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문제일까?

정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일까?

by 박진우

타인과 관계 맺는 어려움을 여러 번 되풀이하면 우울증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만든다고요.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스스로를 가치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립니다. 죽음도 불사합니다. 양육을 잘못한 부모의 아이가 죽는 것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나'임에도 불구하고요. 정신분석이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접했습니다. 정말일까요?


정신분석을 하다 보면 부모님을 죄인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님 때문에 나의 조현병이 생겼다. 우울증이 생겼다. 잘 못 태어나서 adhd가 생겼다 등등... 여러 가집니다. 동시에 양육을 무척 강조합니다. 이 말은 가뜩이나 아이 기르기 힘든 현대에 상당한 부담입니다. 뭔가 하나만 잘못하면 애 망칠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정말 그럴까요? 부모가 아이에게 그렇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그래서 사람은 관계에 의해서 오롯이 영향을 받고 자기 비난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운명일까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프로이트는 반박합니다. 유년시절에 신경증이 발병해도 그 아이가 스스로 신경증을 극복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프로이트는 설명합니다. 꼬마 한스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죠. 이런 주장은 칼 로저스와 같은 반프로이트 학파에서도 나오는 이야깁니다. 어린아이도 능력 있는 존재로 보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우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부모님의 문제로 자신이 괴로운 생활을 했다고 믿는 분들은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 본인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어떤 원인으로 이런 우울증에 빠져서 괴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을 지니신 분들에게는 부모가 죄인이 되는 것만큼 맘에 드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신경증에 시달리는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 내가 잘못했네. 내가 잘못 살았네. 내가 문제네!

그렇게 자기를 비하하는 방식으로 저를 공격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더 이상 생각할 가치가 없을 것으로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생각해봅시다. 부모님이 사라진다면 자신의 증상이 나아질까요? 회복될 수 있을까요? 부모님만 없으면 모든 게 해결이 될까요? 그렇다면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치료는 불가능해야 하지 않을까요? 원인이 외부에 있는데 내면을 다룬다고 해서 증상이 사라질 수는 없는 거죠. 예를 들어서 지속적인 감염으로 피부질환이 발생한다고 해봅시다. 피부과에서 진료를 받고 병이 낫습니다. 그런데 감염원이 근처에 있다면 감염은 다시 발생할 겁니다. 원인이 외부에 있다면 질환은 낫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신병원에서도 입원한 사람들이 자신의 증상의 인과론을 찾을 때 늘 부모님부터 시작합니다. 부모가 원인이 된다면 그런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더 열악한 가정에서 자라거나 부모님이 누군지 모르는 아이들이 훨씬 건강하게 자라는 경우들이 있다는 거죠. 따라서 부모가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가 미처 성립이 되질 않습니다. '나쁜 부모'라는 허울에 가려져서 자기 권리를 하나하나 포기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정신분석은 부모가 잘못 키워서 현재의 증상이 발병했다는 관점을 지니지는 않습니다.


원인이 사라져야 결과도 사라집니다. 신경증의 원인을 알면 증상이 사라진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부모가 원인이라면 부모가 사라지기 전에는 낫지 않는다는 말도 될 겁니다. 그런 방식으로 증상을 자신의 운명처럼 가공하려는 움직임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에게 상처 받고 학대받은 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경우에 신경증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정신 내적 움직임의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죠.


우리는 주변에서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특히 자해를 한다거나 신경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자주 합니다.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 자아를 보듬어주는 것일까요? 자아에 강조점을 두는 학문이 자아 심리학입니다. 그래서 강한 자아를 형성하면 신경증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혹은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생각하죠.


그런 식의 자아 심리학을 비판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라캉 학파에서는 자아가 지나치게 강화될 때, 오히려 편집증과 같은 정신병적 상태에 빠진다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초자아의 검열을 무시하고 자아가 자기 멋대로 한다는 말이죠. 강한 자아라는 말이 그렇게 좋은 건 아닙니다. 강한 자아의 강한 능력이란 게 신비주의라는 측면과 결합하면서 좀 엉뚱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나를 너무 사랑하는 것은 오히려 신경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나를 너무 사랑해서 상처 받지 않게 보호하려다가 발생하는 것이 신경증이거든요. 남을 사랑하고 그렇게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건강하게 사랑하는 방식일 겁니다. 리비도 분화구조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사랑을 권합니다. 사랑하면 덜 아프다고요.


정신분석에서 다루는 외부 현실과 정신 현실은 늘 균형을 갖추어야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은 분명히 곤란한 상태를 만듭니다. 그렇게 정신분석은 늘 현실을 다룹니다. 과거로부터 형성되어온 인격 구조로 현재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검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분석을 두고 과거를 자꾸 다룬다고 하는데, 그것은 정신 장치 형성을 추적하는 과정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에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정신분석은 궁극적으로 현실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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