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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Jan 18. 2017

#65이집트-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아

-룩소르-카이로

오후 일찍 돌아와 숙소에서 샤워한 뒤 좀 살만해져 시장구경을 나서려는데 옆방에 묵는 사람들이 말을 걸었다. 그 사람들은 오늘 저녁 다합으로 떠날 예정이란다. 혼자서 다닐 때의 괴로움을 알고있기에 다합에 가기 전까지 같이 놀아달라고 붙었다. 남자 둘과 동행해 다니니 길을 나서도 정말이지 단 한사람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러다 함께 시장을 구경하고 저녁먹고 차 마신 뒤 둘을 먼저 보내고 또다시 용감하게 밤의 룩소르 신전이나 한 번 찍어볼까 하며 나오자마자 다시 전날의 반복이었다. 다시 야간열차를 타러 가는 길에도, 기차를 기다리는 길에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내 옆에 사람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사람들이 끈적거리며 달라붙고, 눈 한번 마주칠 생각도 없이 사라지는 건 기분이 상하는 일이었다. 이집트에서 지내는 내내 나는, 나 혼자의 한 인간이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딸려있지 않으면 불완전한 하나의 부속품이 돼있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계속 관찰해왔는데 이집트 남자들은 혼자 다니는 서양여자에게는 집요하게 달라붙지 않으면서 동양여자들에겐 정말 심할 정도로 들이대고 있었다. 덕분에 왜 이들은 혼자 다니는 동양여자들에게 달라붙는 것인가에 대한 연구주제가 생겼다. 그리고 약간의 피해의식과 억울함이 섞여 냈던 결론은 동양 애들은 만만하게 보여서였다.  


그러고보니 함께 다녔던 사람도 말했었다. 온몸을 꽁꽁 싸매고 다니는 이슬람 문화권의 여자들은 건드리는 것조차 금기시 되지만 상대적으로 노출이 심한(이라고 해봤자 머리카락과 팔) 외국인 여성들은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생각한다고. 알콜도 공식적으로 금기되고 성적으로도 억압된 이 사람들의 분출구는 결국 나같은 애꿎은 여행객이었다. 그 중 싫다는 표현을 거세게 하지 않는 동양여자들이 그 타겟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말이다. 그 말을 되새기며 생긴 걸 바꾸는 건 불가능하니 히잡이라도 사서 두르고 다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불쾌한 기분으로 야간열차를 타고 다시 카이로에 도착했다. 덤으로 출근시간이었는지 이집트의 지옥철도 경험했다. 한국에서도 교통체증이 싫어 일찍 나가거나 늦게 나오는 것을 원칙으로 삼던 나였는데 말이다.  냉동창고같은 야간열차에서 잠을 설치고 내게 고정돼있는 시선과 신경전을 벌이며 지옥철로 숙소에 돌아왔을 땐, 이미 피로에 쩔어 있었다. 좀 쉬고 싶었지만 곧 다시 나와야했다. 그 숙소엔 이집션박물관에 같이 갈 사람이 마침 있었는데 이 사람을 놓치면 동행이 한동안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룩소르의 교훈으로 절대 혼자 다니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나. 동행하기로 한 여자애도 그동안 혼자 다니며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한다.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를 한 아가씨였는데 이 친구는 지나다닐 때마다 사람들이 자꾸 머리를 잡아당겨 스트레스였단다. 아침을 먹으며 서로 당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급 친밀감을 느꼈다. 막 도착해 밥 먹으며 주위를 둘러보던 새 여행객들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지만.  

나는 자꾸 이집트사람들이 집적거려 히잡을 살까 생각했다며 같이 시장에 가 히잡을 사자고 하고 있는데 옆에서 새 여행객의 루트짜는 것을 조언해 주던 사장님이 한마디 거든다.  

“히잡 써도 똑같아요. 그냥 외국인이라서 그러는 거예요.”

젠장.
  


내가 이집트에 갔던 때는 매일 타흐릴광장에서 시위가 열리고 있었다. 

혁명을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그때쯤 개헌을 단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대통령 권한을 대폭 강화한 개정을 강행했고 그것이 반발을 불렀던 것. 그래서 며칠 전에는 취재하던 기자가 죽었다든가 다쳤다든가 했고, 시위참가자 중 죽은 사람도 몇 됐다고 한국의 포털사이트 뉴스에 나던 때였다.  

원래 싼 호스텔에 들어가려던 나도 그 소식을 들었고, 마침 어플로 찾아본 숙소가 다 타흐릴광장 근처라 비싼 한인민박에 있었던 거고, 이집션박물관도 타흐릴광장 바로 옆이라 되도록 일정을 미뤄두고 있었다. 

이집션박물관에 갈까 말까를 망설이는 나와 숙박객들에게 사장님은 말했다.  

오후엔 시위가 시작돼서 그 근처가 안전하진 않지만 오전엔 괜찮아요.

그래서 굳이 아침 일찍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간 것이기도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집트인에 대한 이미지가 극히 좋지 않았던 동행. 우리는 서로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똑같이 이집트인, 특히 남자들이(사실 여자들은 거의 말을 걸지 않는다. 그냥 뚫어져라 보고 자기들끼리 킥킥대며 얘기를 할지라도) 말을 걸면 귀가 없다는 듯이 딴청 부리고 빨리 걸었다. 

