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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Dec 14. 2016

#55까미노데산티아고-웬일인지 역까미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그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그러니까, 제일 처음 생장에서 만나 이틀 후부터 같이 걷기 시작했고, 내가 쳐지기 시작하자 자꾸 버리려는 시도를 했고, 후반부에 다시 만났을 땐 아픈 그를 내가 버려두고 왔던, 그 A의 존재를.



산티아고에 도착한날 밤. 

도착해 기쁘고 뿌듯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여기에 A가 함께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때 화가 나더라도 아픈 애를 버려두지 않고 챙겨서 같이 들어왔더라면 지금 이렇게 함께 기뻐할 수 있었을텐데, 참 좋았을텐데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산티아고 대성당 사진을 찍어 ‘난 이미 도착했음’하는 메시지를 보내자 조금 후에 답이 왔다.  

오는 길에, 레온에서 산티아고를 포기하겠다고 했던, J를 만나 같이 걷고 있단다. 그리고 자신들도 이틀 뒤 산티아고에 도착한단다.

함께 있던 사람들 모두가 내가 들떠있는 모습을 다들 알아차릴 정도로 급작스럽게 밝아졌다. 그들에게 내가 묵고 있는 알베르게 이름과 위치를 알려주고 함께 알베르게에서 만나 정오의 미사를 드리러 가자고 약속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 날 밤엔 다음 여정을 어디로 삼아야할지 검색하고 새벽이 다 돼서야 잠들면서도  내일이면 이 둘을 만난다는 생각에 약간의 흥분상태였다. 그나저나 포기한다던 J는 왜 길을 걸었던 걸까? A는 더이상 아프지 않을까?

새벽에 다시 다리에 쥐가 나 일찍 깬 상태에서도 침낭 안에서 하루일정을 계획했다. 열한시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그 둘을 데리고 성당 앞으로 가 순례증명서를 발급받고, 미사를 드리러 가고, 같이 돌아다니며 놀아야지 하는. 이틀 일찍 산티아고에 도착한 사람답게 그들을 안내해 다녀야지, 하면서 놀 거리를 계속 찾았는데 의외로 내가 이곳에 대해 알고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침낭 안에서 스마트폰과 함께 뒹굴거리다 보니 그들이 올 때까지 세시간 정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처음에 A, J와 함께 걷고부터 나는 늘, 이 사람들과 산티아고까지 같이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이 길을 걷는 중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다들 걸어서 이동하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특성상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얼굴을 익힐만큼 여러번 봤고, 그러다보면 안녕, 너 오늘은 어디가? 하는 대화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또 같이 걷기도 했다.

모두가 서로에게 호의적이었지만, 친구가 됐다, 동행이 되었다, 하는 느낌은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암묵적으로 나는 이 친구와 함께 출발하고, 함께 쉬고,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는다가 익숙해지고, 어쩌다 한쪽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기다려줄 수 있는 정도가 되면, 어쩌다 떨어져도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메모를 남겨 생사 확인을 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동행이 되었다.

중간중간 서로 버리고 헤어지고 해서 마지막엔 각자 따로 걷는 꼴이 됐지만, 마지막 순간에도, 이미 산티아고에 들어와 있는 지금까지도, 이 친구들과 함께 산티아고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엔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할 일도 없는데 슬슬 얘네들을 마중나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걸어갈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산티아고 입구너머로 가서 둘을 만나고 셋이 함께 산티아고에 들어오고 싶었다. 그냥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 나아보였다.


마중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침낭을 박차고 일어나 준비하고, 다시는 쓰지 않을 것 같던 우비를 챙겨입은 뒤 길을 나섰다. 산티아고에 들어온 뒤 다시는 걷지 않겠다던 내가 까미노를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 까미노를 시작한 것이다. 새벽에 깨 이미 로비의 테이블에서 끄적끄적 뭔가를 쓰고있던 신학생은 아침부터 다시 길을 떠나는 나를 좋게 말해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배웅해줬다.


