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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Dec 08. 2017

#5-과연, 괜찮은 걸까

열심히 체력을 키운다고 했지만 역시 부상 앞엔 모든 것이 허사였다.
꼬리뼈 골절로 모든 운동은 금지, 당연히 자전거도 금지였다. 결국 나는 4주동안 개인시간엔 모두 누워 지내며 달리기는 꿈도 꿀 수 없었고, 자전거가 빠진 단촐한 짐으로 대마도에 가는 배에 올랐다.


그나마 출국 4주 전에 다쳐 여행을 갈 수 있다는데 만족해야 하는 건가.


이른 새벽 기차를 타고 부산항으로 향했다.



우리가 탈 배의 애칭(?)은 일명 ‘니나 타라 00호’
작은 쾌속선에 흔들림이 심해 날씨가 조금만 나빠도 심한 뱃멀미로 고생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배에 내려 어금니를 꽉 깨물며 내뱉는다는 그 애칭.
그러나 난 걱정하지 않았다.
난 25시간 배타고 러시아도 가봤고, 홍콩에서 마카오 가는 페리도 몇 번 타봤는데 그 중 한번은 한쪽 엔진이 고장나 바다위에 몇 시간 동안 서있다 다른 배에 끌려 오기도 해봤던 나름 경험자였던 것이다. 게다가 멀미를 안 할 자신은 있었지만 우리 배의 악명을 떠올리며 미리 멀미약까지 준비했다.

그렇지만 말이다. 이렇게까지 밑밥을 깔면 다음의 사건은 훤히 예상되지 않는가.
허허, 나는 정말이지 사상 최악의 뱃멀미를 대마도 가는 배에서 겪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약 한시간 사십분이 걸린다는 여정을 시작하자마자 배는 바이킹처럼 크게 오르락 내리락 했다. 배에 탄 사람들도 역시 바이킹을 탄 것마냥 ‘어어어’하는 소리를 내며 반응해줬다.

그러고나서 딱 2분 후, 몇몇 여성이 승무원의 부축을 받아 배 뒤편으로 비틀거리며 가 요가매트를 깔고 그대로 누웠다.

배가 출발하고 10분이 지나자 누군가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물었다.

이 배 언제 내리나요?



배는 앞 뒤 양 옆으로 다양하게 흔들렸다.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아무데도 이동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잠이 들면 멀미가 나지 않을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곧 잠은 오지 않고 속은 울렁거려 눈을 떴다.

그런 내 옆 창문 3분의 2 지점까지 파도가 쳤다. 파도가 한번 치면 창문을 통해 바다 속이 보일 지경이었다. 진심, 내가 잠수함을 탄 건지 배를 탄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난, 괜찮아! 하며 호기롭게 외쳤었지만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좌석 앞에 꽂힌 멀미봉투를 들고 양 옆으로 비틀대며 겨우 화장실 앞 안전바를 붙잡고 앉았다. 그리고 속엣것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아마도 미래에 인간이 모두 좀비화 된다면 아마 그 풍경은 이 배와 같을까.
큰 말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배 안에는 비틀비틀 화장실 앞 복도로 기어와 토하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남녀노소를 불문한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였다.
이 배를 능숙하게 돌아다니는 사람은 한쪽 주머니에 멀미봉투를 가득 담고 다른 주머니에 페브리즈를 담은 남자 승무원 한명밖에 없었다.
초토화된 사람들은 승무원이 지나갈때마다 팔을 뻗어 멀미봉투를 받고, 다 죽어가는 소리로 이 배는 대체 언제 내리는지를 물었다.

멀미봉투 좀 주세요 라고 하면 저렇게 한뭉치를 주고 간다ㅡ_ㅡ;;;


세상에서 제일 긴 한시간 반이 지나고 여전히 화장실 앞 복도를 떠나지 못할 때였다. 배의 움직임이 약간 이상해졌다. 아까까지는 달리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냥 흔들리기만 할 뿐 뭔가 속력을 내는 느낌이 없었다. 다시 사람들은 지나가는 승무원을 붙잡고 언제 내리는지를 물었다. 승무원은 ‘잘 모르겠다’란 대답만 하고 급히 멀미봉투를 나눠주려 사라졌다.



내가 있는 화장실 쪽으로 젊은 남자 하나가 비틀대며 진입했다. 안전바를 잡지 않고 비틀대며 걷던 그는 갑자기 흔들린 배에 5미터쯤 떠밀려 가다 벽에 부딪히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토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 머리 위쪽에 선 사람도 갑자기 토할 듯 싶어 얼른 받아뒀던 멀미봉투를 나눠줬다. 시계를 보니 우리가 출발하고도 두시간이 넘어있었다. 왜, 이 배는 도착하지 않는 것인가.



아마도 근해에서 파도가 세 진입을 하지 못했었던 건지 배는 예정시간보다 한시간을 더 떠돈 후에 그제서야 히타카츠항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배가 조금 덜 흔들리자 저 앞에서 어린아이가 엥하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렇게 미친듯이 흔들리는 배 안에서 지금까지 단 한명도 우는 아기가 없었다는 걸. 아이들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 울지도 못했던 걸까.



사람들이 모두 초주검이 돼 배에서 내렸다.
기나긴 입국심사를 마치고 땅을 밟자 커피라도 마시지 않으면 더이상 못 움직이겠다 싶어 주위 식당에 들렀다.

커피를 주문하고 와이파이를 연결하자 그제서야 숙소예약을 대행한 여행사에서 온 카톡을 읽을 수 있었다.


오늘 파도가 세 대마도 가는 배가 결항됐다던데 고객님은 도착하셨나요?


정말이지 이 여행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과연, 이 여행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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