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빵씨 Jan 20. 2017

#66이집트-마지막 종합선물세트

-카이로

하루하루를 지낼수록 이집트에 대한 인상은 점점 나빠져 처음에 봤었던 사막의 기억조차 희미해지던 그 무렵. 드디어, 미뤄둔 숙제처럼 그 곳이 남았다.    

기자 피라미드.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함께 카프라왕, 멘카우라왕의 피라미드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집트의 필수 관광지로 불리는 그 곳. 굉장히 가보고 싶었던 그 곳, 이면서 온갖 이집트의 호객꾼을 종류별로 만나볼 수 있다는 그 곳이었다.    

아침에 특별히 전의를 다지며 전투적으로 밥을 먹고 있는 내게 새로운 동행이 생겼다. 이 친구는 2년의 계획으로 세계여행을 나온 아이. 일년 동안 아시아를 거쳐 이곳에 와있단다. 온갖 험한 곳을 다 돌아다녔다는 이 친구에게도 역시 이집트는 넘지 못할 산이었단다. 둘 다 남자동행이 필요하다고 절감했으나 역시 그날따라 기자피라미드에 가는 남자는 구할 수 없었다. 대신 막 터키에서 도착해 짐을 푸는 한 언니가 붙었다. 이 분은 태어나 처음으로 패키지여행이 아닌 배낭여행을 왔다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배낭여행의 처음이 기자피라미드라니, 싶었지만, 뭐,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기자피라미드에 가겠다고 하면 숙소에서는 마치 끝판왕에 도전하는 캐릭터를 보는 느낌으로 온갖 팁을 줬다.  

이곳에서는 이런 종류의 호객꾼이 있고, 저곳에는 저런 애들이 있고,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와 같았다. 

이런 대처방법으로 그 호객꾼들을 막아낼 수는 없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곳의 애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치근덕거리는데 더 집요하니까. 그러니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든 한 귀로 흘리고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 것이 이집트 여행을 즐기는 길이다. 

실제로 숙소에서도 대다수의 여성관광객은 이집트의 남자들에 대해 치를 떨고 있었는데 유일하게 즐기는 한 명이 있었다. 그녀는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즐긴다고 했다. 지하철에 타서 남자들이 자기를 뚫어지게 쳐다보면 그 시선을 즐기고, 호객꾼들이 달라붙으면 적당히 그들과 대거리를 하면서 그날의 오락으로 삼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 숙소에서 유일하게 밤 늦게까지 놀다오는 한 명이었다. 숙소사장님이 제발 위험하니 일찍 일찍 들어오라고 잔소리할 정도로. 그 정도의 용기가 있으면 정말이지 세계 어느 곳이든 내 집처럼 돌아다니겠구나 싶어 부러웠지만, 우리는 그저 간이 작은 보통의 사람. 그리고 경험상 그런 성격은 일정정도 타고나야 한다. 그저 나같은 소심한 여행자는 그냥 투덜거리며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른 나라보다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한껏 너그러워진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어쨌든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지하철에 올라탄 나. 이 날은 지하철에서 만난 꼬맹이가 내게 침을 뱉었다.  

하아, 이곳의 사람들은 매일매일 새로운 아이템으로 짜증을 돋구는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지하철에서 만난 꼬맹이 하나가 까불까불하면서 아랍어로 말을 걸어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자신이 내릴 정거장이 돼서 내리며 내 팔을 세게 툭치고 내리는 것이었다. 따라 나가서 저 자식을 한 대 쳐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지하철문이 곧 닫힐 것 같아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생각보다 객차문은 쉽게 닫히지 않았다. 그 사이 문 밖에서 계속 까불까불하며 나와 일행을 조롱하던 꼬맹이가 급기야는 침을 뱉은 것이다. 순간적으로 욱해서 따라 내리려는 나를 일행이 말리는 사이에 지하철문이 닫혔다. 달리는 지하철에서 계속 저 자식을 한 대 때리고 왔어야 한다며 억울해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일주일전까지 착하다 착하다 하는 평을 듣고 살아온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지하철의 침 사건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계속해 이집트인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나와 세계여행중인 동행과 달리, 막 이집트에 도착한 동행언니는 아직 이집트에 대한 환상이 깨지지 않아 모든 이의 말을 들어주고 친절하게 대꾸하며 나와 동행의 과한 분노를 달래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새벽에 비행기에서 내린 이 언니는 지하철에서 내려 택시를 갈아타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 겨우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완전히 지쳐있었다. 결국 본인은 쉬면서 슬슬 관광하겠다며 혼자 뒤쳐졌다. 불쾌한 이집트인들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만날 수 있다는 기자피라미드라 약간 걱정은 됐지만 일단은 둘이 피라미드를 돌기로 했다.  

멀리서 보기엔 옹기종기 모여있는 듯 싶던 피라미드는 실제로 걸어서 돌려니 각자의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다.  

일단 피라미드 자체가 상상보다 컸다. 피라미드를 쌓은 돌 하나의 높이가 내 가슴높이쯤 오는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피라미드를 어떻게 쌓았는지 궁금해하던 거군.  

