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증의 의미에 대하여
이 내용은 제가 2018년에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에서 초청 강의로 진행한 것을 수정한 내용입니다. 서울 철학 아카데미와 동시에 초청을 받았을 때, 강의를 진행한 내용입니다. 이 강의에서는 신경증의 의미에 대해서 검토하면서 동시에 그것의 승화문제를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총 세편으로 나누어 연재할 생각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온라인으로 정신분석을 진행하는 [디지털 정신분석]의 박진우라고 합니다. 이런 자리에 초청받게 되어서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강의는 이정하 대표께서 파도 손 내에서 화두로 삼고 있는 <성장>에 대해서입니다. 그래서 증상과 성장이라는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저는 사실 정신장애라는 말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장애라는 말에는 영구적인 기능 저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신질환이나 신경증이라는 말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심각한 상황을 더 심각한 말로 표현하면 상황의 중요성이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이라고 하면 어떤 분들은 거부감을 가지실 수도 있습니다. 리비도라는 말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오해를 하나 짚고 넘어갑시다. 프로이트가 이야기하는 리비도를 단순히 성욕으로 보는 것은 금물입니다.
저는 리비도라는 말을 <사랑 능력>으로 씁니다. 인간이 사랑하고자 할 때 나타나는 에너지라는 것입니다. 유아 성욕도 그렇습니다. 어린아이가 엄마 아빠를 사랑하고자 할 때, 리비도를 투자합니다. 즉, 에너지라는 차원으로 바라봐 주시기 바랍니다.
프로이트가 생각하는 정신질환에 대한 관점은 정신의학과는 색이 다릅니다. 프로이트는 신경증자를 두고 <인류의 스승>으로 이야기하면서 굉장히 높이 평가합니다. 제 분석 경험에서도 그런 내용들은 관찰되기도 했습니다. 신경증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회복이 될 때 성적이 올라가기도 하고 연애를 시작하면서 안정을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혹은 갑자기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경우도 발견이 됩니다. 다른 말로는 '광기'라는 말도 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최근 사회에서는 정신질환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이 있어서 불편감을 가지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만 정신분석의 태도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행동도 분석해보면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스스로 회복하고자 하는 소망이 그렇게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제 증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 해 볼까합니다.
모든 신경증에서는 현실 생활에 대한 방해가 등장합니다. 현실에서 물러나게 되는 수단이 활용되거나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곤란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경증이란 우리가 억압한 것을 증상으로 바꾸면서 시작됩니다.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충동을 억압하려는 움직임이 처음에 일어납니다. 그 시점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힘이 들어집니다. 그다음으로 현실에서 멀어지게 되죠. 첫 단계에서 발생한 충동에서 멀어지기 위해서입니다. 이 두 번째 단계를 Trigger라고 습니다.
정신병은 조금 다릅니다. 자아가 초자아의 검열을 이겨내서 무의식을 바로 드러냅니다. 그렇게 현실에서 스스로 질서가 되고자 합니다. 따라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하기도 하죠. 이렇게 현실과 거리가 생겼다면 성장에는 한계가 부과됩니다. 어떤 일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멀어집니다.
다시 설명한다면 이렇습니다. 신경증이 발병하게 되면 현실에서 멀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고립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정신병은 무의식을 드러내면서 현실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려고 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망상의 개입으로 인해 선택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시위한다고 하더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겁니다. 고립을 선택하는 신경증자라면 나오는 것도 바라지 않을 겁니다.
우선 기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정신분석에서는 억제라고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방어기제의 억제와 혼동이 될 수 있으니 저지라는 단어로 대체하도록 하죠. 이 저지라는 말에는 '흐름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리비도의 흐름이 막히다 보니까 기능이 떨어지는 현상입니다. 흔히 말하는 증상과 기능 저하를 구분 짓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으니 넘어가죠.
신경증에서 저지가 어떻게 등장할까요? 프로이트는 이것을 성 기능과 식사 기능, 운동 기능, 전문 업무 기능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았습니다. 성 기능은 상당히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 자체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성 기능뿐 아니라 배변기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변비나 요로 결석과 같은 질환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 기능 문제는 관념과도 밀접합니다. 성의 문제가 '더럽다'는 관념과 연합함으로 심리적인 불쾌가 강해져 긴장이 증가합니다. 그래서 자극이 있어도 억지로 외면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것은 한편으로는 불안 처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성적 자극을 받아도 처리되지 않는다면 불안으로 변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슷하게 잦은 자위행위를 하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리비도 고갈이 반복되면 곤란해집니다. 조금의 에너지만 충전이 되어도 금방 불안해지고 따라서 곧바로 풀어버리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에서는 신체적으로 쇠약해지고 공부나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끌려들어가기도 합니다. 물론 성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견뎌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이미 신체적으로 쇠약이 심각해져 있다면 감당이 조금 어렵습니다.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이것은 대상 리비도의 철회 입니다. 철회된 대상 리비도는 자아 리비도로 변환이 됩니다. 이 상황이 되면 배도 별로 안고픕니다. 그래서 누가 뭘 좀 먹으라고 해도 관심이 없습니다. 억지로 먹일 수도 없죠. 이 상황이 장기화 된다면 꽤 곤란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간혹 망상에 의해서 식사가 방해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음식 망상의 전형적인 예는 '독'입니다. 음식에 독이 들었으니까 먹으면 죽는다는 겁니다. 망상의 문제는 미리 눈치챌 수 있으면 식사의 방해요소를 조금 일찍 찾아볼 수는 있습니다. 물론 망상이라고 해서 정신병에 한정할 수는 없습니다. 신경증에서도 이러한 망상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어야 한다는 강제력을 지닐 때도 있습니다. 인간은 굶주림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식탐으로 부릅니다. 자아는 살아남기 위해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강제력이 발휘되는 경우에는 많이 먹게 됩니다. 토하는 것은 먹음이 다른 관념과 연결되면서 등장하는 방어입니다. 먹고 토하는 경우를 잘 살펴보면 살을 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먹토를 하면서 치아가 상하거나 식도염을 앓는 등의 병증을 일으킴으로 스스로 처벌하기 위해서도 반복합니다. 자해의 방식으로 등장하는 것이죠.