그렇게 지하철역을 나와 바로 앞에 있다는 이집션박물관에 가려던 우리. 출구를 잘못 나왔나 보다. 박물관은 나오지 않고 철조망 같은게 굴러다니고, 전 날의 최루탄 가스가 남아 눈과 코가 매워오며, 사람들이 자꾸 우리에게 치근덕거리는 것이 아닌 듯한 말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 들어온 다음에 총을 든 군인이 잔뜩 대기하고 있다가 이쪽으로 오면 안 된단다. 

분위기에 쫄아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그 말대로 돌아가고 있는데 열 살 남짓하게 보이는 꼬맹이 하나가 까불대며 나타났다. 그러면서 여기는 아주 위험하다고, 너네 죽는다며 저쪽으로 가란다.  

꼬맹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차츰 늘어나는 꼬맹이의 동료들. 결국 수십명의 꼬맹이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휘파람을 불고, 동행 여자애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누군가 내 엉덩이를 만졌다.  

꺼져버려!

순간적으로 폭발해 소리를 질렀다.  


무섭게 소리지르며 고개를 돌리자 수십명의 꼬맹이들이 일제히 물러서며 손가락으로 내 엉덩이를 만졌던 애를 지목했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고 하더라도 열한살 열두살쯤으로 보이는 작은 소년이었다. 아, 세상에. 어이가 없어 무섭게 째려보며 따라오지 말라고 한 뒤 다시 동행과 둘이 씩씩대며 박물관으로 향했다.  


그동안 나는 적어도 낯모르는 사람들에겐 착하고 꽤나 친절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까미노에서 J도 내게 너는 참 착하다고 몇 번이나 말해줬을 정도로. 그렇게 천사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낯선 애들에게 살기를 뿜어내며 꺼지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니 참 이 여행은 다사다난하다. 그리고 삼십년 가까이 살면서 누구에게든 ‘꺼져버려’라고 소리친 것은 기억하기론 이번이 처음이었다. 태어나 처음 내뱉은 대상이 엉덩이를 만지는 이집트 꼬맹이들이라니. 하아.

아침부터 험난한 과정을 통해 도착한 이집션박물관엔 은근히 관광객이 많았다. 아마도 우리처럼 오후가 되면 시위가 시작된다고 그 전에 구경오는 길인가 싶었다.


보통의 국립 박물관의 전시 구성을 생각해보면 대부분은 이런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땅에 인류가 처음 출현했던 시대의 석기부터 시작해 근대까지의 유물들을 전시해 둬 그 역사와 독특한 그들의 문화를 관찰할 수 있는 이야기. 그러나 이집션박물관은 좀 달랐다.  

유치하게 석기따위? 없다. 고대의 찬란한 문명, 그것으로 박물관이 시작하고 거기에서 끝났다. 


유물이 많다고 듣긴 들었지만 이집션박물관은 고대 이집트 유물만으로 엄청난 박물관을 가득 채워놨다.  그리고 그 관리는 참 허술해 보였다. 마치 초등학교 과학실 장에 각종 실험도구며 모형을 넣어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몇천년 전에 피라미드를 세우고 정교한 부장품들을 만들고, 벽화를 그리고 상형문자로 기록해두고 하다니, 그걸 전세계 사람들이 훔쳐가고 뺏어가고, 선물로 주고난 뒤에도 이만큼이 남아있다니, 대체 과거의 이집트인들은 밥 먹고 이것만 만들었던 걸까.   


처음엔 감탄하며 각종 부장품과 미라와 내장단지들을 구경하던 나와 동행은 오후가 되기 전에 돌아도 돌아도 끝없이 나오는 유물에 지쳐 박물관을 나섰다. 아직 시위는 시작되기 전이었다.  

시위 시작 전에 그, 타흐릴광장이나 한 번 보고가자고 광장쪽으로 접근했다. 한걸음 한걸음 광장과 가까워질수록 그 안에서 돌아다니는 현지인들이 모두 우리를 말렸다. 여기는 위험하다며 너희들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 광장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그들의 경고만큼 위험해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한가롭게 광장을 가로질러 지하철역으로 향했고 밥을 먹고, 볼일을 보러 이동했다.   

아침에 우리에게 오전의 타흐릴 광장은 괜찮다며 했던 사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사는 데는 다 똑같아요. 시위에 대해 보도가 계속 나오니 이집트 전체에서 하루종일 시위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 여기도 시위하는 사람들은 하고 관심없는 사람들은 그냥 자기 방식대로 살아요.
그리고 밤이 되면 다치고 죽는 사람도 나오지만 그 사람들이 정해둔 시작시간만 아니라면 양쪽 다 부딪치지 않아요.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으나 만나는 사람들마다 적극적으로 말리는 통에 결국 입구만 보다가 근처 시장으로 이동했다.  

시장은, 음, 뭐, 그동안 겪었던 이집트의 연속이었다.   

결국 아침부터 스트레스를 연속으로 받았던 나는 2차폭발전의 기분전환을 위해, 근처를 돌아다니며 헤나를 해주던 아줌마에게 5파운드에 헤나를 하고 그나마 마음이 좀 풀려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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