 친구는 우리와 함께 맥주를 마셨던, 이런 식으로 거의 전부터 봤던 사람들이다.  

그렇게 순례자사무실로 걷고 있는데 저쪽에 배낭을 멘 누군가가 예상치못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사리야에 가는 길에 뒤쳐졌던 L언니였다. 오전 미사를 보기 위해 새벽부터 걸어 막 도착했단다. 아마도 우리는 굉장히 늑장을 부렸던 모양인지, 언니는 이미 순례자사무실에 들러 증명서도 받았다고 하며 우리를 안내해갔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줄을 선 순례자들 틈에 끼어 한 달 가까이 소중하게 들고다니며 만나는 알베르게와 바에서 쎄요(스탬프)를 받았던 크레덴셜(순례자여권)을 내밀었다. 도장을 확인한 사무실의 직원이 '축하해요'라고 말하며 마지막 쎄요를 찍어주고, 라틴어로 쓰인 순례자증명서에 이름을 적어 줬다. 

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운 신학생이 읽으며 더듬더듬 내용을 해석했다. 고귀하고 성결하고 하는 온갖 수식어를 붙인 내가 역시 온갖 수식어를 붙인 까미노데산티아고를 걸어 거룩한 이곳에 도착했다는 말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크레덴셜을 아무렇게나 넣어가지고 다닐 때 곱게 지퍼백에 넣어(비 맞지 않도록) 다녔던 내가 그런 귀중한 종이를 그대로 둘 리 없었다. 정오의 미사를 맨 앞줄에서 드리고 싶다며 빨리 성당에 가야한다고 하는 신학생을 데리고 근처 기념품판매점에서 증명서를 넣을 함을 사고, 성당으로 향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예전에도 말했던 듯 싶은데 야고보 성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걸었던 순례길이다. 지금의 유명세와 달리 야고보의 최초의 전도여행은 실패로 끝났고 돌아가자마자 처형당해 들판 어딘가에 매장돼 잊혀졌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난 어느 날, 별들이 환하게 들판을 비추며 이곳이 야고보 성인이 묻혀있다고 했단다.  

사람들은 별들이 인도하는 대로 그 땅 위에 산티아고 대성당을 세웠고, 별들의 들판이라는 뜻이라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지명 역시 그렇게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후 시간이 지난 후 어디 있는지 몰랐던 야고보의 유해를 찾아 성당 안에 안치했고, 자신의 집에서 산티아고까지 순례를 한 번 하면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가 다 사해진다는 교황의 선포에, 온갖 동네의 사람들이 이 순례길로 모여들며 유명해진 까미노 데 산티아고가 지금까지도 이렇게 명맥을 유지해 와, 나를 포함한 전세계 사람들이 열심히 걸었던 길이 된 것이다.  

예전에는 순례자들이 걷다 산티아고 근처에 도착할 때쯤 채석장에서 자신의 죄를 상징하는 돌을 짊어지고 산티아고로 들어왔던 적도 있다고 한다. 그 돌로 성당을 증축해 처음에 조그맣던 성당이 지금의 규모로 커졌다고도 했다.  

신학생의 설명을 들으며 성당 내부를 구경하고, 야고보 성인의 무덤도 보고 자리에 앉았다. 예배가 시작하기 전 수녀님 한 분이 나와 미사 도중 함께 부를 찬송을 가르쳐줬다.  

비록 대향로도 없었고, 스페인어로 진행해 알 수는 없었지만 순례자를 위한 동네답게 순례자의 상징인 망토와 지팡이 조가비를 두른 순례자들이 나와 뭔가를 읊고, 우리가 익히 들었었던 순례자를 위한 기도문도 들었다.  

카톨릭은 아니었지만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온 신학생은 엄청나게 감동한 표정이었다. 라틴어로 된 기도문을 함께 외고 눈을 빛내며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맨 앞자리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청년이 심상찮아 보였는지 미사끝나고 신부님이 퇴장하며 신학생에게 다가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을 정도였으니.  



