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스어로 되새기는 외로운 우물
우리는 '켈트'라는 말에 신비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켈트족은 판타지에서 등장하는 경우도 있고요, 또 타로카드 덱 중에서도 '켈틱 드래곤'이라는 덱이 있기도 합니다. 켈트족 특유의 음유시인(Bard)의 서정적인 전통과 용의 전설. 그리고 울창한 산악지대의 정체성을 잘 표현한 카드덱인 거 같습니다.
Bard라면 우리는 대부분 게임이나 판타지 소설에서 접해본 이름일 겁니다. AI 모델 중에서도 Bard가 있었습니다. 그런 음유시인의 전통을 품고 있습니다만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소멸위기 언어입니다.
웨일스 어는 브리튼 제도의 켈트어파 중 하나인 브리소닉어 군에 속하며 특히 음유시인의 전통과 서정성이 강한 언어입니다. 오랜 기간 영어의 압력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 왔으며 웨일스 민족의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그 생존 자체가 끈질긴 저항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내용을 좀 살펴봅시다. 1536년에 웨일스에는 병합 법률이라는 것이 등장합니다. 헨리 8세가 웨일스를 잉글랜드와 법적으로 통합하면서 웨일스어를 법원 및 공공 행정에서 공식적으로 금지한 겁니다. 이로 인해 웨일스어는 쓸모없는 언어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거기다가 19세기 들어서 교육 기관에서는 웨일스어를 사용하는 학생에게 'welsh not'이라는 나무조각을 목에 걸어 벌을 주었습니다. 이는 웨일스 어를 사용하는 것을 개인의 수치로 만들어 스스로 침략자의 언어(영어)를 따르게 하고 모국어 화자인 자신을 혐오하게 만드는 심리적 억압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심리적 억압은 이전의 류큐어나 위구르어 탄압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웨일스 인들은 수백 년 동안 자신의 언어를 지키지 못하고 숨겨야만 했습니다. 어쩌면 수치스러움이 그 안에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웨일스 민족의 고독한 성찰은 일제에 침략 당해 언어를 빼앗길 뻔했던 우리 역사와 어느 정도 공명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웨일스 정부에서도 웨일스어를 살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공공영역에도 웨일스어를 도입해서 30% 정도는 회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장 살아있는 켈트어라고도 합니다. 웨일스어가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 한번 봅시다.
Llanfairpwllgwyngyllgogerychwyrndrobwllllantysiliogogogoch
엄청 긴 문장입니다. 발음은 "흐란바이르풀흐귄기흐고게리흐원드로불흐란티실리오고고고흐"라고 합니다. 의미는 "흰 개암나무 근처 빠른 소용돌이 옆의 성 티실리오 교회가 있는 붉은 동굴의 흰 개암나무 근처 마을" 이이라고 합니다. 시적 표현이 풍부해질 거 같네요. 그리고 여기는 실제로 있는 위치라고 합니다. 독특한 마을의 이름 때문에 관광명소로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다른 말로는 이런 게 있습니다.
Pob lwc! (웨일스어: 행운을!)
그럼 잠시 번역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웨일스어는 한국어 및 영어와 매우 구조가 다릅니다. 그래서 ai 번역에 독특한 도전 과제를 제시합니다. 어순도 그런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어는 (SOV) 어순을 지닙니다. 그런데 웨일스어는 동사가 문장 맨 앞에 오는 VSO 어순을 가집니다. 한국어와 완전히 다른 이 어순은 문장 전체의 구조적 재해석을 요구하고, 시와 같이 복잡하고 비관습적인 문장에서는 AI가 정확한 의미를 재 구성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Ar ôl troi cornel y mynydd, at ffynnon ddieithr wrth y caeau reis,
Rwy'n mynd ar fy mhen fy hun, ac yn syllu'n ddwfn, yn ddigyffro.
Yn y ffynnon, lleuad lachar a chwmwl yn llifo,
Mae'r awyr yn ymestyn, a gwynt glas yn chwythu,
A hydref ydyw, yn drist.
A dyn, yn unig.
Rywsut, rwy'n casáu'r dyn hwnnw ac yn troi'n ôl, yn ffyrnig.
Wrth gerdded yn ôl, rwy'n meddwl bod y dyn hwnnw'n ddiflas, yn wan.
Rwy'n dychwelyd ac yn edrych i mewn, mae'r dyn yno o hyd, yn ddisymud.
Eto, rwy'n casáu'r dyn hwnnw ac yn troi'n ôl, yn aflonydd.
Wrth gerdded yn ôl, rwy'n meddwl fy mod yn hiraethu am y dyn hwnnw, yn ddwfn.
Yn y ffynnon, lleuad lachar a chwmwl yn llifo,
Mae'r awyr yn ymestyn, a gwynt glas yn chwythu,
Mae hydref a dyn, fel atgof, yn ddidrafferth.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낯선 우물에 다다라,
나는 홀로 가만히 깊이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쳐지고 파란 바람이 붑니다.
그리고 슬픈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외로운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성큼성큼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고 나약합니다.
