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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Dec 01. 2017

#3-이것은 위험의 전조?

이번 여행은 까미노에서 만났던 J언니와 함께 하기로 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만났던 사람들과는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정기적으로 만나는데 어느날 그 멤버중 한명인 J언니가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J: 호빵아 우리 자전거를 타고 대마도 여행할래?

나: 언니, 나 자전거 못타요.

J: 그래? 그럼 연습하면 되지.

나: 아~


산이 거기에 있으면 오르는 거고, 자전거를 못타면 배우면 된다는 심플한 논리에 설득당한 나는 정말 여행을 가겠다며 자전거를 배웠고, 까미노 때 J언니의 강철체력을 기억하며 달리기로 체력단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날.


나: 나 이제 자전거가 익숙해졌어요. 대마도에서 타면 완전히 마스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J: 호빵아 자전거 여행은, 자전거를 여기서 마스터해야 갈 수 있는 거란다.


라는 대화가 오고 간 후 연습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며 특훈의 일환으로 주변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섭외했다.



특훈코스는 집에서 왕복 55Km, 획득고도 약 1,000m 정도의 대청댐.

길을 시작하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섰다.

생각보다 빠듯하게 집에서 출발하는 바람에 마음이 바쁜 상태로 교차로에 진입하는 순간,

왼쪽 옆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자전거와 부딪쳤다.


받았다고는 해도 교차로라 속도를 거의 내지 않은 상태였다. 받힌 사람도 별로 아프지 않았는지 살살 타라며 짜증을 내고는 사라졌다. 나 역시 조금 놀랐고, 발등이 약간 욱신거렸지만 그 정도쯤은 참을 수 있을 듯 싶고, 약속시간도 다 돼가 다시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그것이 첫 번째 위험의 경고였을까.

그때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갔어야 했었던 걸까.

함께 자전거를 타기로 한 사람은 평소 라이딩을 즐겨하고, 대청댐 왕복도 자주 해본 친구.

‘나를 가르쳐 대청댐에 데려다 달라’는 요구에 너의 자전거 기종은 무엇인지, 너는 어디까지 자전거를 탈 수 있는지를 물어왔지만 사실 아는게 없어 대답할 수 없었다.

“어, 그러니까, 기어조절은 되는 접이식 자전거? 난 운동신경은 없지만 근성으로 모든 일을 하지. 아마 근성으로 55Km는 탈 수 있을걸.”


이날 내 자전거를 본 친구는 말했다. 이 자전거는 일명 철티비라고 불리는 라이딩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고, 아마 다녀오는 길이 꽤 힘들 거라고.


역시, 그때 모든 걸 포기하고 집으로 갔었어야 했던 걸까.



뭐, 그래도 다녀오는 길은 좋았다.

날씨는 갑자기 가을로 접어든 것처럼 적당히 선선했고, 무리하지 않으며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쉬는 동안엔 충분히 간식도 먹고 물도 많이 마셨다. 내 자전거로 가기 힘든 언덕빼기가 나왔을 땐 친구가 자신의 자전거를 빌려줘 비록 말수는 적어졌지만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을 올라가자 대청댐 전망대가 나왔다. 한참을 앉아 지나가는 고양이에게 빵도 뜯어주고, 물도 주고, 햇볕을 쬈다.

이제 길을 알았으니 몇 번만 혼자 자전거를 타고와 연습하면 무난하게 대마도도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침의 일은 위험의 전조가 아닌 그냥 작은 헤프닝이지 않았을까.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45Km쯤을 달려 이제 집까지는 잘 닦인 평지만이 남아있었다.

천변을 따라 자전거도로로 달리고 있는데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달리다보면 마르겠지 싶어 무시하고 달리는데 이 한줄기의 땀은 곧 이마를 거쳐, 콧등 옆을 지나, 입술까지 흘러내렸다.

핸들에서 한 손을 들어 닦고 싶었지만 나는 아직 초보, 이런 움직임이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하지만 이미 45Km를 무사고로 달린 내게는 쓸데없는 자신감이 폭발하는 시기였다.

왼손을 올려 소맷자락으로 땀을 닦았다. 그러자 핸들이 미친듯 휘청거렸다. 때마침 친구는 나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친구의 자전거 옆구리를 그대로 받고 땅바닥으로 떨어진채 넘어진 자전거에 깔렸다.


아, 이 모든 것은 정말 위험의 신호였던 걸까.


그래도 일어나 허리를 돌려보니 괜찮았다. 백팩을 메고 달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충격을 흡수했던 모양이다. 머리쪽도 살짝 땅에 부딪혔지만 헬멧을 쓰고 있어 얼굴을 다치지는 않았다.

엉덩이쪽이 몹시 아팠지만 아마도 이건 처음 떨어질 때 멍이 들었는가보라며 다시 일어나 페달을 밟았다. 

아직 집까지는 10Km가 남아있었고 자전거를 가지고 집에 갈 다른 방법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누웠는데도 엉덩이는 계속 욱신거리고 아파왔다.

약국에서 근이완제와 파스를 샀지만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욱신거려 비명을 지르게 됐다. 주말이 지나면 병원에 가봐야겠다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약 4주쯤 지난 뒤, 대마도에 가는 배에서 나는 다시 이 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 위험의 신호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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