미사를 드리고 나와 거한 점심을 먹고 성당 앞을 걸어 둘러보았다.  

성당 앞 광장에는 여전히 우리가 얼굴을 아는 순례자들이 도착하고, 서로 축하하고, 기뻐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시 천천히 걸어 각자 볼일을 보고 장을 봐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이제 산티아고에서 내가 할 일은 다 마쳤다. 이제는 뭘 해야 하지. 


알베르게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각자 와이파이로 정보를 찾으며 이후 일정을 얘기했다. 다음날의 목적지가 나와 같거나 한두마을 정도 차이나던 동행들의 일정은 산티아고를 기점으로 아주 달라졌다. 일단 우리는 이틀 뒤 버스를 타고 피스테라를 보고 돌아온 후 신학생은 바르셀로나로, L언니는 신학생과 같은 비행기로 역시 바르셀로나로 갈 예정이었다.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글쎄, 나는, 

약 한 달 정도의 남은 일정이 백지상태였다.  


한국에서 나올 때의 내 대충 세워둔 계획은 스페인 다음에 그리스, 이집트, 터키에 가는 것이었다. 러시아에 들어갔을 때는 열차여행이 끝나면 북유럽에 가야지, 북유럽에서는 까미노데산티아고를 걸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한 달 가까이를 걸으며 내 다음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외에 없었다. 한달 동안 가장 많이 그렸던 목적지였다. 거기에서 모든 것이 끝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열심히 걸었다. 나는 산티아고 다음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계획을 세워보지,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한 달 가까이 걷고 나니 어딘가를 열심히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저 어디선가 푹 쉬고 싶을 뿐이었다. 이제 걷는 것도 질렸고, 며칠에 한 번 꼴로 버스나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은 한 달 정도 뒤의 이스탄불-인천행의 비행기티켓이었다. 남은 일정을 다 포기하더라도 어찌됐든 이스탄불까지는 가야했다. 그러려면 당장은 대도시로 가서 비행기표든 배표든 알아봐야 했다.  

대도시로 가려면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걸으면서 들은 얘기로는 마드리드보다는 바르셀로나가 훨씬 좋다고 하기에 다음 목적지는 바르셀로나로 정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며칠 있은 후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후보였던 그리스와 이집트를 기억속에 되돌렸다. 

그리스는 산토리니가 보고 싶었지만 11월의 산토리니는 비수기라 썰렁하다는 말이 걸렸다. 썰렁한 휴양지라니, 휴양지의 핵심은 적당히 걸리적거리지않을 만큼의 많은 사람들인데. 춥고 황량한 건 까미노로 족했다.  

그렇다면 이집트는 어떤가. 그 때쯤 한창 카이로에서 시위가 벌어져 누가 다쳤네, 위험하네 하는 얘기가 심심치않게 들려왔다. 고생을 사서하는 나지만 위험한 곳에 목숨은 걸지 않는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는 터라 꺼려졌다.  비록 8년 전부터 가고 싶었던 이집트라 할지라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정전중인 한국을 이집트보다 더 위험하게 본다고 할지라고.  

이렇게 된 김에 일찌감치 이스탄불로 떠나 비행기 일정을 조정해 일찍 한국에 들어가버릴까도 생각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엔, 한국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을 때를 대비해 예약변경 수수료가 싼 티켓을 골라 예매해놓고 온 참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좀 아까웠다. 다시 이렇게 시간을 내서 나오기란 여간해선 힘든 일이니까.  


막내 역시 남은 한달 반 정도의 일정이 백지상태였다. 역시 바르셀로나로 가기로 결정한 후 어디에 가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함께 나란히 앉아 계속해서 각 여정별 비행기표 가격과 이동수단을 비교 검색하며 고민에 빠졌다. 


산티아고에 도착해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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