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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Jan 27. 2017

#68터키-때론 첫인상이 모든 걸 결정한다

-이스탄불

지나친 끈적임과 적응되지 않는 더위를 뒤로 하고 터키에 도착했다. 저녁 늦게 도착한 이스탄불의 첫인상이라면, 글쎄,

여기는 천국인가,

정도?  


삼십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에 긴팔 옷을 껴입고 다니다 가디건을 걸쳐야할 정도로 약간 쌀쌀한 기온으로 넘어온 것만으로도 기뻤다. 또 공항에서 이스탄불 시내까지 트램이 이어져 별 고생 없이 나올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뿐만 아니다.

공항에서 트램을 타고 나오는데 트램 안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지 않았고, 느끼하게 웃으며 말을 걸지 않았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는 것이 이처럼 신나는 일일 줄이야.


즐거운 기분으로 숙소도 금방 찾았고, 마트도 금세 찾아 나름의 웰컴맥주를 사 마시고는 오래오래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엔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올라가며 하늘을 봤는데 쨍쨍하고 맑다. 분명 이 도시는 나를 환영하는게 분명하다고 믿어버렸다.



천천히 아침을 먹으며 어느 곳에 갈지 생각했다.

아주 처음, 이 여행을 준비했을 때는 이상하게 터키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터키에 대해 아는 거라곤 카파도키아의 동굴과, 블루모스크 정도의 사진이 전부였는데도 였다. 잘 알지도 못해 드문드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 로망을 가지고 있다는 게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실 그 드문드문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거의 오스만투르크 시대에 가까웠다. 그 이미지는 아주 예전에 처음 영국에 가기 전까지 영국은 셜록 홈즈가 마차타고 돌아다니고, 올리버 트위스트가 소매치기를 하러 다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강렬하게 접했던 책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터키에 가면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카파도키아에서 기구를 타는 것이었고, 나머지는 이 것이었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어디선가 하루종일 읽는 것. 바다가 보이는 카페라든지, 신밧드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양탄자가 깔린 카페든, 아니면 숙소에 처박혀서 하루종일 책을 읽는 것도 괜찮았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후반부 일정을 위해 책 두권을 챙겨가기에 내 배낭은 무거웠고, 그러면 e북으로 읽겠다며 찾아봤는데 당시에 e북 데이터베이스는 신간, 베스트셀러 위주여서 돈주고 사보겠다는데도 책이 없었고, 그렇다면 사진을 찍거나 책을 스캔해 가겠다며, 책 두권을 정말 열심히 사진 찍어서(아, 나 여행전에 준비한 거엔 이것도 있구나ㅎㅎ) 태블릿에 담아왔는데, 아뿔싸, 중간에 약간의 사고로 스페인쯤에서 태블릿 안 모든 데이터가 날아가 버렸다. 젠장.


아침을 먹으러 온 사람들이 두세번 바뀔 때까지 천천히 먹고 그릇을 돌려두며 마음먹었다. 이 날은 산책을 다녀야겠다. 특별히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이리저리 헤매며 하루종일 걸어다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행방법.  

일단 이스탄불에서 하루를 있어본 뒤 터키에서의 일정을 결정할 참이라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는 것도 좋은 일일 듯 싶었다.   

아침을 먹고 천천히 길을 나섰다.  

숙소 근처 인포메이션센터에서 이스탄불 지도를 받고 걷다보니 아야소피아 성당과 그 앞에 블루모스크가 보였다.  

낮의 이스탄불 거리에는 호객꾼도 있었고, 내게 말을 거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나중에 들은 얘기로 터키에서는 동양여자라면 누구나 집적거림을 당한다고 한다) 그 수준은 형제의 나라라며 웃어넘길만 하다. 이 정도를 웃으며 넘길 수 있게 만들어주다니 대체 이집트인들은 내게 뭘 한 거냐.  



아야소피아 성당과 그 앞에 마주한 블루모스크는 유럽과 아시아가 한 도시에 함께 있는 이스탄불처럼 복잡한 역사가 있다. 과거 비잔틴제국시절 이스탄불(당시 콘스탄티노플)에 당시 최고의 기술로 엄청난 규모의 성당을 세운 것이 이 아야소피아 성당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천년정도 지난 후, 오스만투르크제국이 들어와 터키를 지배하게 됐고, 새로운 침략자가 그 땅에 들어와보니 자신들의 기준으로는 파괴해 버려야할 아야소피아 성당이 너무 멋졌던 거다.  

그리하여 그 건축물을 모스크로 쓰기로 결정, 그 안의 온갖 프레스코 성화들을 회칠로 덮어버리고 모스크로 쓰며 그것으로도 부족해 그 바로 맞은편에 아야소피아성당을 닮은 모스크를 세우기로 결정했단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그 앞 블루모스크(술탄아흐멧자미)였다.   

그 후 여러 번의 권력이동이 생겨나고, 완전히 파괴된 줄 알았던 성당안 벽화가 살아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고, 회칠을 벗겨내 성당안의 벽화들을 복원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사람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성화도, 이슬람교의 문자도 한 공간 안에 함께 공존하는 아야소피아성당은 내가 막 접한 터키와 느낌이 비슷했다. 같은 이슬람문화권이라도 이집트에서는 여자들이 모두 히잡을 쓰고 다니며 누가 누가 더 가리고 다니는지를 경쟁하는 것 같아보였다면 여기에서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여자 중 히잡을 쓰지않은 사람이 심심찮게 보였다.