피라미드의 축조시기는 쿠푸왕 피라미드가 약 B.C2,500년전 쯤, 다음 피라미드 역시 그 근처에 세워졌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때쯤의 한국은 신석기시대의 후기. 빗살무늬 토기와 거대한 돌을 쌓아 만든 피라미드 사이엔 정말이지 엄청난 거리가 있었다. 

처음 오기 전까지는 피라미드의 돌은 벽돌처럼 매끈하고 네모반듯할 줄 알았던 나. 생각보다 들쭉날쭉한 모양에 약간 실망하여 사진을 찍었는데, 찍고나서 결과물을 보니 들쭉날쭉한 돌의 모양이 만들어내는 빗면이 들쭉날쭉하지 않은 직선이었다. 

이래서 피라미드 외계인 축조설이 있나보다. 이집트인들 정말 굉장한 사람들이었구나.    

하고 있는 내 옆으로, 낙타를 끌고다니며 호객을 하는 사람들과,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과, 음료수를 팔고, 사진을 대신 찍어주는 꼬맹이들이 돌아다녔다.  

흥정도 흥정이지만 이집트인에 대한 무한 불신으로 그들이 몰고다니는 낙타나 말은 절대 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나와 동행 옆으로, 낙타에 아가씨 하나를 태운 이집트인 하나가 고삐를 잡고 끌고 다니며 여자에게 끊임없이 말을 붙이고 있었다. 

어디서 왔냐, 남자친구는 있냐.

하아, 자기 돈내고 저 꼴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켠이 답답해오는 기분이랄까. 


카이로 교외 사막과 접경지역에 있는 기자피라미드는 사막답게 건조하고 매우 더웠다.  

되도록 긴팔을 입고 다니던(이유는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나와 동행은 더위에 지쳐 몇걸음 걷다 쉬다 호객꾼 또는 관리인의 집적거림을 당하고 다시 일어나 몇걸음 감을 반복하고 있었다. 지친 우리는 피라미드 안에도 들어갈 수 있으나 그 곳에 들어가면 암모니아 냄새가 나고 벽화도 미라도 없어 실제로 들어가본다라는 것 외엔 별 장점이 없다는 의견에 따라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날이 무덥고 피라미드 사이는 넓어 콜라를 마시며 쉬었는데, 콜라파는 행상은 낙타를 탈 것을 끊임없이 권하고 음료수병값을 돌려달라니(이집트에서는 병음료수를 마시고 병을 돌려주면 병값을 준다) 못 주겠다며 위협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엉뚱하게도 진짜 피라미드는 외계인이 세웠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천년전 피라미드를 짓고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외계인은 어떤 이유로 멸종했거나 지구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 다 돌아가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큰 세 개의 피라미드와 그 근처의 유적, 쿠푸왕 피라미드 왕의 거대한 스핑크스까지 구경하고 약속시간에 맞춰 다시 동행언니를 만나러 왔을 때였다.  대여섯살쯤 돼보이는 어린 꼬맹이에게 귀걸이를 빼주고 있는 언니를 목격했다. 둘다 헐, 을 외치며 가보니 아이는 귀걸이를 받아들고 반지를 가리키며 그걸 서로 바꾸자는 듯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아이를 떼어놓고 돌아오는 길. 언니의 말에 의하자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초록 눈의 꼬맹이가 접근했단다.  

예뻐서 팔찌를 줬더니 팔찌를 받아들고는 고맙다고 하고선, 언니의 귀걸이를 보며 팔찌와 귀걸이를 바꿔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귀걸이를 주자 이번에는 반지와 바꾸자고 하는 중이었다고. 처음엔 귀여운 꼬맹이에 대한 선의로 시작한 선물이었는데 아이가 참 영악하더라며 실망하는 이 언니를 보며 예전 네팔에 가기 전에 들었던 충고가 떠올랐다. 아이들이 캔디를 달라고 접근해도 주지 말라고.  

단순히 한순간의 주고 안 주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작은 것을 받아먹은 아이들은 구걸에 익숙해지고 나중에 자라면서도 관광객을 등쳐먹거나 구걸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살려 하기 때문에 자립의지를 잃게 된다고.   

카이로 첫날에 만났던 귀인 아저씨도 있었고, 음... 또.... 음.... 어쨌든! 모든 이집트인은 분명 이렇지 않겠지만 관광지에 오면 보이는 이집트인의 80~90% 정도가 이처럼 엉망인 걸 보면 조상들이 남겨준 엄청나게 훌륭한 유산이 오히려 이들에게 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농담처럼 후손의 관광수입을 위해 건축물은 돌로 지어야 한다고 말하던 나지만 이런 미래는 결코 부럽지 않았다.  


문짝이 없는 봉고차에(상상할 수 없겠지만 진짜 없었다. 문이 없는 채로 적어도 시속60Km이상으로 차를 몰았다.)짐짝처럼 가득 가득 담겨 지하철역으로 돌아오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65이집트-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