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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Jan 06. 2017

#62이집트-어쩌면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을지도

-바흐리야 사막

보통의 기준이란 자신이 사회 어느 부분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다르고, 누군가는 내가 보통 이상으로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는 내 주변은 보통의 평범함 그 자체였다. 태어나고 자랐던 곳은 인접해 있는 두개의 동 범위 안에서였다. 그 곳을 번갈아가며 자랐던 나는 걸어서 30분 정도 안의 두 동네에서 거의 모든 삶이 이루어졌다.  

나름 광역시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다른 곳에 비하면 평화부심을 부려도 될만큼 조용하고 한적한 환경이었고 특별하게 부자인 친구도 특별하게 가난한 친구도 없이 다들 적당히 빚을 얻어 적당한 평수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집의 첫째나 둘째 정도였다.  


사업가, 방송인, 국회의원, 대기업간부, 디자이너, 예술가 등  

TV뉴스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은 주위에 거의 없었고, 중 고등학교 때 그러한 직업군을 동경했던 친구들도 때가 되자 적당히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하고, 때가 되면 취업해 비슷비슷한 회사를 다니고, 평균 초혼연령대를 살짝 넘긴 나이에 결혼해 적절한 때 아이를 가지고 행복하게들 살았다.   


모든 가정에는 각자의 문제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법이니, 평범해 보이는 가정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각자의 추문과 막장드라마 못지않은 소재를 하나쯤은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 TV의 막장드라마처럼 한 사건이 또다른 큰 추문을 불러일으키거나 만천하에 까발려지는 일 같은 건 없었다. 적당히 쉬쉬하다 몇 사람 쯤의 입을 거쳐 들려올 때면 그것은 미디어만큼의 자극적이지도, 흥미있는 소재도 아니었다.   



뿐만 아니었다.  열아홉살 이후 내가 강렬하게 원했던 것들은 대체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빈자리는 내가 눈도 주지 않았던 삶이 채웠다. 원하지 않던 삶에 저항하다 결국 그 삶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바라게 되면 원하는 것 대신에 또 다른 일로 새로운 삶을 채웠다. 마치 화려한 마론인형을 꿈꾸는 아이에게 한땀한땀 바느질해서 만든 수제인형을 선물해주는 것처럼.  


아마도 그래서였는가보다. 미디어에 흔하게 펼쳐진 강렬하고 자극적인 세계는 항상 현실과 어느 정도 괴리가 있었고,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그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더라도 그건 책장 너머, 브라운관 너머의 세계일 뿐 결코 현실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 하더라도 무의식 깊은 곳에선 그런 한계를 지어놓고 살았던 것 같다.  

얼마든지 현실가능할 법한 이야기지만 나와 내 주변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 그 것은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내 생활 전반을 지금까지 지배해오고 있었다.  



처음 여행을 계획했을 때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더라면, 누군가 그곳에 다녀온 적이 없었더라면 움직일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다. 좁은 두 동네에서 평생을 산 사람답게 나는 다른 세계를 보고 싶다는 열망과 동시에 안전한 일상을 해치는 일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함께 했다.   


물론 위험과 고생의 문제는 별개이므로 지금까지 개고생을 하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산티아고 길을 걷고, 몰려드는 수많은 삐끼들을 물리쳐 왔지만 동행이 없으면 해가 저물기만 해도 밖에 나가지 않았고, 낯 모르는 사람이 원하지 않는 친절을 베풀 땐 경계부터 했고, 맥주를 좋아하지만 취하지 않을 정도로 조절했고, 처음 몇 번은 실수했지만 배낭 안엔 이틀치 정도의 먹을 것을 챙겨 넣어 다니고 때때로 부족해지기 쉬운 채소도 사먹어 가며 여기까지 왔다.   