운동성 저지의 경우도 꽤 많이 등장합니다. 때론 걷기도 싫고 걸을 힘도 없어집니다. 별로 움직인 것도 없는데 발이 무거워서 땅바닥에 눌러붙은 기분도 들죠. 히스테리의 경우에는 다리가 마비되기도 합니다.움직여지지 않는 것이죠.
또는 자꾸만 반복적으로 확인을 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가스불을 자꾸 확인하는 것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그 덕분에 일하는 것을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더 발달하게 되는 경우 가스불과 관련된 연상들을 차단해서 감긱기관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하죠. 그러나 이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이런 과정이 그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자가 치유적내용이기 때문이죠.
업무 처리를 하는데 저지가 발생하면 일하는 것이 싫어지고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계속 하게 되면 피로감, 현기증, 메스꺼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신체적 기능 마비가 생기기도 하죠. 그래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했던 일을 또 하게 되는 방식으로 산만해지면서 일이 매듭지어지지 않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자아 기능에 제한이 걸린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내용을 조금 더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피아노를 치거나 글씨를 쓰거나 걷는 행동이 성적 자극과 연결이 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성적 자극을 받았다는 말은 성관계 하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시진 말고 그것에 리비도가 많이 투자되었다는 것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실례로 여러분들이 집중해서 공부를 하거나 어떤 활동을 할 때,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경험하신 적이 있을 겁니다. 활동을 통해서 리비도가 처리될 때 신체적인 반응들도 나타나게 됩니다.
쓰는 행위가 성관계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해봅시다. 전의식, 잠재의식의 심상과 행위가 결합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쓰는 주체가 어머니 품에서 잠들고 싶은 어린 아이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것으로 보아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 근친상간의 의미를 띱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아버지 살해 나 근친상간과 같은 과격한 표현들이 많습니다만 그런 표현은 조금 지양하도록 하죠. 이런 표현으로 어린 아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어른의 생각처럼 과격한 행위로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피아노를 치거나 글씨를 쓰는 일이 금지된 행위의 실행을 의미하게 되면 리비도 투자가 과잉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아는 억압을 피하기 위해서 저지를 선택합니다. 기능을 떨어뜨린다는 의미죠.
스스로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 이용되는 저지도 있습니다. 직업적인 활동에서도 종종 그런 경우가 발견됩니다. 자아가 활동 수행을 금지하는 이유는 초자아가 성공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자아는 초자아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실패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때 초자아는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 병리적인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병리적 초자아를 과하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병리적 초자아의 내용 자체는 건강한 초자아와 다른 것이 없습니다. 다만 꼭 한 문장만이 더 붙어 있습니다.
너는 그것도 못해
라는 조롱섞인 문장으로 하여금 우리의 행동을 금지시키고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자아가 무리하는 경우에도 기능은 저하됩니다. 신경증 상태에서는 무리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등장합니다.
위의 내용들은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분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지어집니다. 바라지 않는 현상임에도 이상하게 계속 됩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과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마찰이 생기게 됩니다. 정신병원에서도 이러한 오해들은 생깁니다. 하기 싫어서 그렇게 한다는 의견도 있으며 나아가서는 일부러 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매커니즘들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렇게 신비적으로 고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심리적인 것이라고 하면 의식에 한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적 문제가 발생했다면 어떤 생각을 해야하는지 혹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크게 의미는 없습니다. 의식의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고 매번 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발이 발생합니다. 물론 약물로 치료한다고 해서 재발을 안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재발의 차원은 조금 다릅니다. 현상이 같이 보이더라도 상담으로 인한 재발은 구조의 변화 시도 - 저항이고 약물로 인한 재발안 구조의 강제 변화 - 저항 입니다. 이 내용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하도록 하죠.
정신질환이 어린 시절의 양육 때문에 발생했다고 해봅시다. 그래서 정신질환을 양육문제로 설명한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불만이 없는데 생긴 정신질환을 설명할 수 없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억에 숨겨진 아주 사소한 기억을 찾아내서 그것을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합니다. 그 순간에 뭔가 잘못되어서 현재의 상태가 되었다고 믿어버리는 겁니다. 그렇게라도 설명하지 않는다면 견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의 업적은 심리 현상이 어떤 내용으로 도출된 것이 아니라 에너지 차원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설명해낸 것입니다. 즉, 증상이 발생하면 그 에너지가 어디에서 오는지 찾아냈다는 겁니다. 병을 일으키기 위해서도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리비도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증상을 일으키는 리비도를 처리할 수 있다면 완급조절이 어느정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자아가 어느정도 발달해서 리비도를 처리하면 처음에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아가 발달한 이후에 리비도도 발달한다는 겁니다. 리비도가 발달하면 결국 증상으로 다시 리비도를 처리해야하는 상황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래서 자아가 강해지면 병도 같이 강해진다는 말을 합니다.
제 분석 임상에서 증상이 사라지고 바로 분석을 그만둔 케이스가 있습니다. 그 분들은 저와 분석할 때 내렸던 행동처방을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재발한 이후에는 그 처방이 도무지 듣지를 않았습니다. 리비도가 그만큼 발달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자기 치료의 '증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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