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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Dec 23. 2016

#58스페인-쉽고, 신나고, 꽤 멋진

-바르셀로나

예상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바르셀로나 아침의 첫 느낌은 조용하고 따뜻하고 넓었다.  

도로도 넓고 여기저기 주차되어 있는 차도 많았다. 건물은 화려하고 큼지막했다. 이제 다시 대도시구나 싶은 풍경이었다. 

아침을 먹고 짐을 맡겨둔 다음에 지도를 받아들고 앉았다. 

늘 그렇듯 아무 계획없이 와서 새로운데다, 그동안 그냥 걸어도 웬만해선 길을 잃지 않는 시골마을에 있다 갑자기 대도시로 넘어오니 뭘 봐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게다가 오랜만에 지도를 들여다보려니 낯설었다. 지도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던가. 그동안은 그냥 길바닥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었을 뿐이었다. 

잠시, 지도를 어떻게 봐야하나 고민했지만 금세 예전의 감각을 되찾고 펜을 꺼내 가고 싶은 곳을 찾아 동그라미로 그렸다. 동그라미로 가고싶은 곳을 체크하고, 그 원을 동선에 따라 구획별로 나눠 내가 돌아다닐 날짜에 맞추면 하루의 관광계획은 간단하게 완성됐다. 이제 늘 그렇듯, 계획대로 다니며 헤매고, 생각지도 못한 골목으로 들어가고 중간에 마음이 바뀌어 다른 곳에 가면 하루가 완성된다. 


산티아고에 도착한 다음부터 관광할 의욕은 모두 사라졌고, 그래서 아무런 정보를 찾을 생각 않고 왔지만, 이미 주변에 바르셀로나에 다녀온 사람들의 추천으로 갈 곳은 있었다.  

이 날의 목적지는 가우디 건축물.  

천천히 걸어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가우디 건축물을 찾아보고, 다시 천천히 걸어와 숙소에 들어가 일찌감치 쉬는 것이 이날의 전부였다.   



스페인에 오기 전, 이 나라를 여행했던 사람들이 가우디 건축물에 반했다는 후기를 심심치않게 들었었다. 스페인을 여행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목적은 가우디 혹은 축구일만큼. 

처음 내가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고민하고 있을 때 바르셀로나를 추천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유에는 꼭 가우디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 역시, 사진으로 접했던 가우디 건축물의 화려하고 창의력 넘치는 모양도 멋진데 실제로 보면 얼마나 더 멋질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 도중, 가끔 가우디가 지었다는 건물을 지나칠 때가 있었다.  

아스토르가에 있던 가우디 건물

예전 레온에서도 길 잃은 나를 알베르게에 데려다 준 노부부도 서로 의사소통이 안 돼 깊은 침묵 속에 걸으면서도 가우디가 지은 건물을 지나치자 이게 가우디가 지은 거라며 자랑스럽게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말할 정도로 그 동네 사람들은 꽤나 자랑스러워하는 듯 싶었지만 사진으로 봤던 화려한 색감도 없었고, 내가 보기엔 그냥 다른 건물보다 약간 예쁜 정도인데, 왜 그렇게 사람들이 열광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비전문가는 잘 모르지만 건축학적으로 보면 뭔가 훌륭한 건가 싶은 마음이 들긴 했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니 어디 한 번 가우디를 찾아가볼까' 하며 오랜만에 들고 나선 지도의 길을 잘못 찾아 헤매다, 길도 잘못 든 김에 쇼핑몰 구경도 하고, 시내 구경도 하고, 기념품도 좀 사고, 오전내내 딴 짓하며 돌아다니다 까사 칼벳에 도착한 순간, 그동안 가우디를 우습게 알았던 자신을 반성했다.  

미안해요. 가우디 아저씨.  

당신이 그렇게 멋진 건물을 만든 사람인 줄 몰랐어요.  


다음에 찾아간 까사바트요는 더 멋졌다.  

알록달록 예쁜 타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해골모양의 발코니며 곡선으로 휘감아놓은 저 창틀이며 저런 걸 만들 생각은 어떻게 했던 걸까. 마치 완역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을 때처럼 알록달록하며 기괴하지만 멋졌다. 

이 사람 혹시 건물 스케치할 때 약이라도 했던 걸까, 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가우디 소개를 들어보니, 어릴 적 신부가 되려고 맘 먹었던 신앙심 가득한 가우디 소년은 병약해 학업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였고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 왕따당하는 똑똑하지만 약한 소년이었단다. 그때 혼자 놀면서 건강을 위해 자연을 벗삼아 지냈는데 그 때 접했던 자연물들이 나중에 건물을 설계하는데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가우디의 건축물은 자연의 형태를 기반으로 삼았기에 직선과 규격화된 모습이 아니라 곡선의 형태와 나뭇가지 모양의 기둥 같은 자연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또 끝까지 신앙심이 투철했던 가우디는 건물주의 의견과는 관계없이 자신이 짓는 건물 옥상엔 무조건 성모 마리아상을 둘 만큼 끝까지 종교를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와, 멋지다 하며 까사 바트요 앞을 서성대고 있는데 '저기, 사진 좀 찍어줄래?' 하며 말을 걸었다. 사진을 찍어주고, 카메라를 돌려주며 자연스럽게 '여기 엄청 멋지다.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아' 하고 말했다. 까사바트요는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라도 감상을 말해야 할 것 같은 곳이었다. 

