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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Apr 15. 2017

양들의 침묵

가장 뛰어난 범죄영화

 양들의 침묵이라는 영화는 현존하는 스릴러 영화 중에서 가장 파급력이 큰 영화이기도 하다. 특히나 사이코패스라는 개념 역시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더없이 중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가 어떤 상상을 하고 이 작품을 썼는지에 대해서 흥미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는데 그것이 <담론>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담론 구조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자. 결론을 미리 말한다면 한니발 렉터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는 소리일 것이다. 보통 그를 사이코패스의 전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유영철과 같은 범죄자도 사이코패스로 본다. 만약 유영철이 사이코패스라면 살해전 자기 아들의 목소리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클라리스 스탈링은 어린 나이에 FBI에 들어간 엘리트 요원이다. 한니발 렉터 박사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유일하게 스탈링에게만큼은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따라서 렉터 박사는 스탈링에게만 이야기한다. 재미있는 것은 스탈링을 지켜보고 즉각적으로 어떤 분석을 내 놓는 것이다. 그녀의 행동 특성에 관해서다. 그것은 틀리지 않았다.
 

 스탈링은 그의 분석에 대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렉터 박사가 보여주는 마력은 스탈링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렉터 박사와 같은 지적 능력이 그녀의 <이상>이었다면 아우라가 느껴졌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상호 간에 작용하는 마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시리즈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주된 주제이기도 했을 것이다. 물론 영화와 소설은 명백히 다르다.

 

 한니발 렉터는 남자 요원들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어떤 정보도 주지 않지만 오직 스탈링에게만큼은 어느 정도의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 렉터 박사는 그녀를 탐색했다. 스탈링 역시 렉터 박사를 탐지하려고 애를 썼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정신분석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문학에서는 프로이트와 대비되는 인물로 셜록 홈스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후대의 작가들은 두 사람을 대비시켜서 작품을 많이 만들었으며 둘은 동시에 타임지에 실리기도 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 될 것 같은가? 
 

 정신분석을 한다는 것은 <명탐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내면에서 증상은 마치 영리한 범죄자처럼 동에 번쩍 서에번쩍 한다. 단순한 대화 속에서 분석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는 다양한 역동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방어기제의 작동이다.  증상은 결코 잡히려 하지 않는다. 그 상태에 머물러있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증상은 누구에게 드러내 보이는가? 바로 자신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타자'에게 드러내 보인다. 즉, 자신을 알아봐 줄 수 있는 유일한 이성이다. 한니발에게 그 사람이 스탈링이었다는 말이다. 여자가 남자의 증상이라고 했던 지젝의 말은 여기서 드러나지 않는가? 스탈링은 한니발의 '증상'이 된다. 따라서 스탈링은 한니발의 만족감을 담보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땐 둘만 있으면 세상이 자기 것 같을 테니까 말이다. 

 

 여담으로 언어라는 단서를 추적해서 범인을 잡는 것은 홈스보다는 뒤팽에 가까울 것이다. 라캉의 도둑맞은 편지 세미나가 아직까지 회자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라캉이 썼기 때문에? 아니다. 그는 언어를 통해서 어떤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을 발견한 사람이다. 따라서 편지라는 매개체가 상징하고 있는 욕망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에드거 앨런 포우가 천재적인 작가적 재능을 보여준 것이다. 


 양들의 침묵 시리즈 전편에서 한니발 렉터라는 인물은 절대적인 역할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그가 식인을 했다는 것을 가지고 사이코패스로 그를 오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식인이 가지고 있는 그 의미를 탐색해보아야 한다.  영화 한니발 라이징에서 어떻게 식인이 시작되었는지를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식인의 의미를 찾아야 했을까? 식인의 근원을 우리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왜 식인을 해야 하는지 그 형성 과정에 근원이 자리 잡고 있다. 시작점이 형성 과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트리거로 인해서 촉발되었다고 하지만 구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트리거 자체가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정말 식인을 일삼았던 식인종의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식인종들이 식인을 하는 의미가 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 의미는 어떤 차원에 있을까? 그들은 힘을 얻기 위해서 식인을 했다. 따라서 자기가 보기에 신비한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백인들을 주로 먹어야 했던 이유가 그것이다. 

 

 우리는 마나설의 근원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그가 무엇을 위해서 식인을 해야만 했는지를 다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신기해 보이면 신비한 힘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겨도 자꾸 보게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여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보기와는 다른 그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는 말이 될 것 같다. 그가 젊은 남자 경찰을 뜯어먹어야 했던 이유는 아마도 소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한니발 렉터 박사는 고도의 지능범이다. 현재까지 나온 범죄 영화에서 이 정도까지 지능적인 범죄자는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상황을 내다봄과 동시에 탁월한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고 움직일 수 있는 과감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조그만 단서에서 연결되는 내용들을 통해서 범죄자의 흔적을 추리해 낼 수 있을 정도다. 

 

 때마침 스탈링이 검거하고자 하는 범죄자가 있었다. 버팔로 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FBI도 그를 검거하지 못했다. 그의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던 스탈링은 렉터 박사에게 도움을 받는다. 렉터 박사는 몇 개의 단서만을 듣고 그가 어떻게 움직였을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범죄 드라마 중에서 유명한 크리미널 마인드와 같은 작품을 보신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즐겨보던 드라마였다. 한때, 스펜서 리드 따라 한다고 리드처럼 책 읽는 포즈를 잡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_- 분당 이천 글자 못 읽었다.....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나타나는 행동분석은 일단 동기를 찾아내는 프로파일링이다. 그 동기를 찾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행동 범주를 설정하게 된다. 이전 사례들을 통해서 어떠한 전형과 맞아떨어지게 되는지를 관찰한다. 그러면 그 주변 상황을 교차로 대조해보면서 가장 흡사한 동기를 가진 인물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렉터 박사에게는 이 작업들이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가 있었다. 따라서 빌의 동기를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 방식이 곧 '진단'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렉터 박사가 버팔로 빌을 어떤 식으로 진단하게 되었는지도 살펴볼만한 문제다.