이집트에서는 술을 파는 상점을 극히 제한하고 이집트로 가는 비행기 내에서까지 알코올 제공을 금했다면 여기는 공식적으로 술은 금지지만 모든 가게에서 거리낌없이 술을 팔고 있었다.  

어린예수가 헤롯왕의 살해위협을 피해 도망쳤다는 예수피난교회라든지 무덤안에 콥틱(이집트 기독교)의 흔적이 남아있는 핫셉투트 신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생활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절대 느낄 수 없었던 이집트와 달리, 기독교의 흔적에 회칠을 해 덮은 뒤 다시 그것을 복원해내고 있는 터키에서는 공식적으로 서구 기독교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듯 했으나, 아침에 들른 상점주인이 계산을 마치며 나가는 내게 활짝 웃으며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했다.

그것이 이 나라 특유의 정체성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성당을 도는 내 눈에 손가락이 들어갈만큼 움푹 패인 기둥이 보였다. 가이드북에서 보길 여기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한바퀴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미 사람들은 줄을 서서 한 번씩 엄지손가락을 끼워보고 있었다.

이미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에서 소원을 빌긴 했으나, 소원보다 여기서 더 궁금했던 것은 인간의 관절이 저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360도를 돌릴수 있을만큼 유연한가였다.  

그냥 기둥을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든지, 넓은 표적에 동전 하나쯤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든지, 얼마든지 쉬운 방법이 있을텐데 왜 굳이 손가락을 넣고 한바퀴를 돌려야 하는 걸까. 웬만한 사람들은 안 되는 거기 때문에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한게 아닐까 하는 의심으로 손가락을 끼워넣는 관광객을 구경하던 나.  

매의 눈으로 관찰하고 직접 넣어본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가능하다.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유연하구나라고 손가락을 돌리며 생각했다.  

성당을 나와 그 앞 모스크에 들렀다.  

모스크는 종교시설로 쓰고 있기 때문에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시간에 회당안으로 관광객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 외에는 열려있었다. 바리케이드처럼 쳐진 울타리 너머로 가이드와 함께 단체관람온 관광객들이 돌아다니며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늘은 산책날인데 벌써 꽤 많은 관광지에 들렀구나 싶어, 모스크를 구경하고 나와서는 되도록 사람이 없는 길을 찾다가 사람이 많은 트램길이나 그 앞 광장을 지나 사잇길로 들어섰다. 그래도 역시 중심지다보니 여행사나 호스텔같은 것들이 늘어서 있지만 앞길보다는 호젓하고 우리 호스텔 앞처럼 상가만 늘어서 있지도 않았다.   

지나가며 장이 선 것을 구경하고, 지나가다 우연히 한국음식점을 보고는 그 앞에 붙은 가격표를 한참을 들여다 보고, 중국음식은 어느 나라에 나가도 그 나라 물가대비 저렴한데 왜 한국음식점은 한국만 벗어나면 미친 듯 비싸지는가를 생각하며 내려가다보니 바닷가가 나왔다.  

햇살을 받으며 바닷가를 걷고, 형제의 나라라며 반가움을 과장하며 저녁에 자기 친구들이랑 놀자는 터키아저씨를 거절하고, 걷다보니 갈라타다리가 나왔다. 다리를 건너가 탁심광장이 있는 신시가지에 가볼까 싶었지만 첫날이라 그리 무리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그냥 돌아왔다. 아무래도 나는 이스탄불에 오래오래 머무를 것 같으니 탁심광장에 갈 일도 많겠지.  

돌아오는 길 귤하네 공원에 들어가 고양이와 함께 앉아 늦은 점심을 한가롭게 먹으며 산티아고에서 소중하게 싸 짊어지고 온 에스트레야 갈리시아를 한 캔 뜯었다. (에스트레야 갈리시아는 까미노를 걸을 때 가장 좋아했던 맥주인데, 갈리시아 지방에서만 팔아 쉽게 구할 수 없다는 핑계로 산티아고를 떠나던 날 마트에서 대량구매해 배낭 안에 넣고 왔었다.)

적당히 쌀쌀하고 맑은 날씨에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없이 걷다보니 기분이 좋았던 나는, 벤치에 내리쬐는 볕과 맥주로 안 그래도 좋았던 기분이 한층 좋아졌다. 그리하여 공원에 앉아있다 여행중 처음으로 사치스러운 일을 하며 이 날을, 이 즐거운 기분을 기념하고 싶어졌다.   


한참동안 누릴 수 있는 사치의 영역과, 감당할 수 있는 사치의 영역을 고민 하던 나는 언덕 위의 호텔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가장 꼭대기에 있는 레스토랑 겸 찻집으로 들어가 전망이 잘 보이는 옥상에 앉아 얼마전부터 열광하기 시작한 터키시 커피를 주문했다.   

식사 때가 지난 레스토랑의 옥상엔 아무도 없었다. 아래층에서 틀어둔 재즈음악이 속삭이듯 조용하게 들려왔다. 커피잔 너머로는 아까 걸었던 아야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와 바닷가가 펼쳐져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고, 풍경을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오늘 하루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스탄불이 점점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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