친구의 추천을 받아 이곳에 처음 왔는데 정말 예쁘다며 친구가 저 안에 꼭 들어가보라고 추천했다며 너도 들어갈 거냐며 물었지만, 겉에서 본 건물에 압도되어서였는지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난 겉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 하며 돌아왔고,

까사 바트요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도 후회로 남아있다. 

들어가볼 걸 그랬어...

다음으로 찾아간 까사밀라 역시 곧 대리석이 녹아 흘러내릴 듯 곡선의 형태가 멋진 곳이다. 전에 신학생이 대리석은 무른 돌이라 가공하기 좋다고 한 적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돌인데 어떻게 저렇게 빚어낸 듯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눈 앞에 신기한 것들이 자꾸 나타나니 잠시도 심심할 틈이 없었다. 한 건물을 보고, 그 다음 건물로 가면 갈 수록 가우디의 다음 건물이 궁금해졌다. 

이렇게 걷고있을 때였다. 저멀리 막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올라’하며 손을 흔들었다. 주변에 관광객도 많은데 콕 찍어 내게만. 까미노에서는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올라' 혹은 '부엔 까미노'하면서 인사했었다. 그 때의 습관으로 자연스럽게 ‘올라’하며 인사한 뒤 생각해보니 저 할아버지는 왜 내게 인사한 걸까 싶었다. 나는 이제 배낭에 조가비도 안 달고 있고, 관광객처럼 보이겠다며 청바지도 입고 나왔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그 할아버지 역시 바르셀로나의 수많은 배낭여행객들과 그리 다를 바 없는 큰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왜 딱 보자마자 산티아고에서 온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걸까. 일찌감치 바르셀로나로 떠났던 J언니가 메시지를 보내길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까미노 사람들과 때깔부터 다르다고 했는데, 한달동안 걸으며 꼬질해진 외모 때문에 티가 나는 건가. 

이 의심이 더 짙어졌던 건 이후 다른 나라에 갔을 때였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첫마디는 늘 ‘장기여행 중이시죠?’였고, 그제서야 까미노 한 달은 사람을 여행자의 외모로 바꾸는 구나 생각했다. 지금도 그때 사진을 보면 안그래도 가무잡잡한 피부가 새까맣게 타서 눈만 반짝거리며 있는 모습이 여행자였구나 싶다.  

앞으로 하루에 10Km 이상을 걷지 않겠다에 이어, 좀 더 노력해 관광객스럽게 돌아다녀야겠다(?)는 쓸데없는 의지를 불태우며 구엘공원으로 향했다.  

지도에 공원이라니 조그만 공원 앞에 가우디가 만들어 둔 상징물 정도만 있겠지 싶었던 것은 오산. 엄청난 규모의 공원전체가 가우디 건축세계를 압축해 놓은 듯 예뻤다.  

그렇게 예쁜 공원이라면 한참을 걷고, 한참을 앉아서 쉬고, 간식도 좀 먹으며 놀고 싶었지만,  

대도시와 공원이라면 빠질 수 없는 생물체,  내가 지독히도 무서워하는 그 생물체(라 쓰고 비둘기라 읽는)가 공원 이곳저곳에 집을 짓고 포진해 있으며 위협적인 날갯짓을 하며 밀어냈다.  

흑, 구엘공원은 멋지지만 비둘기 공포증을 극복하거나, 이 공원에서 비둘기가 멸종하거나, 비둘기를 쫓아줄 동행과 함께 하지 않는 한 다시 오진 못할 듯 싶다.    



가우디 건축물을 산책하며 구경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갔다. 아직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구경도 못했는데.  

이제는 쉬자며 숙소에 파김치가 되어 도착하자마자 곧 에스파냐 광장 근처에서 분수쇼가 열린다는 정보를 얻고언제 파김치가 되었냐는 듯 생생히 걸어나가 분수쇼를 구경했다.  

음,  

분수쇼는 11월에 가디건만 걸치고 다녀도 따뜻한 바르셀로나에서조차 여름에 보는 거고,  혼자서 보는 게 아니라는 것이 그날의 깨달음.  

그렇게 추위와 외로움에 떨며 분수쇼를 보다 중간에 포기하고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이것이 관광의욕상실로 집에 돌아갈까를 고민하던 나의 바르셀로나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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