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우 Feb 03. 2021

코로나 블루, 레드

심리 방역?

 지난여름에 등장했던 신조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지속적인 우울감을 표출하는 것을 두고 '코로나 블루'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갑자기 예민하게 화를 내는 것을 두고 '코로나 레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둘 다 코로나로 인해서 사회적 활동이 중단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여겨집니다. 덕분에 심리적 불편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코로나 블루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래서 같이 나온 이야기가 '심리 방역'입니다. 국가에서도 상담전문가와 함께 이러한 코로나 문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활동이 위축되어있을 때 상담이라도 할 수 있다면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런데 코로나 블루나 레드의 경우는 상담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지속됩니다. 상담을 받아도 그때뿐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지난 글에서도 종종 언급했던 내용 중에서 신체 문제로 심리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었습니다. 코로나 블루나 레드는 신체의 활동이 제약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할 일이 없어지면 기운이 빠지고 무기력해지고 답답해지기 마련입니다. 혹은 활동성을 과도하게 살리려는 반응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이는 마치 '외로움'이 등장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대부분의 경우, 심리 문제의 원인을 생각할 때, 가장 수월하게 영향을 미치는 조건을 선택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불편하다면 정신에 혹은 뇌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코로나 블루의 경우에는 그동안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이상이 없던 사람들까지 비슷한 현상들을 나타내면서 우울감을 호소한다는 점입니다. 그 사람들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뇌 문제가 발생했을 리도 없고, 정신적 문제가 초래될 이유도 없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코로나 시기에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정신적 충격으로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등장하는 불안과 두려움은 주의해야 한다는 신호로 기능한다고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즉, 인간이 자동적으로 환경에 반응하는 생득적인 특성입니다. 주변 위험상황이 계속적으로 지속이 되고 있으니까요. 


 조금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봅시다. 흔히 말하는 <불안>에서 정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사람들은 누구나 불안감을 느낍니다. 길에 다니는 차도 불안의 요소가 될 수 있고, 비행기도 추락할 불안을 안고 있습니다. 정상에서는 이 불안을 인지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완화가 된다는 점입니다. 언제나 같은 불안의 텐션을 유지하지 않습니다. 마치 같은 자극을 계속 받고 있으면 둔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신경증이 발병하게 되면 이 자극이 둔감해지지 않습니다. 갈수록 예민해지기도 하죠.


 코로나 블루에 시달린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활동을 하고 대인 관계를 가질 수 있으면 다소 진정되는 측면들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다시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 있어야 한다면 다시 불안감이 엄습해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병리적인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의 정신구조에서 이러한 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외로움'도 병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외로움도 약으로 치료 관리한다는 보도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또한 외로움 역시 뇌 문제로 생각하려는 경향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외로움이란 모든 인간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병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삭제하려는 정신 위생적인 태도는 오히려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외로움이란 타인과 소통해야 한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외로움이란 타인과 신뢰관계를 형성하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이 신뢰관계를 형성하기 힘든 경우가 신경증에서는 드물지 않게 발견이 됩니다. 다른 위협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데 그 작용이 너무 강하면 건강한 활동조차 막아버리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등장하는 것이 코로나 블루로 여겨집니다. 지나치게 과민하게 반응할 때는 코로나 레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 신경증은 고립에 대한 주체의 저항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보다 건강해지고 싶은 소망의 표현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쉽게 회복이 되지 않는 것은 환경이 그 원인이 되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위기 상황이 주변에 자리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적으로도 문제를 삼고 있기도 하고요. 게다가 모임조차 통제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설날 가족모임도 제한이 생길 정도죠.


 코로나 신경증의 경우 회복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활동하는 것 외에는 따로 방법이 없다고 여겨집니다. 약이 도움이 된다고도 합니다. 약을 먹으면 현실에서 관심이 철회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활동성이 억제가 되니까 코로나 신경증은 진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저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권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코로나 블루는 사실상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활동에 발생한 제약 때문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심리 방역에 전문가들이 많이 동원된다고 하지만 코로나 신경증은 활동 제약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료계에서는 규칙적인 수면을 중시하고 일상생활 리듬을 잃지 말 것을 권합니다. 당연합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그 리듬이 무너지면서 코로나 블루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에 신경증과 관련해서 개발한 '컨디셔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신 분들도 신경증 문제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이 생활 리듬이 무너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낮밤이 역전된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만 제대로 복구할 수 있어도 많은 부분들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이 것은 코로나 블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담이 보조는 될 수 있어도 활동성 자체의 문제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프로이트라면 코로나 블루에 대해서 '현실 신경증'이라는 진단을 내렸을 겁니다. 현실 신경증이란 현실적 조건에 따라서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신경증 상태를 두고 이야기합니다. 과로나 체력적인 문제로 심리적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죠. 코로나 블루 역시도 현실적 조건에 따라 등장한 내용입니다. 활동이 제한되면서 발생한 사건이니까요. 회복하기 위해서는 생활 리듬을 다시 되찾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전염의 위험성으로 아직은 조금 곤란한 상태로 여겨집니다. 


 인간의 자아는 그 기능이 '생존'에 맞춰져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이 상태에 적응하는 것 외의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상담 장면에서는 내담자가 혼자서 환경 문제를 호소한다면 그에 맞춰서 바꾸면 된다고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그렇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맞춰서 내가 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특히 사회활동이 왕성한 나이의 청년들은 여기에 대해서 반감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그동안의 보도를 보면 프랑스나 미국에서도 방역에 반발하는 경우가 많았었습니다. 사회문화적인 요소들이 여기에 한몫할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괴롭고 힘이 듭니다. 견디기가 곤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개인이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가 경험하는 어려움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시기 어려움을 잘 견뎌서 다시 건강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의식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