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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Dec 16. 2016

#56까미노데산티아고-세상의 끝, 에서

-피스테라

옛날옛날, 그러니까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던 그 옛날, 스페인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의 땅 끝이 곧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단다. 여기서 서쪽으로 더 가면 절벽 끝으로 뚝 떨어져 유황불이 타오르는 지옥으로 가게 된다고 믿었던 그 끝. 피스테라, 혹은 피니스테라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아마도 그 믿음대로 fin으로부터 유래되지 않았을까 싶은 이름이었다.

아무튼, 자기네 나라의 땅끝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고 있던 그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과제를 주고 가셨고, 은유를 직유로 받아들인 까미노의 창시자이며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는 이 피스테라까지 선교하러 간 후 '말씀대로 다 하였다'며 돌아갔다고 한다. 스승의 말 대로(?) 선교를 마치고 돌아갔으나 그는 산티아고에서 처형당했고, 야고보의 복음 전파는 실패했다고 처음엔 생각됐단다.


지금이야 물론 사람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있긴 하지만, 그래도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은 순례자들 중 일부는 산티아고에서 걸어서 삼일 정도 걸리는 이곳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일명 '세상의 끝'에서 자신의 소지품을 태우며 과거의 자신을 태우고 새롭게 태어나는 의식을 갖기도 한다고 한다.  



새벽 일찍 A는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감기기운이 있다며 일찍 잠든 J는 이 날 마드리드로 가 다음날이면 미국으로 떠난다. 아침 일찍 셋이 마지막으로 작별의 포옹을 하고 나는 신학생, 막내, L언니와 함께 피스테라로 향했다.  


막내와 L언니와 함께 걸었던 사람 중 일부는 전전날, 우리가 산티아고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피스테라로 걸어가겠다며 떠났다. 물론 거기까지 걸어가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산티아고에 도착한 순간부터 걷는게 끔찍하게 싫었던 과거의 도보홀릭 나는, 급기야 하루 10Km 이상은 걷지 않겠다는 엄청나게 쓸데없지만 뭔가 묘하게 현실 가능성 있는 계획을 세운 참이었다.  

나를 비롯한 피스테라는 가고 싶지만 걷기는 싫었던 이들이 선택한 것은 버스였다. 산티아고도 그렇겠지만 피스테라는 꼭 도보로만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버스를 타고도 갈 수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교통 수단을 이용한 것은 한달 전, 마지막으로 버스를 탄 건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버스를 탄다는 것만으로 촌스럽게도 살짝 두근거렸다. 꼭 나만 그렇게 촌스러운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막내는 오랜만의 버스에 멀미했다고.

한달정도를 걷는 동안 날씨가 눈을 볼 정도로 급격히 추워졌고, 도착한 산티아고 역시 춥고 비가 내렸지만  

피스테라에 도착하자 눈 앞에 넓게 펼쳐진 바닷가에 쨍쨍한 햇살, 그리고 날도 아주 포근하다. 그리고 오랜만의 관광지 물가는 적응 안되게 비싸다. 까미노의 물가에 익숙해선지 억울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찌됐든 천천히 점심을 먹고 땅끝의 등대로 걸었다. 그곳에서 삼일전 피스테라로 걸어간 둘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릴 예정이었다.

까미노와 비교하면 턱없이 짧지만 그래도 등대까지는 꽤 걸어야 갈 수 있었다. 보이는 풍경이 어쩐지 제주도와 비슷하다는 감상평을 늘어놓던 우리는 잠깐 길을 잃어 이상한 산길을 헤매기도 하며 한참 후에 등대에 도착했다.  

바닷가 바위틈엔 순례자들이 소지품을 태운 흔적이 남아있었다. 우리 역시 그렇지 않은가. 세상의 끝에서 소지품을 태우겠다며 들고왔던 우리는 그 흔적을 만감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다, 중요한 사실을 알아챘다. 그리고 서로에게 물었다.  

그런데 우리 중에 라이터 가진 사람이 있나?

심지어 나는 세상의 끝에서 맥주를 마시겠다며 1.5리터병을 짊어지고, 종이컵까지 챙겨와 놓고, 불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 해봤다. 결국 걷고있는 둘에게 문자를 보내 오면서 라이터를 사 오라고.

그러니까 여러분, 세상의 끝에 갈 땐 불을 챙겨야...

둘이 오기를 기다리며 각자 근처를 돌아다녔다. 이곳이 ‘세상의 끝’이라 생각하니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들었다. 뭐 물론, 전날 산티아고에 도착한 A에게 바르셀로나는 하루 늦게 가고 나와 함께 세상의 끝에 가자니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온 쿨한 미국인은 시크하게 코웃음치며  

호빵씨, 세상의 끝 같은 건 없어

라고 하긴 했다만.

어찌됐든 내가 본 세상의 끝은 맑고 예뻤다. 세계의 끝이, 우주의 끝이 여기처럼 맑고 예쁘다면, 춥고 외롭고 아픈 날을 지나 한번 쯤은 끝까지 와보고 다시 힘을 얻어 돌아갈 수 있겠다, 생각할만큼.  



그렇게 멍때리고 앉아 바다를 보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산티아고에서 걸어 출발했던 둘이 도착했다. 한명은 세상의 끝을 지나 어디라도 갈 수 있을만큼 행복해 보이고 에너지가 넘쳐보였다. 우리와 인사하자마자 바위를 타고 바닷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중간에 신발이 망가지는 바람에 슬리퍼를 신고 피스테라에 도착한 P는 우리를 보자마자 울음을 쏟아냈다. 이틀동안 비만 내렸고 한달 넘게 걸은 것보다 이번 삼일이 훨씬 힘들었단다.  


둘이 진정되기를 기다려 맥주를 마시고 소지품을 모아 태우기 시작했다. 그냥 살짝 불만 붙였을 뿐인데 소지품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타버렸다. 남은 옷조각 하나도 보이지 않을만큼 깨끗하게.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동안 모두들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불길이 타오르고 사그라드는 과정을 지켜봤다.


만약 이런 정도로 아주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을까.  

새로운 나는 집착하지 않고, 좀 더 적극적으로 모든 일을 대하고, 바른 생각을 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런 바람은 지나간 일과 지나간 관계에 끊임없이 집착하고, 모든 일에 의욕없고 게으르며, 낯가림이 심하고 불친절한 자신을 굉장히 싫어하는 모습의 발현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매번 그 부분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만큼 싫어하면서도 끊임없이 그 모습 그대로 살아왔었구나.


아마 세상의 끝이 아니라 더한 곳에서 나를 버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의식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쉽게 변하지 않을 거다. 이런 곳에서 새사람이 되길 기원한대도 결국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수없이 경험해 오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내 자신은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를 소원하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인간상으로 아주 느릿느릿 한발짝씩 걸어갈 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인간은 그런 느린 발걸음으로 완성형을 향해 도달할만큼 몇천년을 사는 건 아니니까 지금보다 약간 달라진 미완성인 상태로 언젠간 죽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내가 맞을 끝은 이렇게 적당히 맑고 예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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