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빵씨 Jan 11. 2017

#63이집트-나는 귀가 없습니다

바흐리야사막-룩소르


평화로운 사막의 하룻밤은 금세 지나가고, 모래너머로 해가 뜨기 시작했다. 씻어도 완전히 떨어지지 않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 어디선가 나오는 작은 모래알갱이들이 몸에 붙어 서걱거렸다. 이제 다시 카이로로 이동했다 야간기차를 타고 룩소르로 이동해야 할 때다.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나니, 단 하루 겪었을 뿐이지만 다시 돌아온 카이로는 사막과 대비돼 한층 더 수다스러운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갑자기 볼륨이 최대치로 켜진 TV처럼 떠들어댔고, 그 번잡한 소음과 복잡한 길에서 얼빠진채 머뭇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래도 이제 룩소르만 가면, 하는 마음으로 야간열차를 타고 룩소르로 향했다.  

카이로에서 외국인이 끊을 수 있는 기차는 1등석과 침대차뿐이었다. 이집트는 일관되게도 모든 분야에서 외국인 요금과 내국인 요금이 달랐는데 기차라고 예외일 리가 없었다. 

1등석 열차는 우리나라 새마을호 같은 분위기였는데 처음엔 괜찮았지만 나중엔 추워졌다. 마치 냉동창고라도 탄 듯했다. 여기에 처음 표살 때 멋모르고 강매당했던 기차 안 식사는 식어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룩소르로 출발할 때 나는 그랬었다. 

이미 다시 접한 반나절의 카이로에서 호객과, 흥정과, 뻔히 보이는 바가지와, 혼자인 동양 여자 여행객을 우습게 보는 태도에 질려 마음을 다잡았다. 내 이집트의 사람들에게 절대 속지 않고, 동양인 여자라고 아무도 날 우습게 보지 못하도록 깐깐하고 센 태도를 유지해야겠다고. 그 첫걸음으로 룩소르의 숙소에 들어갈 땐 방도 꼼꼼히 보고 가격도 따져가며 들어가야겠다고. 


그러나 막 3개월차로 접어드는 배낭여행객에게 이집트인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어쩌면 평생을 관광객을 상대로 살아온 사람들을 이기겠다는 발상 자체가 순진했을지도.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룩소르역에서 만난 호객꾼을 따라 호스텔 사무실에 앉아 아랍어밖에 할 줄 모르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그들에게 팔라펠을 얻어먹으며 아랍어가 나오는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나는 이 호스텔에 방을 잡았고 다음날 투어프로그램을 예약하고, 기차표 대행구매를 부탁하고 있었다. 

뭐, 이렇게 된 이상 마음을 비우고 다른 곳을 알아보지 않아 바가지를 썼을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하던 금액과는 그닥 차이는 없었다. 이곳에선 스마트한 소비자가 될 수 없다면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더 이상 알아보지 않는 것도 정신건강을 위해 바람직한 듯 싶다. 그러나, 만만하지 않은 여행자가 되겠다던 내 다짐은 어디에.

   


룩소르에서 관광할 수 있는 날은 이틀,  

유적과 유적 사이의 거리가 멀어 혼자 다니기 힘들다는 서안은 다음날 투어로 돌고, 유적과 유적의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동안은 천천히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누군가 하나쯤은 동행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짐을 풀고 숙소를 훑어보았지만 이미 관광을 떠나버렸는지 아무도 없었다. 별 수 없이 혼자 길을 나서야 했다.  


약간 걱정스럽긴 했지만 아직까지 사막의 여운이 남아 ‘이집트 좋아’를 말하던 나였던지라 이미지가 깎이면 얼마나 깎이랴 싶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아주 완전히. 

완전히라는 단어에 백정도 곱한 느낌으로.  

카이로에서도 사람, 특히 남자들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계속 말을 걸면서 다가오곤 했었다. 그래서 멋모르고 첫날 첫 번 일반 지하철칸을 탄 이후로 부자연스러운 관심에 놀라 다음부턴 무조건 여성전용칸을 찾아서 타곤 했었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꾸해줬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람들이 이러는 것은 어쩌면 외국인에 대한 관심이나, 장사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뭐랄까, 그런 관심보다는 좀더 끈적한 무언가가 그들의 뒤에 있었다. 

카이로에 머물렀던 시간이 짧아 그런 의심만 가지고 끝나버렸다면 룩소르에서는 의심이 의심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단적인 예로, 나는 이 날 룩소르부터 이집트를 떠날 때까지 혼자서 5미터 이상을 걸어본 일이 없었다. 동행을 구하지 못한 날도 꽤 있었는데 말이다. 몇 발짝을 걸으면 호객꾼이 달라붙어 낙타를 타라, 마차를 타라, 펠루카를 타라며 끊임없이 호객해왔다. 