비가 살짝 날리기 시작하는 길을 반대로 걸어 올라갔다. 새벽 일찍 길을 걷기 시작해 산티아고에 들어오는 순례자들이 보였다. 그들에게 축하한다고 끝까지 열심히 걸으라고 인사하자 밝은 얼굴로 고맙다고 하며 지나쳤다.  

산티아고의 초입을 지나쳐 다시 까미노로 접어들었다. 두갈래 길이 보였다. 산티아고에 들어올 때 밤이 늦어 주도로를 타고왔던 우리가 지나갔던 길이 아니어서 어느쪽이 까미노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잠시 갈림길에 서서 순례자들이 어느쪽 길로 나오는지를 기다렸다. 드문드문 걸어나오던 순례자들이 때라도 맞춘 듯 한동안 지나가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오른쪽 길에서 배낭을 멘 두 명이 걸어내려 왔다. 그쪽이구나 싶어 조금 올라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역까미노 중이긴 하지만 굳이 그 비를 맞으며 걸어갈 필요는 없어 그 앞 큰 건물 앞에 서서 비를 피하며 둘을 기다렸다.

비가 심하게 내려 다들 어디선가 비라도 피하고 있는 건가.  몇십분이 지나도록 A와 J는 물론 길에는 사람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마침 건물 밖으로 나오는 아저씨에게 가서 여기가 까미노 프랑세즈가 맞느냐고 물었다.

맞단다.  

맞다니 또 기다릴 수 밖에.

 

그렇게 또다시 사람그림자 없는 길을 몇십분을 기다리자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이건 분명 뭐가 잘못됐다. 다시 아까 있던 갈림길로 돌아가야겠다. 다시 길을 되짚어 갈림길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듯이 반대편 길에서 순례자들이 물밀 듯 밀려나오고 있다. 시계를 보니 A와 J가 지나갔을 것 같은 시간이다. 대체 왜 이상한 길에 들어가 바보같이 넋놓고 한시간 가까이를 낭비하고 있었던 걸까.  

자책하기 시작하며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 됐다. 길에서는 그들과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 길을 지나갔는지 아직 오지 않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급했던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혹시 한국계미국인 남자애 하나랑 여자애 하나 본 일이 없느냐며 묻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다며 지나가고, 세 번째인가 네 번째쯤 물어봤을때 할머니 하나가 내 설명을 듣다 혹시 A와 J 말하는 게 아니냐고 한다.  

걔네들은 아까 자기를 앞서 갔단다. 계속 울 것 같은 얼굴로 아, 어떡하지, 하며 거의 혼잣말에 가깝게 길을 잘못 들었다느니, 걔네는 내가 오는 걸 모르니 못 기다릴 거라고 옹알대다가 고맙다고 인사한 뒤, 다시 산티아고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큰 배낭을 짊어지고, 매일매일 걸어온 사람들이고, 나는 가방도 없는데다 어제 하루종일 쉬어 빈 몸으로 빨리 걸으면 따라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속도를 내 걸었다. A와 J의 위치를 물었던 사람들을 빠른 걸음으로 모두 추월하고도 한참을 더 걸었다.  

셋이 함께 산티아고에 들어가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그렇게 혼자 중얼대며 산티아고 입구에 들어가기 직전, 저 멀리 레온 알베르게에서 얻은 판초우의를 입고 힘겹게 걸어가는 사람과 그 옆에서 여기도 구경하고 저기도 구경하며 산만하게 걷는 사람이 보였다.  

다시 얼굴이 환하게 폈다.  

