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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Jan 04. 2017

#61이집트-아아아아아아아

-카이로

이집트에 올 때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두가지였다.  

사막과 유물.  

그것이 보고싶은 것의 전부이며 동시에 이집트에 대한 이미지의 전부였기에 당연히 이집트에 가면 그런 것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을 줄 알았다.  

도착한 이집트의 밤은 내 기대와는 달랐다. 공항을 벗어나 달리는 길 옆으로 까르푸와 H&M의 간판이 늘어서 있었고, 도로 옆으로 후덥지근한 바람과 함께 날리는 것이 모래인 것 같고 공사장으로 보이는 곳에 사암같아 보이는 것들이 약간 널려있었지만 어두워선지 피라미드 같은 게 보이지도 않았다. 기본적으로 그냥 도로고, 그냥 건물들이고, 그냥 사람들이었다.  

만약 전에 네팔에 간 일이 없었더라면 유럽과는 또 다른 혼란스러운 도로풍경에 잠깐 놀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그런 충격을 한 번 경험해 봤던지라 이 정도의 혼란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저 생각보다 카이로는 굉장히 크고 현대화되어 있구나 하는 정도.  

내 이미지 속 이집트를 찾아가려면 어디론가 더 이동을 해야하는 듯 했다. 거기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와 사막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으려나. 


당시의 이집트는 카이로에 큰 시위가 있어 매일같이 사건사고의 소식이 들렸다. 도착해 켠 휴대폰에는 자동로밍안내 문자와 함께 여행자제지역을 안내하는 문자가 날아들었다. 평소 나는 유럽이든 한국이든 이집트든 여행자가 처할 수 있는 위험의 정도는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졌을때 동행없이 밖에 나가는 것은 조심한다든지, 소지품은 가방에 넣어 자물쇠를 채운다든지, 되도록이면 좁은 골목길은 피한다든지 하는 정도의 주의를 기울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주변에서 '그곳은 위험하대', '내가 아는 누구는 0000해서 00000했대' 같은 말을 하는 것과 문자로 경고해 주는 것은 그 위압감이 좀 달랐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온 여행자제문자에 솔직히 조금 겁먹었다.  

그나마 믿을만한 건 이집트에 오기전 나는 카이로 외곽에 있는 한국인 민박을 골랐다. 다른 호스텔에 비하면 비싸고, 뭔가를 구경하려면 한참 지하철을 나가야했지만, 다른 호스텔은 주로 중심가인 타흐릴 광장 근처에 있었고 그 근처는 매일 시위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이집트는 가고 싶지만 귀찮은 상황이 되는 것은 피하고 싶은 최선의 선택지였다. 

이 비싼 한인민박의 장점 중 하나는 주인이 이집트 관광의 최적루트를 소개해 주고 그날그날 일정에 맞게 함께 다닐 사람도 엮어준다는 것이었다. 이집트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루트와 동행은 나도 해결할 수 있다고, 싶었지만 여자 혼자 이집트를 하루만 돌아다녀보면 이게 얼마나 큰 장점인가를 몸소 깨닫게 됐다.

  


어쨌든, 이집트에 가고 싶다고만 생각하고 아무 정보없이 덜컥 간 내가 ‘나는 사막과 유물을 보고 싶습니다’라며 대책없이 요구하자 호스텔 주인은 열심히 가는 방법과 동선을 고민해줬다. 

일단 사막은 카이로 근처에 바흐리야 사막에 주로 가는데 여기는 한 차당 금액을 책정하기 때문에, 한 차에 탈 수 있을만큼의 팀으로 묶을수록 비용이 저렴해진다고 했다. 마침 여기서 묵는 사람 중 두 팀이 다음날, 다다음날 각각 투어를 떠나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소개시켜 줄테니 원하는 쪽을 따라가란다.  

이 면담으로 어느정도의 일정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세탁기도 돌리고 웰컴 맥주를 마시고 나니 이집트도 약간 만만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같은 방의 언니와 대화하다 그쪽이 그 날 저녁 사막으로 가는 팀이란 걸 알게되고 고민없이 바로 그쪽에 끼게 됐다.  



