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우 Mar 15. 2022

무엇이 그들을 결속시켰을까?

우크라이나의 결사 항전을 보면서

*이 내용은 제가 얼마 전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한 내용을 수정해서 올린 것으로 프로이트가 집단심리에 대해서 연구한 내용입니다.



프로이트도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글들을 남겼습니다. 특히 아인슈타인과 나눈 ‘왜 전쟁인가?’라는 내용은 특히 유명합니다. 이 텍스트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분들이 프로이트가 반전운동에 참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프로이트가 아인슈타인의 제안을 거절하는 내용입니다. 만약 프로이트가 아인슈타인의 제안을 수락했다면 1955년에 프로이트 – 아인슈타인 선언이 발표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거절했기 때문에 반전운동에 동참하는 버트랜드 러셀과 아인슈타인의 이름으로 성명문이 발표되었습니다. 프로이트를 세심하게 읽었다면 이 내용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프로이트가 연구한 ‘집단 분석’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합니다. ‘왜 전쟁인가?’라는 내용은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왜 전쟁인가?’라는 글이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설명하자면 끝도 없을 겁니다. 물론 번역어의 문제도 다루어야 할 겁니다. 

      

우선은 프로이트가 연구한 집단 심리학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집단 심리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책이 있습니다.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지금도 널리 읽히는 책입니다. 특히 지도자들에게는 필수적인 도서 기도 합니다. 프로이트 역시 이 [군중심리]를 읽은 이후에 집단 분석에 돌입합니다. 프로이트의 집단 심리학과 자아분석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프로이트는 르 봉의 서술 중간에 토를 달았습니다. 집단속의 개인들이 하나의 통일체로 결합된다면 그들을 묶어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연구를 한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르봉의 연구에서 개인이 집단 속에서 드러내 보이게 되는 새로운 특성을 찾습니다. 


 첫 번째로 집단 충동입니다. 집단이 결속하게 되면 개인의 충동보다 거대한 크기의 충동을 지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충동을 억제하질 못하게 됩니다. 여기서 개인을 억누르는 책임감은 사라지게 됩니다. 물론 이런 특성은 범죄에도 적용이 되지만 전시상황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개개인의 책임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 위기상황에서는 개인이 지켜야 할 그 책임들을 잠시 내려놓아야만 합니다. 하나의 통일체로써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질서유지’라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현재 내가 살아가는 국가의 질서를 지켜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로 통일하게 되는 것이죠. 비슷한 예로 사이코패스와 같은 범죄자도 교도소 내에서는 질서를 지킨다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두 번째 원인은 전염이라고 합니다. 집단 속에는 모든 감정과 행동이 전염성을 갖습니다. 이것은 한 개인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기꺼이 희생할 만큼 강합니다. 개인의 본성과는 상반되기도 하죠. 우크라이나 군에서 러시아의 진군을 늦추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면서 다리를 파괴한 군인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희생한다고 해도 국가와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자 했을 겁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모든 국민들이 이런 상태일 겁니다. 하나로 결속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로는 ‘피 암시성’입니다. 먼저 이야기한 전염 역시도 이러한 피 암시성에서 파생된 것으로 봅니다. 집단의 지도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되죠. 이 피 암시성의 결과는 의지와 분별력이 사라지고 집단의 의지에 따르게 됩니다. 이 피 암시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특히 이번 전쟁에서 볼렌스키 대통령은 도망가지 않고 지도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태도가 지도자를 향한 신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러시아에서 볼렌스키 대통령을 1순위로 처치하려는 것도      

 

집단의 경우는 자기들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집단 속의 개인에게는 불가능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수적 열세에 밀린다면 일찌감치 포기할 수도 있지만 집단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집단의 감정은 굉장히 단순하고 지극히 과장되어 있습니다. 의심과 망설임도 없죠. 이 집단의 움직임은 그 지도자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지도자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집단은 유지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볼렌스키 대통령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는 계속 러시아에 저항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는 집단이 언어에 의한 힘에 순종적이라는 의미도 포함되고 있습니다. 지도자의 말은 집단의 변화를 이끌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지도자의 말은 집단에 힘이 되고 활력이 되지만 나쁜 지도자의 말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집단을 밀어 넣습니다.      


 프로이트는 집단과 신경증의 심리적인 관계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합니다. 신경증의 심리상태를 이루는 주된 요소는 공상에 잠기는 생활과 충족되지 않는 욕망에서 생겨난 ‘환상’을 꼽습니다. 그래서 신경증 환자에게는 우리 일상의 외부 현실보다 정신 현실에 그 무게추가 더 쏠려있습니다. 히스테리는 실제 경험의 반복보다 환상에 바탕을 두고 있고 강박증적 죄책감은 나쁜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 자체에 바탕을 둡니다. 이것은 집단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객관적 사실을 검증하는 기능이 뒷전으로 물러납니다. 대신 감정적 리비도 투자를 받은 충동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이것은 정치인들의 프로파간다에 의해서도 작동됩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입문에서는 정치인들의 말실수를 통해서 분석작업을 하는 것들도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국내 정치인들의 선거운동을 통해서도 이러한 감정적 리비도 투자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이끌리는 대로 투표하는 경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때는 그런 감정적 투표를 저지하기 위해서 또 다른 전략을 펼치기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선전 활동은 어느 당에서나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흔들고 그에 따라 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우크라이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제가 보았을 땐 우크라이나는 전쟁의 승패와 무관하게 현재 격렬하게 저항할 수 있는 이유가 볼렌스키 대통령의 위신 때문으로 보입니다. 위신이란 우리에게 발휘되는 일종의 지배력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위신 앞에서는 비판력이 마비되고 마음이 존경심으로 채워집니다. 최면술에서 홀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르 봉은 인위적인 위신과 개인적인 위신이라는 차원을 구분합니다. 인위적인 위신이라고 하면 가문이나 재산이나 명성, 사상, 학문 등입니다. 그런데 지도자에게는 두 번째 개인적인 위신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것을 두고 카리스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런 효과를 일으킵니다. 대신 모든 위신은 성공에 의존합니다. 실패가 닥쳐오며 그 위신은 사라져 버립니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상황에서 전쟁에 패한 지도자는 그 위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한 지도자적 측면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푸틴이 국제적 금융 제제에도 자기 위신을 지키기 위해서 침공을 강행하는 것으로도 여겨집니다. 즉, 푸틴 입장에서는 이제 물러설 수가 없다는 말이 되겠죠. 전쟁에서 패배한 지도자는 결국 실패한 지도자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들은 프로이트가 집단 심리에 대해서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물론 프로이트를 더 읽어보신다면 훨씬 더 풍부한 내용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라캉이 그랬듯이 프로이트 주변에는 떨어져 있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