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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Dec 09. 2020

저의 방어기제는 뭘까요?

갑자기 성격이 변했어요.

질문


예전에는 작은 것은 무시할 수 있고 과제도 미룰 수 있었습니다. 근데 군을 제대하고 뭔가를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과제도 미리미리 하고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공부했습니다. 덕분에 성적은 올랐지만 뭔가 불안증 같은 게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예를 들면 원래는 시험 전에 긴장하지 않았었습니다. 이제는 전보다 시험 준비를 많이 했음에도 시험 전날 한두 시간 정도 심장이 매우 빨리 뛰고 공부에 집중을 못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저는 시험을 걱정하면서 현재 상태에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생각이 멈추지 않았고 시험 중에도 매우 떨렸습니다.


건강염려증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시험 2주 전쯤인가 갑자기 배가 아프더라고요. 근데 이게 자꾸 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쌓아 올린 건 어떡하지... 무섭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실제로 배가 더 아픈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내시경 검사도 받았습니다. 이상은 없었지요.


저는 뭔가 대단히 많이 생각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웠고요. 공부도 당장 시작했습니다. 왼손 엄지가 약간 떨린 것 같았습니다. 힘도 좀 빠졌고요. 손떨림 같은 증상들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나중에 이런 것들을 찾아보니까 파킨슨병 증상 같다고 하는 말이 있더군요. 갑자기 또 무서워지면서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여자 친구에게 얘기해보고 조금 나아지긴 했습니다만 앞으로도 반복될까 두렵습니다.


예전에 교양으로 들었던 수업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내용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게 방어기제가 아닌가 하고요. 제가 인식하지 못했지만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쌓이다가 공부를 하거나 시험을 준비할 때, 학기 중에 이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서 공부하지 않으려고 이러는 것은 아닐까요? 문득 생각이 나서 적어봅니다. 그리고 혹시 해결법이 있을까요?


저희 집에서 공부로 성공한 사람은 외삼촌 말고는 딱히 없습니다. 사촌들도 공부 잘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열심히 해서 인 서울로 대학을 갔지만 가끔 공부하다가 사촌들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집중이 깨지기도 하고요. 근데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공부라는 게 환경도 중요하지만 노력으로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마음속에 공부를 못하는 사람에 대한 무시가 있는 건지, 아니면 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런 건지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도 티는 안 냈지만 공부 잘 못하는 사람을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공부도 안 하고 대인관계도 안 좋은 사람을 보면 싫어하긴 합니다. 둘 다 안 좋은 경우만요. 하나라도 괜찮으면 싫어하진 않습니다.


불안감이 있긴 한 거 같습니다. 저도 제 심리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할 공부가 많은데 이런 성격으로 잘 낼 수 있을까요? 너무 답답합니다.


답변


글을 쭉 보다 보니 뭔가 문제가 아닌데 문제를 만들고 싶어 하는 느낌도 좀 받게 되네요. 인 서울 대학에 갈 정도로 공부도 잘한 건 맞는데, 그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뛰어나고 한건 아닙니다. 모두 나름대로의 고충들이 잇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뭔가 완전해지고자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건강도 사회적 지위도 모든 걸 완벽하게 갖추려고 애를 쓰죠. 그런데 이 경우에는 변화에 유동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꽤 됩니다. 주변을 늘 본인 뜻대로 통제하고 싶거든요.


평소에 드는 건강 염려와 같은 것들은 일반에서도 충분히 등장합니다. 자신이 느끼는 것과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거기에 대해서 의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경우도 종종 등장하지요. 그런데 런것들은 실질인 문제라고 할 수는 없을 것 습니다. 왜냐면 그 불안감의 결과로 현실에서 성적도 올리고 또 긍정적인 효과들을 불러일으켰거든요. 이건 본인 입장에서도 납득이 잘 안될 수 있을 겁니다. 흔히 말하는 '병'은 정의될 때 부정적인 내용들이 먼저 깔리기 마련입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느끼신 불안감은 현실의 요구에 맞닥뜨리는, 아주 당연한 불안감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서 애쓰려고 하는 것이니까요. 그것이 최종으로는 본인에게 실리가 되어서 돌아왔으니 문제 삼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 곤란한 게 있습니다. 본인이 사람들을 대할 때 공부를 못하거나 대인 관계 안 좋은 사람들을 싫어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이건 그 사람들도 본인을 신경 쓰지도 않는데 먼저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 같네요. 그리고 그런 건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도 일치하는 것이고요. 이런 내용들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들이 신경증의 시작과도 일치할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들이 공부를 방해한다고 하면 자신에 대한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할 때 집중력이 깨지는 이유가 그 사람들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라 보다 건강하게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라는 메시지가 되는 겁니다. 좀 격하게 이야기하면 나대지 말라는 소리도 되겠네요. 자기 공부를 하는 것이 남들과 그렇게 상관이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공부로 성공하는 것에 대해서 일종의 선입관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한 내용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등장하지만 핵심적인 문제로 작용하는 경우가 습니다. 뒤에서 은밀하게 작용하는 힘으로 기능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을 '방어기제'로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여기에 어떤 방어기제가 작동해서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 점에 대해서는 오해 정도로 넘어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지금 본인의 행동의 기본은 의심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지 방어 기제로부터 비롯된다고 이야기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의심과 방어기제의 공통점이라면 나름의 논리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너무 그쪽으로 몰두하기보다는 현재 생활에 충실하는 것이 훨씬 이득으로 여겨집니다.


추가답변


질문 내용 자체는 그렇게 특별한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까지 자기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쓰는 것도 일종의 지성 행위로 자신의 문제에 대한 도움을 구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심리 문제에 대해서 '아니까' 생겨난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차라리 심리 문제에 대해서 모르고 관심도 없으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고민할 이유는 없죠.


특히 고민이 심해지면서 그것들이 일종의 히스테리 반응으로 등장할 때가 있습니다. 위에서 처럼 내시경을 받아봐야 할 정도로 통증도 생기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등장한 통증에 대해서는 의사가 별로 해줄 일이 없습니다. 증상 자체가 해부학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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