이 팀을 따라가기 위해 내게는 버스터미널에 가서 저녁에 바흐리야로 출발하는 버스표를 구입해오는 미션이 생겼다. 가는 김에 람세스역에 들러 룩소르에 갈 기차표도 구입하고 시간이 남으면 박물관이나 시타델이나 올드카이로를 구경한 뒤 돌아오려는 것이 하루 일정이다. 호스텔 주인이 대략 약도는 그려주면서도 버스터미널을 좀 찾기 힘들다고 하기에 약간 고민은 했지만 가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싶어 무작정 출발했다.  

숙소가 있는 나름 한적한 동네에서 나와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지하철 표를 사고 칸에 올라섰는데, 

이건 뭐가 분명히 잘못된 듯 싶다. 지하철 칸에 있는 남자의 삼분의 일 정도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뭐지? 뭐가 잘못된 거지? 하며 그들을 둘러보는데 눈이 마주쳐도 시선을 피할 생각없이 정말, 계속해서,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지금의 내겐 잘못된 게 없는 것 같은데 그들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고(내릴때까지 주시하고 있었다) 이 칸에 앉아도 되는 것인가 백번쯤 고민하다 머뭇머뭇 자리에 앉으니 옆자리 아저씨가 어디에 가느냐고 물었다.

다행이다 싶어 지하철 노선도를 보여주며 여기에 갈 거라니, 그럼 여기서 내려 갈아타고 이쪽에서 내려야 한다는 지하철 노선도만 보면 알 수 있는 정보를 주고 계속 말을 붙였다. 조금 치근덕거린다는 생각이 들어 괜찮다고, 나도 혼자서 찾아갈 수 있다고 했지만, 그 아저씨가 내릴 역이 다가올 때까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버스터미널 근처 역.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내게 꽂히는 시선들을 뒤로 하고 역 밖으로 나서니 본격적인 도떼기 시장의 시작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길거리 상인들이 어디가냐, 이거봐라, 거기로 가라 하며 정신없이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몇 명이 한꺼번에 말을 붙이는 건지 정신 사납다 못해 무서울 정도였다. 갑작스런 부산함에 소음이 더해져 정신없는 상태로 허둥대다가 그 중 하나를 붙잡고 버스터미널에 어떻게 가야하냐고 물으니 바로 옆에 버스가 세워진 곳을 가리키며 그 곳이라고 했다.  

거긴 되게 복잡하게 간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쉬운데 싶었지만 그 곳으로 가 여기가 버스터미널이 맞냐고 물었더니 아니라며 이 버스를 타고가면 내려준단다.  

분명 걸어가도 되는 거리라 들었지만, 길을 모르니 일단 차에 올라탔는데 한참을 기다려 출발한 버스는 이백미터 조금 더 간 듯한 왕복 팔차선 도로 중앙선에 차를 세우더니 저기라며 여기서 길을 건너가라며 중앙선에 내려줬다.   

모든 차가 신호등같은 건 볼 생각 없이 클랙션을 울리며 미친 듯이 달리는 팔차선 도로 중앙에서 난 제대로 멘붕상태에 빠졌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나 이런데 예전에 본 거 같아, 네팔 사람들도 이렇게 대책없이 차를 몰았었지 하는 기분. 

살아서 가야겠다며 일단 차가 덜 오는 쪽으로 건너 인도에 가자마자 또다시 길가 상인들이 벌떼같이 호객을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다시 버스터미널을 물어봤더니 내가 건너온 반대편이란다.  

횡단보도 같은 것? 당연히 없다. 다시 모든 차가 신호등같은 것은 보지 않는 왕복 팔차선 도로를 멘붕상태로 무사히 길을 건넜다. 반대편 상인들의 말대로 고가도로 밑으로 가자 이번에는 이쪽의 상인들이 또 몰려들어 호객을 시작했다. 