뭐, 기회가 된다면 나일강에서 펠루카(돛단배)정도는 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호객꾼들의 태도는 사람을 질리게 하고 곧이어 이집트까지 정 떨어지게 하는데 큰 몫을 했다. 처음엔 뭘하라고 따라붙던 호객꾼은 거부하자 다음 목적을 들이대며 끈질기게 따라왔다.  

그들의 다음 목적이란, 참 어찌나 시나리오가 다들 동일한지,  

어디서 왔냐, 남자친구는 있냐로 시작한 질문은 ‘있다’는 대답에 ‘네 남자친구는 참 행운이다’라는 말로 이어졌다. 영혼없이 나도 걔가 좀 행운인 것 같다고 대꾸하니 '네 몸이 참 예뻐서'라는 대답으로 받는다. 눈도, 코도, 얼굴도, 손도, 신체에는 수많은 기관이 있지만 콕찝어 몸이 예쁘다고 하는(이 글을 읽는 분들이 착각할까봐 말해두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이집션들의 센스란.  

그리고는 이집션 남자친구는 추가로 더 필요없냔다. 이집션들은 매우 크고, 잘 한다고(그들이 발음했던 특정단어는 임의로 삭제했지만, 당신이 상상하는 그것, 맞다).  헐, 하는 눈빛으로 됐다고 하는데도 끊임없이 달라붙었다. 자기에게 키스해주면 펠루카(혹은 낙타 혹은 마차)를 그냥 태워준단다.  

됐다며 걷는데 이번엔 자기네 집에 놀러오란다. 그쯤 돼선 대꾸할 필요도 못느껴 안 들리는 척 걷고 있는데 뭐 이상한 생각하고 초대하는 것 아니라고, 그냥 네가 여동생 같아서 그러는 거라고. 속으로 헐,을 몇백번씩 되뇌며 됐다고 나는 그냥 나 혼자 걷겠다고 겨우 떼어놓으면 몇발짝 못가 다음 호객꾼이 똑같은 시나리오로 달라붙는 방식이다.  

어쩌면 그렇게 대사들도 같은지. 마치 누군가 '외국인에게 작업할때 쓰는 영대사'를 적어줘 다함께 외운 느낌이었다. 


가끔은 호객꾼이 아닌 일반인이 말을 걸 때도 었었다. 장사하는 느낌은 아니라 말을 몇 마디 붙여줬더니, 자기는 카이로 대학교 학생이라든지, 어디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다든지, 내가 확인할 수 없는 자신의 신분을 대며 끊임없이 따라오며 자기랑 놀자고, 자기네 집에 놀러가잔다. 나는 그저 혼자 걷고 싶을 뿐이라며 걷는데 끊임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쫓아오며 생수를 마시라며 건넸다.  

그를 피하기 위해 길가 찻집에 들어가자 외국인 가격과 이집션 가격은 다르다며 자신과 함께 들어가면 이집션가격으로 마실 수 있다며 함께 가잔다. 외국인 가격이 백배라도 너랑은 차를 마시기 싫다며 들어가 시킨 요거트.   

아마도 이집트에서는 알파벳 활자판은 금으로 만들었는지, 영어로 뭔가를 인쇄하려면 금액이 엄청나게 비싸져서 내국인과 외국인의 가격을 차별해 받기로 했나보다. 아, 정말이지 이집션들의 패기란, 영어 메뉴판 바로 뒤에 똑같은 메뉴로 추정되는 아랍어 메뉴판을 적어뒀는데 더듬더듬 같은 메뉴를 매치해보니 가격이 반절 이하다. 뭔가 기분은 좋지 않지만 어찌됐든 잘 마시고 계산도 잘 하고 나오려는데 주인이 뜬금없이 키스를 해달란다. 이집트에선 원래 그러는 거라며. 이 인간들이 단체로 약을 처먹었나 싶었다. 그 날 만난 모든 이집션들이 그렇듯이 이들은 단호히 ‘노’를 외쳐도 끈적거리며 달라붙었다.  


그런 주인을 떼놓고 그날 몇십번째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나는 그저 혼자 걷고 싶을 뿐’을 외치며 나오는데  

문득 카이로 첫날 나를 버스터미널에 데려다줬던 귀인아저씨가 생각났다. 이상할 정도로 거리를 유지하고 통역까지 다 도와준 다음에 표 사는 사이에 건물 밖으로 나가 기다리던 그 모습. 그땐 그냥 특이한 사람이네, 정도였는데 이 날을 겪으니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귀인 아저씨는 그저 자신의 행동이 100% 친절에서 우러나왔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다. 



