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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Dec 28. 2016

#59스페인-바르셀로나는,

-바르셀로나

걷다가 계속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한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보며 축하해줬던 마치 한 마을 주민같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바르셀로나에서도 이어졌다.

사람들은 산티아고 이후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로 갔는데, 이때쯤 걸었던 사람들은 주로 바르셀로나로 갔는지, A도 바르셀로나, 신학생도 바르셀로나, L언니 J언니도 막내도 바르셀로나, 지나가던 길에 자주 보던 S도 바르셀로나 뭐 그런 식이었다.

둘째날의 바르셀로나는 이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비행기를 타고 온 신학생과 L언니가 묵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같이 자고 헤어져 나왔다.

전날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구경했다는 이들은 다른 곳을 보고, 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구경한 뒤 까딸루냐 광장 삼성 광고판 밑에서 만나기로 했다.  

숙소 앞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침 일찍 나갔는데도 매표소 앞에 줄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나중에 나오면서 보니 매표소의 줄은 한참 더 길어져 있었다.  

백년이 넘는 동안 짓고 있다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까사 바트요처럼 알록달록한 맛은 없었지만 엄청난 크기의 위압감으로 맞아줬다.   

나는 성당, 특히 관광지의 성당에 대한 고정관념같은 것이 있었던 듯 싶다. 그러니까 성당이라면 어느 곳이든 고딕양식으로 지오 예스럽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어야 한다는. 그런 의미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음, 저게 정말 성당일까 싶었다. 외양도 엄청나긴 했지만 안에 들어가보니 이런 내 고정관념이 무너졌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직도 미완성의 성당. 이 성당을 설계한 뒤, 가우디는 버스에 치여 사망했고, 건축가의 죽음이후에도 설계도대로 지금도 천천히 짓고있는 중이라고 한다. 완공이... 언제라고 했더라.... 아무튼 꽤 먼 미래였다.

자연물에 모티브를 얻어 세운 건축물이라는데 마치 미래과학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기존에 있는 것들의 모습으로 100년 전의 설계로, 미래에 나올 것 같은 모양새를 만들어 내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전 날 신학생이 말했었다.  

표를 끊을 때 잘못해 입장권만 사 들어가는 바람에 전망대에 가고 싶은데 못 갔다며 안에선 전망대표만 따로 살 수 없으니 처음부터 잘 사서 들어가라고 했다.  

원래가 전망대같은 데 오르는 걸 참 좋아하는 나는, 그 충고를 잊지 않고 표를 끊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달팽이 등껍질마냥 이어진 계단을 타고 전망대를 구경했다.    

스머프마을 버섯 같기도, 과일나무 같기도, 촛농이 흘러내리는 촛대 같기도 한 성당의 외부 건물과 함께 바르셀로나의 전경이 펼쳐졌다.   

한참을 와, 멋지다를 연발하며 신나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다가 문득 '이렇게 바닥을 치던 관광의욕이 다시 생기고 있구나' 생각했다.

웬만큼 꼬인 일도 여행이니까, 하며 웃어넘길 수 있고, 새로운 곳 새로운 거리를 걸어다니는 것이 신나는 여행객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것이 바르셀로나의 위력인지, 가우디의 위력인지, 그저 타이밍의 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바르셀로나가 이미 마음에 든 나는 산책과 건축물의 힘이라고 믿기로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한참을 구경하다 약속장소인 까딸루냐 광장으로 가야했다. 새롭게 관광의욕도 솟구치는 데다, 넘치는 의욕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까딸루냐 광장까지 산책겸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바르셀로나의 위쪽, 까딸루냐 광장은 바르셀로나의 아래쪽으로, 지하철로도 네다섯 정거장쯤 걸리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오랜만에 배낭전체를 들고 걸으려니 힘들었다. 이젠 안 걷는다고 다짐한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인간이란..



그렇게 찾아간 까딸루냐 광장의 삼성광고판 앞에는 비둘기 떼들이 엄청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섭기는 하지만 이 길을 벗어나면 만나기로 한 사람들을 못 만날 것 같아 점점 차도 근처로 이동하며 비둘기의 동태는 주시하지만 그들과 눈은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 사람들이 안 왔다. 약속시간에서 한 시간이 다 돼가도록.  