그런 그들에게 버스터미널이 어디있느냐고 물었더니 이사람, 저사람 말이 다 달랐다. 다시 길을 건너가야 한다는 사람이 있고, 지하철역 쪽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고. 이때쯤엔 정말 멘탈이 탈탈 털렸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그 때였다. 저 멀리 자동차에 타있던 백발의 아저씨가 홀연히 나와 그 삐끼들을 모두 물리치고 내게 다가왔다. 유창한 영어로 어디에 가느냐고 물어 버스터미널에 간다니 자기를 따라오라며 몰려드는 삐끼들을 헤치며 데려다줬다. 가면서 어디에 가려느냐고 묻기에 바흐리야에 간다고 저녁 몇시 차를 탈 거라고 대답해줬더니, 다리 밑 허름한 조립식 건물에 데려가 아랍어밖에 할 줄 모르는 직원에게 통역해주며 표 사는 것을 도와주고는, 직원이 표를 끊는 중에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왜 끝까지 옆에 안 있고, 간다는 말도 없이 중간에 가버린 걸까를 생각하며 표를 무사히 끊고 밖에 나와보니 그는 문 앞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아랍어와 아랍숫자로만 쓰여있어 나는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표의 출발시간과 목적지를 확인해 주고는, 출발 삼십분 전에 이곳으로 와서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며 홀연히 돌아갔다.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있는데 잘 가라며 뒤도 안 돌아보고 가시던 쿨한 아저씨. 이름도 성도 사는 곳도 알 수 없는 귀인이었다.  


다시 돌아오는 길은 멘붕의 길건너기 1회가 포함되어 있기는 했지만 한 번 갔던 길에 이제는 좀 익숙해져서 돌아오는 건 수월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시 비슷한 과정을 한 번 더 거쳐 람세스역에서 룩소르 가는 기차표를 예매해야 했다. 

두번째 지하철을 탈 땐 여성전용칸에 탔다. 처음 지하철을 탈 땐, 어, 여기도 여성전용칸이 있네, 정도의 감성이었다면 첫번째 지하철의 시선집중을 경험하고 난 뒤엔, '여성전용칸에 타야해!!!!'의 느낌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곳에 있을때 좀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라고 안전하진 않았지만.. 그 얘기는 다음에...) 

이곳에서는 여성전용칸이 배려의 도구가 아니라 어쩌면 차별의 상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명시적으로 너희들은 다른 칸에 타면 안 돼,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여자들이 전 지하철에 딱 한칸 배정된 여성전용칸에 격리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람세스역으로 가 기차표를 예매하고 나니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있고 멘탈은 너덜너덜해져있었다. 한국에서는, 아니 다른 나라에서는 별것도 아닌 차표 두장 사기가 이렇게 힘들고 시간도 이렇게 많이 걸릴 줄이야. 

심신이 지쳐 커피라도 마셔야할 거 같다.   

그러나 들르는 찻집마다 커피 한 잔에 15파운드(약 3,000원) 이상을 불렀다. 맛있고 싼 커피를 파는 나라에서 막 건너온 참이라 커피에 까다로웠던 나는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계속 커피 가격을 보며 올드카이로쯤에 와서는 이 가격이라면 커피를 포기하겠다며 돌아서는데, 뒤에서 너에겐 특별히 8파운드에 주겠단다. 조금 혹하기는 했지만, 관심없는 척하며 6파운드에 주면 먹겠다고 흥정해 사 마신 터키시 커피. 왜 15파운드였던 가격이 2분도 안 되는 사이에 6파운드로 내려간 것일까, 이 나라의 적정가는 얼마인 것인가, 이것 참 알 수 없는 나라군 하며 한모금 마셨는데 이거 맛있다. 이 다음부터 쭉 터키시 커피를 마시며 돌아다녔다. 

(그래서 만나는 여행객들에게 터키시 커피를 찬양하며 권했지만 맛있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못봤다. 그냥 이건 내 취향인가보다.)   

카페인을 보충하자 좀 정신이 들었다.  


카이로 1일차, 사막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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