바깥은 그렇다치고, 그렇다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해서 더 이상 호객꾼이나 기타 일삼아 관광객에게 달라붙는 사람들이 없는 유적지는 어떠한가.  

룩소르 신전에 입장해 사진을 찍고 있는데 관리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나타났다. 그리고 친절하게 나를 데리고 다니며 여기서 사진을 찍고, 저기서 사진을 찍으라며 안내해줬다. 룩소르신전의 곳곳엔 출입금지 표지판과 함께 줄이 쳐있었지만 이 아저씨는 그 모든 것에 개의치 않고 마구 지나쳐 줄 너머에서 얼른 넘어오라며 나를 불렀다. 이분은 말로만 듣던 뒷길의 가이드(혼자나 둘정도 온 관광객들을 뒷길로 데려가 관람금지의 유적을 구경시켜주고 팁 명목의 돈을 요구한다. 이 사람들은 이래보여도 진짜 그 유적지의 관리인임)였다.   

한참 그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그가 내 카메라를 뺏어들고 내 사진도 찍어주며 신전을 구경했다. 내 기분엔 떳떳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이 아저씨들에게는 그것이 일상인지 누구를 만나도 피하는 기색 없이, 당연스럽게도 이곳저곳을 누비며 돌아다녔다. 적당한 팁을 줬는데도 떠날 생각을 않더니 사진을 한 장 찍어달란다. 그러더니 얼굴을 내 얼굴 1센티미터 옆으로 근접시켜 셀카를 찍었다.   

카이로에서의 소란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으아아아아'하는 비명에 가까웠다. 이건 뭐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는 듯 정신 못차리고 휩쓸려다니며 지르는 비명. 룩소르에서의 이 모든 일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헐,'이었다.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게 되는 쪽이었다. 

 


전혀 친하지 않았지만 절친처럼 관리인 아저씨와 셀카를 찍은 뒤, 헐, 이 나라는 대체 왜 이모양인걸까를 생각하며 무더위와 사람에 지쳐 카르낙 신전에 도착해서는 맥빠져 앉아있을 때였다. 

히잡을 쓴 꼬꼬마 무리들 한떼가 지나가다 나를 발견하고는 쭉 둘러서서 동물원 원숭이를 보듯 구경했다. 쟤들은 왜 날 구경하는 것일까 싶었지만 이미 지쳐 그대로 벽에 기대 앉아있었는데, 이번엔 한 아이를 시작으로 마구 사진을 찍어댔다. 그 중 몇 명은 용감하게(라는 느낌으로) 내 옆자리에 앉아 V자를 그려가며 사진을 찍는다.(물론 허락은 받지 않았다)  

이건 아주아주 좋게 말해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느낌이랄까.  

그렇게 한 오분여를 꼬꼬마들에게 사진을 찍히다 뭔가 억울할 생각이 들어 나도 카메라를 들었다. 너희도 내 사진을 찍는데 나라고 내 사진을 찍는 애들을 찍어야하지 않겠는가 싶어서.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히잡을 쓴 꼬꼬마들은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도망가거나 카메라렌즈를 손으로 막았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찍으면 안 된단다.  

뭐 이런 거지같은 경우가.   



그렇게 하루 관광을 마치고 나자 육체와 정신 모두가 지쳐 숙소로 걷는데, 또 펠루카를 타지 않겠느냐며 호객꾼이 붙었다. 지쳐 ‘노’만 외치며 걷고 있는데 역시나 그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새 다음 단계로 넘어가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 

.....

"이집트 사람들 어때?"

그 질문엔 정말 할 말이 많았지만 이를 꽉 깨물고 최대한 순화해서 말해줬다.  

몇몇은 좋지만, 나머지는 엄청나게 짜증나. 

내 대답에 그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되받았다. 

뭐, 인생 살다보면 다 그런게 아니겠어? 좋은 일도 있지만 짜증나는 일도 있지. 

어이, 막 성희롱 하려는 주제에 인생같은 거 논하지 말라고! 하는 맘이 굴뚝처럼 솟아올라 남자친구가 있냐며, 이집션 남자친구는 어떻냐며 익숙한 대사를 쏟아내는 그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잠깐 바라봤지만 이내 체념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 이 나라에 멋모르고 혼자 온 내가 참아야지. 

그리고 그 후론 쭉 옆에서 뭐라하든 대꾸없이 걸었다.  

그러니까,  

나는 귀가 없습니다, 하는 기분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62이집트-어쩌면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을지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