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가를 찾는 독특한 이유

제발 증상을 작동시켜주세요

by 박진우

프랑스에서 사람들이 정신분석가를 찾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처음 심리적 문제가 생긴 사람이 심리상담사를 찾아갑니다. 상담을 해도 차도가 없다면 그때 정신과 의사를 찾습니다. 그래도 문제가 계속된다면 최종적으로 정신분석가를 찾아갑니다.


제가 처음 공부를 시작하면서 들은 이야기였는데, 임상을 실천하면서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신분석이 만능은 아닙니다. 기존의 상담들이 효과가 없다고 할지라도 축적된 내용들은 사후 효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 외에 사람들이 정신분석가를 언제 찾을까요? 정신분석가를 찾는 경우는 아파서 찾기보다 삶을 즐기지 못해서 찾을 때가 많습니다.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아서 처방을 받고 약을 먹으려 합니다. 당연한 과정입니다. 심리적 문제로 괴로워서 약물로라도 편해지고자 하는 소망이 의식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혹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면 약으로 통증을 진정시키려고 하는 경우도 있죠.


정신분석과 같은 상담이 통증에 유효하게 작용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병원 다녀도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진통제로 버티면서 참고 삽니다. 그러다가 신경증 문제가 생기면 정신분석가를 찾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분석하다가 그 통증이 같이 사라지기도 하죠. 치료가 쉽게 되지 않았던 이유가 통증에 정신작용이 관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신 작용은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쉽게 알아차리는 것도 힘듭니다. 정신의학에서 신체화 장애가 까다롭다고 말하는 이유와도 같죠. 정신분석가들 중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 역시도 어느 정도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제 임상에서 강직성 척추염, 혹은 틱에서 정신작용을 관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증상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신구조에서 뻗쳐 나오는 히스테리 발작과 관계가 되어 있습니다.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신경증 발병을 막기 위해서 등장했다는 의미로도 작용합니다.




신경증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프로이트는 쥐 인간의 분석에서 강박증의 특징을 폐결핵에 비유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강박증자가 정신분석가를 찾을 때는 거의 말기에 찾아온다고 하죠.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괴로움이 멈추지 않을 때, 비로소 정신분석가를 찾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지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자가 치유 방식들을 굉장히 빨리 찾아냅니다. 이때 작용하는 정신 기제가 바로 '이동'입니다. 이 '이동'이 너무 빠르다 보니까 등장하는 문제가 의식 간의 연결이 약해집니다. 관념과 관념 사이를 묶어주는 힘 자체가 약해져 버리고 이후에 그 관계가 끊어져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원래 괜찮아졌던 방법들이 생각이 나지 않게 됩니다. 결국 막연한 괴로움에 처하게 되는 상황이 시작됩니다.


신경증 발달의 방식이 그렇습니다. 저런 과정을 거쳐가면서 방어기제들이 중첩됩니다. 처음에는 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렇게 발달하다가 증상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지점에 이릅니다. 증상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겉으로 드러나는 방어기제의 해석은 크게 의미가 없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이것은 꽤 문제가 되지요. 초기에 합리화하던 방식들이 뒤에는 기묘하게 바뀌어버리기도 합니다.


신경증이 다소 괴로운 측면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아예 작동하지 않을 때,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증상의 작동 자체가 멈춰버리면 아무런 만족감도 없이 멍한 상태가 됩니다. 마치 지독한 약물에 취해서 사리 분간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최후로 정신분석가를 찾습니다. 이때 정신분석가를 찾는 이유는 자신의 억압을 풀어서 최소한의 증상을 작동시켜달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증상이 작동하면 최소한의 자기 방어가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편해지기도 하죠. 증상이 작동하지 않음으로 고통스러워지는 상황까지 왔다면 꽤 심각한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강박증을 폐결핵에 비유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신경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왜 말기가 되어서야 정신분석가를 찾으려고 할까요? 약도 소용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신경증 자체는 병들지 않기 위한 '자기 보호'의 하나입니다. 이 자기 보호가 너무 강해지다 보니까 오히려 괴로워지는 상황이 된 겁니다. 약으로 잠은 재울 수도 있겠지만 치료와는 전혀 무관한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자아를 강제로 억제한다고 해서 중첩된 방어기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분석 몇 회기 진행하다가 다소 편해지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에 직면합니다. 대부분 당장의 괴로움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증상의 발달은 생각 이상으로 교묘합니다. 그렇게 지난 방식들을 의미 없게 만들어버리기도 하죠. 즉, 치료방식에 대한 방어가 형성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형성된 방어는 조금 더 교묘해서 복잡해집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제가 쓴 임상보고서 중 [좌절의 안다미로]를 참조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과거에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상담사만 만나면 싸우는 사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자기 우울증을 좀 낫게 하고 싶다고요. 그 사람의 최대 문제는 상담사만 만나면 자꾸 싸운다는데 있었습니다. 물론 분석을 개시하자 저와도 싸우려고 시비를 걸려고 으르렁댔습니다. 그래도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니 그렇게 상담사와 싸우는 것 자체가 일종의 방어로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즉, 상담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은데 의식에서는 낫고 싶어서 상담사를 찾는다는 말입니다. 상담사와 싸우는 것은 방어 행동으로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싸우고 저와도 계속하진 않았습니다. 상담사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죠. 제가 만든 카페 초창기에 있었던 일이라 근 십 년이 다 되어 가는 일입니다. 그 당시에 온라인으로 정신분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국제 정신분석학회에서도 조금씩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국내에는 아예 없었고요. 지금처럼 비대면 상담을 활성화시키려는 움직임도 없었던 때입니다. 그 여자분은 청소년도 아니었으니 위센터 같은 곳에 가라고 할 수도 없었고요.


상담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에게 정신분석가는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정신분석가는 분석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안내자의 역할입니다. 치료와 자기 탐구는 주체에 의해 선택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프로이트는 치료가 선물처럼 등장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자기 탐구의 과정을 거치면서 증상에 투자되던 에너지가 현실에 투자되고 그것이 승화로 이어지면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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