 버팔로 빌은 세 사람의 살인마를 조합해서 만든 가상의 인물이다. 그는 여자들을 연쇄로 살인하는데 그의 행동 특성을 두고 렉터 박사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단순히 미친놈이라고 진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분명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으며 현실에 작용하는 망상들이 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단순하게 미쳤다고 설명한다면 우리는 그를 전혀 알 수 없는 범죄자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스터리>에 해당하는 범죄자가 된다는 말이다. 

 

 버팔로 빌은 여자들의 가죽을 벗겼다. 살인을 한다는 죄책감도 없었다. 우리는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어떤 조건이 선행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여기서는 대상 선택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개입된다. 그가 가지고 있던 충동들의 해소 방식들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세심한 탐구가 필요한 법이다. 

 

 우선은 죄책감 문제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조건에 대해서 정신의학적 입장은 <초자아가 없다.>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동의를 할 수 없다. 초자아가 없다면 사회적인 기능 자체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중요한 문제는 대상 선택의 문제다. 그가 왜 여자를 대상으로 선택했느냐는 것이다. 초자아가 없다는 설명은 대상의 문제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게 해주지 않는다. 다른 정신 장치의 개입이 선행되어 있고 그에 따른 대상 선택과 죄책감의 문제가 함께 설명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은 이러한 구조에서 편집증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자아는 나르시스 에너지와 연합한다. 그리고 나르시스와 연합했기 때문에 나르시스적인 대상을 선택할 수 있다. 그가 소망하는 것이 성전환을 통해 여자가 되는 것이라면 그는 그 대상을 유혹해서 사랑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는 그 여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동성애 충동'이 될 것이다. 동성애 충동의 문제는 대부분 승화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우정이라는 이름이 되는데 이것의 승화가 막히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범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승화가 막힌다면 동성은 친구가 아니라 성대상의 지위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성대상의 지위를 가진 그는 성적 매개물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 하고 그 의미가 정신에서 옅어지게 되는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 결국 그는 남자를 사랑하고 싶었다는 말이다. 여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랑하고 싶은 남자가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발기능력을 상실했을지도 모른다. 편집증에서의 내적 갈등은 굉장히 치열하기에 발기능력을 상실시킬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사이코패스가 발기부전에 빠져있다는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그러나 사이코패스와 같은 행동 특성을 보이지만 발기가 되는 사람도 있다. 그는 변태증자다. 한니발은 여기서 사이코패스를 벗어난다. 차후 작품에서 그의 성적 능력의 증거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빌에게 돌아가자. 그 여자가 되기 위해서 그에게는 의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의식은 그의 망상에 기초해서 나타날 수 있다. 그는 의학의 힘을 통한 성전환 시도를 거부당했다. 그러나 그의 망상은 이때 속삭인다. 여자가 되기 위해서 여자의 껍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나방이 고치에서 탄생하는 이미지를 품고 있지 않은가?


 그는 자신의 이상 대상처럼 되기 위해서 그 껍질이 필요했다. 자기 신체 분량 이상의 껍질을 모아서 여자로 다시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여자가 미워서 살해한 것이 아니다. 그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살해를 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들은 일반에서 떠올릴 수 있을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의 동기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현상에만 몰두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해'이다.

 FBI는 이러한 동기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빌을 잡지 못했다. 그러나 렉터 박사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를 잡을 수 있게 돕는다. 물론 그는 감옥을 탈출한다. 감옥을 탈출하면서 옆 감방에 있던 정신이상 범죄자를 죽인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이 있다. 그는 목을 졸라 죽이지 않는다. 다만 몇 마디를 속삭였을 뿐이다. 



  이 사람이 어떻게 죽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신경증과 정신병에서 언어의 차원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신경증자는 언어에 자신의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병자는 그렇지 않다. 담화 자체에 종속되어 있다.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정신병자는 무의식을 겉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말이다. 

 

 즉, 한니발은 그의 무의식 구조를 알 수 있었던 사람이다. 따라서 그의 무의식 구조에 접근해 있었다. 무의식이 궁극적으로 행동을 일으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면 히스테리의 도움을 통해서 신체기관이 그의 말에 종속될 것이다. 그것이 언어의 힘 아니었나? 


 한니발이 말한 것은 아마도 그가 결국에는 숨기고 싶었던 비밀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극도의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단서였을 것이다. 일반에서는 그가 미친 사람으로 보였지만 한니발에게는 아니었다. 그의 행동들은 무의식 단서로 기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금되어 있는 동안 마음껏 떠벌리게 놔두었을 것이다. 결국은 거기에서 감추고 싶어 했던 비밀의 단서를 찾아냈을 것이다.


 얼마 전 조현병으로 치료받았던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의 동기를 모른다. 따라서 그녀에게 들러붙어 있던 수식어인 조현병만을 가지고 비난한다. 다른 동기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를 때, 몇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과거의 재현이며 두 번째는 소망의 실현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자기방어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동기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낙인은 이러한 동기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못한다. 다만 하나의 커다란 덮개 개념으로만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범죄의 설명에 집착할 수 없다면 덮개 개념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덮개 개념을 벗겨냈을 때 범죄의 진정한 의미에 한 발자국 다가설 수 있다.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무의식적인 내용이라면 그것들은 상식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상식은 의미를 비켜나가게 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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