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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Jan 13. 2017

#64이집트-오래전 낡고 부서진,

-룩소르

이 여행으로부터 8년전 첫 유럽여행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들른다는 대영박물관에 나 역시 들렀다온 적이 있다.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아침부터 나가 하루종일 유물을 구경하고 무거워진 다리로 파김치가 되어 나오면서 제일 먼저 가졌던 생각은  

그래, 이집트에 가야겠어.

였다.  

그 전까지 세계사책 초반부에 슬쩍 훑어보고 말았던 이집트가, 파라오를 소재로 한 소설책에서나 봤던 그 곳이, 사진으로나 패브릭 무늬로만 봐왔던 이집트 유물이나 벽화, 미라나 상형문자 같은 것들이 쇼케이스 안에서 어찌나 매력적이었던지.


그로부터 8년 후, 가고싶은 곳 목록을 늘어놓다 아시아에서 유럽, 아프리카대륙으로 이어지는 반시계방향의 루트를 결정할 때도, 까미노에서 걷는 걸 마치고 아무데도 가기 싫다며 남아있는 여행지를 뺄 때도, 여전히 대영박물관에서의 이집트의 기억은 나를 이끌어왔다. 그래서 이 곳까지 올 때 일관되게 사막과 유물을 외치며 온 것이었다.



룩소르에 오자 상상해왔던 이집트같은 풍경에 여기저기 유적과 유물들이 나일강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나일강을 기준으로 동안이라 불리는 동쪽은 룩소르신전과 카르낙신전이 있고, 서안은 왕가의 계곡 등 무덤과 장제전같은 것들이 있었다.  

첫날 무더위와 달라붙는 호객꾼들과 싸워가며 도착한 동안의 룩소르신전과 카르낙신전.

신전에는 익히 사진으로 봐왔던대로 스핑크스가 줄지어 서있고 파라오의 상도, 상형문자가 가득한 오벨리스크도 서있었다. 신전 벽에는 빼곡이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잠깐, 물론 멋지긴 하지만 뭔가 매력도가 예전 대영박물관보다 떨어진다.  

이건 대체 왜 이런 걸까. 한참을 고민했다. 계절은 겨울이다만 낮엔 삼십도 넘게 올라가는 이 지역의 건조하고 무더운 날씨 때문인가, 아니면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치이며 다녀서 그런 걸까.  

그런데 왜 양쪽에 쌍으로 서있어야 할 오벨리스크는 한쪽밖에 없는 걸까. 왜 벽의 상형분자는 반절쯤은 이지러지고, 돌기둥의 정교한 무늬 아랫부분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석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멀쩡한 것을 찾기가 힘들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데 왜 이곳은 허물어져있다는 기분이 드는 걸까.

그렇게 신전을 돌고나서 어쩌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었다. 처음 이집트 유물을 접했을 때 봤던 그 보존상태며 나를 홀렸던 화려한 채색같은 것들을. 이곳은 그때의 기억만큼 매혹적이지 않았다.

그동안 꿈꿨던 곳이 예상보다 못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다음날 서안투어는 왕가의 계곡과 핫셉투트 신전, 왕비의 계곡과 아가멤논 상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유적과 유적의 사이가 멀다는 말에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하지 뭐, 하며 신청했던 싼 투어상품이라서 그랬는지 가이드는 그닥 설명에 흥미가 없었다. 유적도 앞까지 가서 설명해 준 다음에 나는 밖에서 기다릴테니 너희는 안에 들어가서 구경하고 언제까지 여기로 나오라는 식으로. (그리고 솔직히 시간이 너무 흐른데다 이때쯤엔 지쳐 일기를 대충 쓰던 시절이라 뭔 얘기를 해줬는지도 거의 잊어먹었다)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되살려보면, 왕가의 계곡은 파라오들이 안장되어 있는 무덤이었다. 바위산과 벼랑에 굴을 파고 왕의 무덤을 만들었단다. 재미있었던 것은 화려하게 열심히 꾸며놓은 무덤이 어느 순간이 되면 공사하다 만 것처럼 끝나버려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왕의 수명과 관계가 있다고 했다. 왕이 처음 즉위하면 무덤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 무덤은 공사가 끝났건 끝나지 않았건 왕이 죽으면 일이 끝나는 거다. 그래서 오래 살았던 왕은 끝까지 완성된 무덤에 묻힐 수 있었지만 좀 일찍 죽은 왕들은 공사중인 무덤에 묻힐 수 밖에 없었다고.   


이 무덤들을 데리고 다니며 가이드는 얘기했다. 여기에는 유명한 미라가 두 개 있다고.  

그리고 곧 다음 말이 이어졌다.  

그 중 하나는 대영박물관에 있고, 나머지 하나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죠.  

설명을 듣던 사람들이 다들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고나서 생각해보니 과연 그랬다. 세계 어디를 가도 조금 규모가 크다 싶은 박물관에는 어디든 이집트관 하나쯤은 있었다. 마치 ‘박물관이라면 이집트관 하나쯤은 있어줘야죠’하는 느낌으로. 그걸 보며 항상 ‘와, 이집트 유물 예쁘다. 언제 가야겠다’고 생각해왔지만 사실 그건, 거기 있어야할 물건이 아니었다.  

게다가 꽤 큰 규모였던 대영박물관의 이집트관이라니, 이 영국인 나쁜 놈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유물반출을 생각하자마자 바로 직지심경이며 의궤 같은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도 발끈하게 된 계기인 것 같기도. 생각해보니 대영박물관엔 그리스신전 하나를 통채로 뽑아다 전시해 놓은 곳도 있었다. 이 사람들, 진짜 나쁜 놈들이었구만.

그 중에선 이집트에서 다른 나라에 선물로 준 것도 있겠지만 아마 도굴꾼에 의해 음지에서 팔려나간 것도, 전쟁통에 열강들이 훔쳐온 것들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제대로된 것, 멀쩡한 것을 무작정 뜯어 가져가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 덜 멀쩡한 것들이 방치되어있는 이곳의 유물은 매력을 잃은채 낡고 부서져있었다.


스쳐지나가는 여행자지만, 그리고 유물들에 대해 이집트정부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가 이렇게 유물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후회를 제대로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름대로 유물관리를 하고 있지만 이미 파괴된 것들이 눈에 너무 잘 보여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물론, 이 나라 곳곳에 유물이 널려있어 그쯤이야 괜찮음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이집트의 기독교인 콥틱의 흔적이 남아있는 핫셉투트 신전도 왕비의 계곡도 멤논의거상도 돌아보고 나니 지쳤다. 가져갔던 물은 일찌감치 떨어졌다. 이글대는 태양을 그대로 받으며 멤논의 거상까지 갔을 때는 이제 그냥 시원한 숙소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만 들었다.

아마도 가이드가 우리의 투어 일정 중 가장 적극적이었을 쇼핑안내와, 팁을 부탁하며 각자의 숙소 앞에 내려주는 일정을 마지막으로 서안의 유람을 마쳤다.


시원한 숙소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쉬는데도 낡고 허물어진 것들의 잔상은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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