다시 돌아와 들여다보니 그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또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불안하게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깊이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쳐지고 파란 바람이 붑니다.
가을과 사나이가, 추억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인공지능(AI) 기반 번역 시스템은 원어와 번역어 간의 문법적, 의미론적 간극을 메우는 과정에서 독특한 번역 메커니즘을 드러냅니다. 본 보고서는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한국어 원문, 웨일스어 번역본, 그리고 다시 한국어로 역번역된 텍스트를 비교 분석합니다.
분석의 목적은 AI가 웨일스어의 VSO (동사-주어-목적어) 구조를 포함한 구조적 특성을 한국어의 SOV (주어-목적어-동사) 문법에 어떻게 반영하거나 변형하는지, 이 과정에서 원문의 시적 뉘앙스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문법적 전이(transfer) 및 재구성(reconstruction)**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입니다.
웨일스어(VSO)와 한국어(SOV)는 어순, 주어 생략 등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AI는 이러한 구조적 간극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문법적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어는 문맥상 주어를 생략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웨일스어는 주어를 명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AI는 웨일스어에서 명시된 주어를 한국어 역번역본에 그대로 반영하여 주어를 명시적으로 삽입하는 현상을 보입니다.
원문에서 함축적이거나 생략된 감정이나 상태가 웨일스어 번역본에서 구체적인 형용사나 부사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AI는 이를 다시 한국어로 옮기면서 원문에는 없던 수식어를 추가하여 의미를 확장하거나 동작의 양상을 구체화합니다.
웨일스어의 문장 연결 방식이나 절 구성 방식이 한국어 역번역본에 영향을 미쳐, 원문과는 다른 접속사 사용이나 문장 종결 방식의 변화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AI가 중간 언어의 어휘를 가장 유사하다고 판단하는 한국어 어휘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원문의 미묘한 뉘앙스를 벗어나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미세한 변화가 발생합니다.
제공된 「자화상」의 예시를 통해 AI 번역의 구체적인 전이 현상을 분석합니다.
원문: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주어 '나' 생략)
역번역: "나는 홀로 가만히 깊이 들여다봅니다."
분석: 웨일스어 번역본에서 명시되었을 주어(예: Rwy'n)가 한국어 역번역본에 "나는"으로 명시적으로 반영되어, 한국어의 주어 생략 경향이 무시되었습니다.
사례 1: 감정의 명시화 (가을)
원문: "가을이 있습니다."
역번역: "그리고 슬픈 가을이 있습니다."
분석: 원문의 함축적인 분위기가 '슬픈'이라는 명시적인 감정 형용사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추가된 수식어: 슬픈)
사례 2: 감정의 추가 (사나이)
원문: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역번역: "그리고 외로운 사나이가 있습니다."
분석: 원문의 담담한 묘사에 '외로운'이라는 감정적 수식어가 추가되어 톤이 변화했습니다. (추가된 수식어: 외로운)
사례 3: 동작의 구체화 (귀가)
원문: "미워져 돌아갑니다."
역번역: "미워져 성큼성큼 돌아갑니다."
분석: '돌아가는' 행위에 '성큼성큼'이라는 동작의 양상을 나타내는 부사가 추가되어 동작이 구체화되었습니다. (추가된 수식어: 성큼성큼)
원문: "논가 외딴 우물을"
역번역: "논가 낯선 우물에 다다라,"
분석: 원문의 '외딴' (고립감)이 역번역본에서는 '낯선' (인지적 거리감)으로 미세하게 변화했습니다. 웨일스어 단어(dieithr - strange/unfamiliar)의 선택이 원문의 정서적 뉘앙스를 미세하게 변형시킨 사례입니다.
원문: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역번역: "가을과 사나이가, 추억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분석: 이 구절은 가장 큰 의미론적 변화를 보입니다. 원문의 함축적인 시적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게"라는 직설적인 부사(웨일스어: yn ddidrafferth)의 추가로 인해 시적 여운과 깊이가 다소 평이하게 변형되었습니다.
AI의 웨일스어-한국어 번역 결과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시적 함축성의 손실: AI는 중간 언어의 영향을 받아 주어, 형용사, 부사 등을 명시적으로 추가합니다. 이는 정보 전달에는 효율적이지만, 원문의 간결함과 함축성, 즉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적 여백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감정적 톤의 변화: 원문이 담담하고 관조적인 어조를 유지하는 것과 달리, 역번역본은 '슬픈', '외로운', '성큼성큼' 등 감정이나 동작의 양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전반적인 감정적 톤이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번역의 '투명성' 문제: 다단계 번역에서는 중간 언어인 웨일스어의 문법적, 어휘적 특성이 최종 결과물에 **'흔적'**을 남깁니다. 이는 AI가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언어 구조 자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 개입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류가 아닌 '해석'의 차이: 역번역본의 차이는 단순히 번역 오류라기보다는, AI가 웨일스어 텍스트를 기반으로 원문의 의미를 '해석'하고 '재구성'한 결과로 보아야 합니다. AI 번역은 언어학적 분석의 중요한 도구이자, 인간 번역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