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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Jan 25. 2017

#67이집트-외롭지 않아요?

-카이로

험난했던 기자 피라미드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자 동행들은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거실에 혼자 앉아 이것저것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날은 이집트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다음날이면 터키에 가게 된다. 

처음에 겁먹어 이집트 일정을 필요이상으로 짧게 잡았던 터라, 터키에 있을 시간은 2주일이 넘었다. 거기에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를 제외하면 특별히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이제 2주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하는가. 



처음 러시아에 갔을 때나, 까미노를 걸을 때 만났던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주변을 정리하고 여행을 길게 온 사람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본 팔박구일의 기차를 타거나 최소 삼십여일의 일정으로 와야하는 까미노는 이직이라든지 휴학 등 시간이 생기지 않고서는 오기 쉽지 않은 곳이니 말이다.  

러시아와 스페인 이집트의 사이를 채웠던, 북유럽이나 바르셀로나에서의 여행엔, 단기 여행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거의 혼자 다녀 다른 사람과 얘기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집트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이집트인들의 도움(?)으로 계속 동행을 구하고, 누군과와 계속 함께 다녔던 이곳은 확실히 단기 여행자들이 많았다. 약간 무리해 긴 휴가를 얻어 터키, 이집트, 그리스 혹은 터키, 이집트를 구경온 사람들. 

이 사람들과 돌아다니다보니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많았다. 한국인, 특히 단기 여행자들은 엄청난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최소한의 시간에 가장 많은 것을 보고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준비랄까. 그들과 함께 다니다 보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았지만, 동시에 그동안 잊고 있던 여행 후의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도 했다. 그래서 좋으면서 동시에 문득문득 우울해지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돌아갈 일자리도 없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는 나는 이제 뭘 해야 하나.  



이집트의 경험으로 남은 기간동안 되도록 현실과는 멀어지고 싶었던 나는, 이스탄불에서는 숙소 사람들이 모두 추천하던 평이 좋은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제외하고 블로그에 평도 없는 싼 숙소에 들어가기로 했다. 당분간은 열의를 가지고 관광을 할 목적도 없으니 그냥 낯 모르는 외국인 틈에 끼어 아무 말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유유자적 지내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는데도 어쩐지 불안감과 우울감은 쉽게 가시지 않아, 괜히 숙소에 있는 가이드북을 들춰보고 계속해서 새로운 곳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내가 새로갈 곳이 얼마나 멋진 곳인가에 집중하려 했다. 


그런 내게 숙소사장님이 말을 걸었다.  

매일 들어올 때마다 이집트인과 관련된 새로운 스트레스를 안고 돌아오던 얘기를 익히 들었던터라 대화의 초반은 이집트인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다. 일주일 정도 있었던 내가 이 정도인데 몇 년을 살았던 사장님은 그보다 훨씬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농담처럼 흘려 잠깐 여행 후를 얘기했던 것 같다. 이렇게 삼개월이 끝나가 버렸는데 이제 뭘 해야 하죠? 하고. 그렇게 농담인듯 진담인듯 이어지던 대화의 주제는 직업으로의 게스트하우스 운영까지 이어졌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던 중, 내가 물었다.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계속 똑같은 얘기를 하는게 질리지 않아요?

대답은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뭐, 그럴 때도 있지만 그런 것 또한 재미있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그런 대답을 들으며 나는 좀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선배 중 끊임없이 제주를 방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돈이 좀 생기면 제주에 가고 다 떨어지면 돌아오고, 가끔은 다 떨어져도 돌아오지 않는. 그 선배가 한때 제주도를 돌아다니다 게스트하우스를 준비하는 분을 도와 집수리하는 일을 도와줬고, 그 집 개장에 맞춰 나를 비롯한 친구들을 데리고 놀러간 적이 있었다. 삼일 정도 주인언니와 함께 술 마시고, 불꽃놀이도 하고, 즐겁게 잘 놀고 돌아오려는 길. 잘 가라며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어주는 그 모습이 어쩐지 걸렸었다. 매번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하나는 저 일도 굉장히 힘들겠구나.  

어째됐든 사장님은 계속 여기에 있고 사람들은 계속 들고나게 되잖아요.
매일 매일 사람들을 떠나 보내려면 외롭지 않아요?

역시 이 질문 또한 이집트 여행 팁에 대한 질문과 함께 들었던 베스트 질문 10위 안에 들어가는지 사장님은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가는 것을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하면 외로울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걸 그냥 친구들끼리 만나 놀고 ‘안녕’하고 헤어지는 정도로 생각해요.
친구들이 인사하고 헤어질 땐 다시 못볼거란 생각을 하며 헤어지진 않잖아요.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금방 다시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는 그렇지 못할 때도 있구요. 그것처럼 여기 손님들도 언젠가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날 수도 있고, 그 기간이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전까지 함께 즐겁게 놀고 친구가 됐으니까요.  

인연의 시작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만 시작되고 나서는 끊임없이 집착하는 내게는 신선한 대답이었다. 

내가 그 정도로 쿨했더라면 까미노에서 A에게 함께 가자고 무리하게 쫓아가지 않았을까. 

전 직장을 그만 두게 되면서 사람들을 그렇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또 그 전에 실패한 모든 인연에 대해 마음에 두지 않고 상처도 받지 않고 모두 흘려보내지 않았을까.  

새로운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내고 거기에 다시 진심으로 부딪치지 않았을까. 


아마 그때의 내가 여행 후를 고민하는 것은 새롭게 닥쳐올 일이었다기 보다는, 그 곳에서 부딪히고 실패하고 이를 통해 상처받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그 상처에 대한 치유나 자아발견, 성장 등등 엄청난 목표를 핑계로, 도피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떠나보냈던, 떠나고, 떠나보낼 기회와 인연들에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 정말 즐거웠어’

라는 마음을 담아 ‘안녕’하고 인사할 수 있는 날은 과연 올까. 


그렇게 이집트의 마지막 밤은 지나갔고, 나는 예정대로 카이로의 공항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남자친구가 있느냐며 집적거리는 공항 검색대 직원에게 정색한 얼굴을 만들고 ‘남편이 한국에 있다’며 지나쳐, 역시나 여긴하고 헛웃음을 지으며 이스탄불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마지막 나라 터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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