A, J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부르자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던 그들이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그대로 달려가 감격의 포옹을 했다. 그리고 도대체 너는 왜 그 곳에서 나타나는 거냐고 궁금해하는 둘에게 내 역까미노 여정을 설명해줬다. 오랜만에 만난 J와 꺅꺅거리며 감격의 상봉을 하는 동안 아까 내게 이들의 행방을 질문 받았던 사람들이 다시 내 옆을 추월해가며, 박수쳐주고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마지막엔 그렇게 내 소원처럼 셋이 함께 산티아고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걸으며 J에게 어떻게 끝까지 걷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J는 레온에서 산티아고를 포기하려는 순간 정말 힘들었단다. 힘들어 울면서 기도하던 순간, 교회에서 만난 어떤 아저씨가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걸어보라고 용기를 줬단다. 그래서 포기하려다 다시 마음을 바꿔먹고 그 다음부터는 혼자서 기도하고 걸으며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원래 스마트폰을 들고 오지 않았던 J는 혼자 기도하며 걷는 동안엔 컴퓨터가 있는 알베르게에 가도 아예 인터넷 접속 자체를 하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가 보낸 이메일을 확인하지 못해 답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거의 마지막까지 천천히 걸어오는 중에 칙칙한 우비를 입고 느리적대며 걷고있는 할아버지 같은 사람을 봤단다. 천천히 걷는 뒷모습에서 나는 아무와도 얘기하기 싫어!의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고, 그래서 ‘올라(안녕)’정도만 인사하고 지나치려고 갔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게 A였단다. 배가 아파 며칠을 고생했던 A는 막판에 예전의 나처럼 정강이까지  아파와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도 J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하며 서운했던 일을 얘기했다. A가 틈만 나면 버리고 가고 마지막엔 나한테 화도 내더라고. 쟤 참 못됐다며 투덜거리는 내 뒤에서 목적지에 다 와 기쁜 A는 그저 웃고 있었다.  

그렇게 떠드는 사이에 우리는 산티아고에 들어와 있었다.  

함께 순례자박물관도 구경하고, 순례자사무실에서 증서도 발급받고, 점심도 먹고 성당을 구경한 뒤 그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가까이 모여 서자 우리 중 누군가 ‘따뜻하다’하고 중얼거렸고, 그 말이 따뜻해 미소짓는 사이에 셔터를 눌렀다.  


전에 우리가 처음 만나 함께 걷기 시작하고 한창 선택놀이를 하던 때였다. 선택 놀이는 '만약 네가 마지막으로 식사를 해야한다면 어떤 걸 먹고 싶어?", "엄청 잘 생기고 성격 더러운 사람과 못생겼지만 정말 착한 사람이 있다면 어느 쪽을 사귈거야?" 와 같은 시간을 떼우는 질문들이었다. 그 때 J가 물었었다.  

너희들은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아들과 딸 중 어느 쪽을 원하냐고. 셋 다 대답하고 그것과 관련해 수다를 떨다 J가 말했었다. 나중에 우리 모두가 각자 아이를 낳고 그 아들들이 이만큼 자라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고, 우연히 그 셋이 만나 함께 걸으며 우리가 사진 찍었던 그 곳에서 똑같이 사진을 찍는다면 정말 재미있겠다고.


그러면 그만큼 늙은 우리들은 아이들이 찍어온 사진을 보고  

‘아, 얘 호빵씨의 코랑 똑같아’, ‘얜 A의 눈을 빼다 박았는데’라고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그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셔터를 누르는 누르는 순간 가장 행복한 얼굴로 웃으며  

언젠가는 그런 일이 생겨난다면 좋겠다 아주 잠깐 소원을 빌었다.




덧붙이는 사족: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도 까미노에서 만났던 사람들과는 연락하고 종종 만나고 있습니다^^;;;;

그 사이 J는 결혼을 했고(까미노에서 잘 됐으면 하던 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A는 세계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연애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J는 결혼한지 좀 됐지만 아직 아이 소식은 없고, A와 나는 결혼을 포기해^^;;; 아마도 우리의 바람은 이루어지기 쉽지 않을 듯 싶습니다.

엄청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될지 안 될지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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