연락을 할 방법이 없어 근처에 와이파이가 잡히는지 잡아봤더니 뭔가 잡히긴 하는데 15분만 쓸 수 있는 신호. 게다가 카톡은 되지 않는다. 연락을 시도해보려 무엇을 해야할까 하는데 피스테라에서 헤어졌던 막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금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는데 숙소도 뭣도 없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 있단다. 일단은 광장 앞으로 오라고 하며 여전히 둘은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사람은 안 오고 광장 저쪽에서 낯익은 S씨가 휘적휘적 걸어왔다.

이 친구 역시 까미노에서 만났던 사람. 목사님의 추천으로 이 길을 걷는다고 했었는데 함께 걷자거나 함께 놀자고 청한 적은 한번도 없는데도 늘 다니다보면 어느 순간 같이 걷고, 어느 순간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참 신기할 노릇.  

어쨌든 반가워하며 신학생과 L언니를 만나기로 했는데 한시간째 안 보인다고 투덜거리자 S씨, 아주 간단하게  

혹시 저 건너 편에 사람들 아니예요? 맞네

하고 불러줬다. 그리 넓지도 않은 이차선 도로를 두고 한시간 가량을 서로 헤맸던 거다. 서로를 길 건너편에 두고 서로 한시간 가까이를 못 찾고 있다니 이쪽도 저쪽도 참 대단하다.  

우리를 만나게해 준 S씨는 다시 가고 둘과 함께 막내를 한참 기다려 또 온갖 사정 끝에 만나고, 체크인하고, 밥을 먹고 나니 세시반이 넘어갔다.

아침에 다시 관광의욕이 솟구쳐 웬만큼 꼬인 일은 웃어넘길 수 있다고 장담했더니 바로 시험에 들게 하는 건가. 약간 짜증은 나지만 여전히 의욕 넘치는 관광객 나는 이런저런 것들도 다 그냥 웃어넘길 수 있다.  


평소같으면 이 시간에 새로 어딘가에 가느니 숙소에 들어가 자겠어라고 할 시간이지만 이 날은 신학생과 S언니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함께 람블라스 거리를 걸어 주변을 구경하고 보케리아 시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예전에 바르셀로나에 와 봤다는 A의 강력추천으로 기억하고 있는 곳이었다.  

함께 걷기 시작했을 때 한 번,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또 한 번, 이곳에 오게되면 꼭 둘러보라며 과일을 사려면 꼭 이곳에서 사라고 했었다. 채소도 생선도 안 먹는 애가 극찬할 정도의 시장이면 뭔가 굉장한게 있겠지 싶어 지나치는 슈퍼 앞에 내 놓은 과일을 사먹고 싶어도 참으며 온 곳이다.  

그런 보케리아 시장을 본 소감은 뭐가 참 많긴 한데 끝까지 얘가 왜 이 시장을 극찬한 건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면 진지하게 물어봐야겠다.  

보케리아 시장을 지나가는데 또 S씨를 만났다. S씨는 참 눈에 잘 띤다며 인사하는데 나와 산티아고에서 바르셀로나까지 함께 버스를 타고왔던 일본아이가 지나갔다. 나 쟤 본 적 있다고 얘기하려는데 이미 막내와 S씨가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좁은 까미노의 세계는 이렇게 바르셀로나에서도 이어지는 구나.  


자주 마주치는 것도 인연인데 같이 돌아다니자고 했으나 S씨는 거부하고 가버리고 우리는 피카소 미술관으로 갔다. 예전 루체른에서 갔었던 피카소 박물관 정도로 생각하고 갔는데 제법 큰 규모에 그림도 많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그림체가 휙휙 바뀌어버리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보통 피카소는 여자가 바뀔때마다 그의 그림세계가 대폭 바뀌었다고 한다. 그 변화의 폭이란 말 그대로 대폭이어서, 그림을 잘 알지 못하는 나조차도 도대체 여자가 몇명이었던 거야, 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림을 보고 나와서는 신학생과 함께 근처 성당에 가 미사를 드리고, 구경하고 다들 녹초가 돼 까딸루냐 광장 앞에서 헤어졌다.  

밤늦게 저녁도 거르고 들어오니 배는 고프지만 그렇다고 뭘 사먹으러 나갈 체력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버스타고 졸다 깨며 하루를 이동하고, 그 다음날 하루종일 도보관광에 수다떠느라 열두시 넘어 자고, 그 다음날 역시 밤늦게까지 열심히 놀았으니 나가 떨어질 만도 했다.


침대에 눕자마자 깊은 잠을 자는 것으로 둘째날의 바르셀로나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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