만약 내가 여행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면,

나는 죽기 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꼭 타보고 바이칼 호수를 보고 순례길을 걷고 이집트에 가야겠다라고 생각했다면 어쩌면 이 곳에 오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 마음을 먹었다면 나는 누구도 가지 않았던 곳에 가려는 계획을 세웠을 거고, 관광이 아닌 여행을 부르짖으며 좀 더 극적이고 위험한 상황을 찾으려 했을 것 같다. 그러다 생각만으로 지쳐 포기하고 말았겠지.  


내가 갔던 바흐리야 사막은 여행객들이 오는 대부분의 사막처럼 관광지였다.  

사막에서 썰매를 타고 오아시스와 대추야자농장을 구경하고 낙타를 구경하고(돈을 더 주면 낙타를 타고 투어하는) 사막의 이곳 저곳을 구경한 뒤, 저녁엔 사막 한 가운데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일인당 십만원 남짓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관광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삶의 공간이 아닌 그 곳은 아름다웠다.  

단단해 보이는 모래바닥은 발자국 모양대로 패였다.  

맨발에 닿는 사막모래는 새로운 느낌이었다.  

사막에 난 우리의 발자국은 바람이 불면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을 지웠다.   

바람에 먼지처럼 날리는 모래로 옷이 희뿌옇게 먼지투성이가 되고, 사구에서 썰매를 타다 몇 번쯤 굴러 모래알갱이가 온 몸에 붙었지만, 그것도 신났다.  

오아시스도  

대추야자도  

낙타도  

크리스탈 사막과,  

흑사막,  

우리는 잘 모르겠지만 현지인에게만 보이는 길을 따라 도착한 곳에서 본 해가 지는 모습도 모두 처음 보는 새로운 광경이었다.    

해가 마치 진공청소기에라도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급속도로 뚝 떨어지더니 곧 달이 뜨기 시작했다.  

우리를 이곳에 실고 온 가이드는 분주하게 텐트를 설치하고 조리도구를 꺼내 밥을 짓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날은 깜깜해지고 완전한 보름달이 떴다.   

보름달이 그렇게 밝다는 것은 그 날 처음 알았다.

사막위의 달빛은 마치 가로등처럼 밝았다. 그렇게 많다는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별이 보이지 않아 관광객들이 잘 오지 않는다는 보름밤이라서였는지 주변에 야영을 하고 있는 팀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넓은 모래벌판에 우리텐트 하나만 서있을 뿐이었다.  


가이드가 어느새 모닥불을 지펴놓고 밥을 먹자며 우리를 불렀다. 모닥불 위에 구운 닭과 닭육수로 지은 밥을 잔뜩 먹고, 맥주를 한 캔 따들고 모닥불가에 옹기종기 앉아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수다떨고 있는데 저 멀리서 사막여우가 한 마리, 두 마리 다가왔다.   

사막여우에게 남은 닭다리며 고구마를 던져주고, 맨발로 모래장난을 하며 모닥불 옆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되돌아 보다가 살면서 가졌던 수많은 위시리스트를 떠올렸다. 그 중의 한대목엔 사막을 보는 일이 있었다.

상상했던 세부 모습은 다르지만, 그러려고 마음먹고 한 일도 아니었지만, 내가 하고싶던 일을 하나 한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수없이 많고, 그 것을 모두 이뤄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졌지만, 오늘 아침에 일어나면 무슨 일을 할까하는 것에서부터,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 하는 결정의 순간엔 무의식의 위시리스트가 기억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이끌어왔던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언젠가 타고 싶었던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탔고, 언젠가 가고 싶었던 북유럽에 갔으며, 하루종일 지칠 때까지 걷기만 하는 일을 해봤고, 사막에 와 있었다. 특별한 생각없이 그저 집을 나와 돌아다니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었다.  

괜히 거창한 목표를 세워놓고 무리하다 제풀에 지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이렇게 한가지씩 원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모닥불에 구운 닭고기도, 맛있는 밥도, 맥주도 사막여우도 함께 했던 보름달 뜬 멋진 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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