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우 Dec 11. 2020

무의식에 대하여

첫 번째 시즌 마무리

질문


무의식화 되는 것은 기억과 감정인가요? 보통은 기억이나 특별한 경우는 감정도 기억되나요?


답변


무의식화 되는 것은 기억입니다. 그런데 보통 기억이 억압된다고 하면 단편적인 사실들이 사라지는 것으로 받아 들이곤 합니다. 그래서 신경증 치료는 과거의 억압된 어떤 사건을 떠올리면 치료가 된다... 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전의식 구조에 있는 자료를 탐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고요.


무의식은 아주 복잡하게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건 A가 억압되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억압의 특징은 그 주변까지 같이 억압을 해버립니다. 사건 A뿐 아니라 주변 사건들도 a1, a2, a3... 이렇게 다 같이 억압이 된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 억압 A는 또 다른 억압 B와도 섞입니다. 그것들이 모여서 무의식 구조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니 고대철학에서 비슷한 내용을 좀 찾아보죠. 엠페도클레스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이 철학자는 만물의 형성을 사랑과 미움으로 설명했어요. 서로 사랑하는 물질끼리는 만나서 결합하고 미워하는 물질끼리는 분리되어서 해체가 된다는 것으로요. 그리고 그렇게 모여진 물질들은 나름의 방식을 통해서 그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정신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억압된 것들이 모여서 다시 그 나름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또 의식에서는 억압되지 않은 것들이 모여서 나름의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질문하신 내용이 짧아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는데, 아마도 어떤 사건이 억압이 되어서 병든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무의식에 대한 대중의 태도는 과거를 끌어들여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 좀 많이 빗나갔습니다. 만약에 대중의 방식대로 무의식이 설명이 되었다면 프로이트의 정신 물리학이나 라캉의 대수식이 등장하진 않았을 겁니다.


억압이라는 말이 정치적인 느낌을 많이 주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는 유폐라고 쓰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그런데 시험에서 이렇게 답을 쓰면 틀립니다. 시험용으로 가르쳐지는 것 중에서는 정신분석 임상에서 유효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추가답변


무의식에 대해 오해되는 측면이 많습니다. 학교에서 배울 때 단순히 '기억 안 나는 것'정도로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교수님들은 자유 연상과 무의식을 혼동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유 연상을 해보라는 과제를 무의식을 찾는 방식으로 이야기되곤 하죠.

영화에서도 무의식 문제를 과거에 있었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사건 정도로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정신분석의 중간 맥락을 다 빼버리면서 등장한 현상이기도 합니다. 성 발달 문제도 프로이트 관점으로 들어가면 훨씬 많은 내용이 있지만 후대 학자들은 그것을 너무 단순화시켜버렸죠. 라캉이 그렇게 매력적이고 훌륭한 학설을 이야기했음에도 프로이트로 돌아가자고 한 것은 그 내용에 훨씬 복잡한 것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할 내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는 것이죠.


학교에서 배우는 정신분석은 그렇진 않습니다. 외워서 답 쓰는 정도고 그것도 좀 왜곡이 많이 되어 있습니다. 프로이트를 잘 가르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요즘은 정신 분석한다 하면 죄다 라캉 학팝니다. 제 스승도 라캉 학파에서 한국 지부장으로 오셨던 분이고요.  슬라보예 지젝 같은 학자들도 프로이트의 오역이 전 세계적임을 수차례 지적했습니다.

게다가 정신분석은 실용성 논란도 있습니다. 그렇게 실용적이지 않고 돈만 낭비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후대에서 불거진 문제고 실제 정신분석은 매우 실용적입니다. 프랑스어판 서문에는 프로이트가 언제나 실용적인 글을 썼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실제 정신분석 임상을 경험하는 사람이라면 프로이트의 실용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런 경우가 의외로 적습니다.



이것을 끝으로 증상을 검토하는 글의 첫 번째 시즌은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레벨업 프로이트]는 계속 연재될 것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가 잘한 걸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