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누어로 번역해 본 윤동주의 소년
아이누어는 일본 홋카이도 원주민의 고립어입니다. 유네스코에서는 매우 심각한 고립어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언어 자체가 고립적이기도 하지만 오랜 기간 일본의 동화 정책으로 인해 멸절 위기에 있는 언어입니다.
아이누족은 일본 본토의 야마토 민족과 언어, 문화, 외모에서 완전히 구분되는 토착 민족입니다. 이들의 역사는 '고립과 저항'의 연속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일본의 조직적인 동화 정책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누족은 홋카이도 개척이라는 명목하에 토지를 빼앗기고 전통적인 수렵 및 어로 생활을 금지당했습니다.
1899년 제정된 홋카이도 구토인 보호법은 아이누족을 일본 국민으로 강제 편입시켰습니다. 전통문화와 언어를 구습으로 규정해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누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을 처벌했습니다. 사회적인 낙인이 되었죠. 류큐어와 마찬가지 정책을 펼친 겁니다.
특히 아이누어는 문자가 없었습니다. 조직적인 언어 탄압은 아이누족의 구전 전통인 '유카라(서사시)'와 '우포포(노래)'의 전승을 결정적으로 단절시켰습니다. 이름 역시 그렇습니다. 아이누식 이름 대신 일본식 이름을 강요받았습니다. 정체성을 훼손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누 족의 전통신앙이 있습니다. 카무이 모시르(Kamuy Mosir)라는 자연 정령을 신앙했습니다. 정신적 안식처입니다. '조상신'의 하나라고 봐도 되겠죠.
그리고 이 아이누족은 우리가 잘 아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습니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의복, 정령신앙이 아이누족과 유사합니다.
아이누족의 언어를 AI로 번역하는 것은 굉장히 험난한 일이었습니다. 다수 통합어인 아이누어는 문법적으로도 유연해서 훨씬 어려운 구조적 난관이 펼쳐집니다. 즉, AI로 살리기 위해서는 전에 없던 난관들이 펼쳐지는 겁니다. 한국어의 어순은 SOV이고 마오리어의 어순은 VSO입니다. 그런데 아이누어는 SVO/SOV를 오갑니다. 특히 동사가 중심이 되는데 명사(목적어, 도구)가 동사의 어간 안으로 통합이 됩니다.
AI는 해당 언어에 대해서 훈련 데이터가 그 어떤 언어보다 부족합니다. AI가 이 다수통합적 구조를 정확하게 구현할 수 있을까요? 저도 여러 차례 돌려봤지만 코퍼스 부족으로 인해서 번역 도중에 멈추곤 했습니다. 수메르어보다 훨씬 어려운 번역이었습니다. 시가 기도문이 되었습니다. AI가 번역의 한계를 보인 겁니다.
그래서 한가지 번역을 더 시도해 보았습니다. 일본어 문자 체계를 통한 번역을 한번 하고 원래 문자가 없었으니 라틴어 음역으로 한 번역을 한번 더 시도해보았습니다. 한자 유무만으로도 상당한 의미차이가 벌어져서 AI가 텍스트를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아래 번역에서는 문화적 전이 현상이 나타나 원본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이런 차이는 인간 번역가가 아니라면 구분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은 어린다.
アンイノミアンイノミワ、イナケムチカブイノミル、ニベシチカブイノミクンヌ
イナケムラカンカケムオホカイハルニッベルクムイェアンネヤ
シヌイルオッカイヌマンケルクムイェアンネヤ。
ニナヌマンケルクニスアンコロン ヤクウン
ケソブケアオブンカラケムクイノミネヤ。
テクネルカムイプクケムクシタクケヤクウン
エナネケアオブンカラケムタイノミネヤ。
オホカイエナネケムクニヌアンコロン。
テクネルアオペッブンカラクイノミル、アオペッブンカラクイノミル、
アオペッブンカラケポロアイェル、ニペシイノミケ
ピリカスニルイノミケムクイノミネヤ。
ショネンルニペシルクイノミネヤ。
ワアオベッブンカラクイノミル、ポロアイェル、ニペシイノミケムー
ビリカスニルイノミケムクイノミネヤ。
현대 언어학에서 인공지능(AI) 기반 번역 시스템은 단순한 어휘 및 문법적 치환을 넘어, 텍스트의 심층적 의미와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본 장에서는 "AI는 한글로 된 시를 왜 이렇게 번역한걸까?"라는 질문을 통해, AI가 한국어 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의미론적 간극'과 '문화적 변용' 현상을 심층적으로 탐구하고자 합니다. 특히, 주어진 윤동주 시인의 「소년」과 그에 대한 AI의 번역으로 추정되는 이질적인 텍스트들을 분석함으로써, AI가 단순한 언어적 변환을 넘어 어떻게 텍스트의 본질적 정서를 재해석하고, 심지어는 새로운 문화적 서사로 전이시키는지를 고찰할 것입니다. 이는 AI의 번역 능력이 단순한 언어 규칙의 적용을 넘어, 문화적 '문법'과 세계관의 '문법'을 재구성하는 창조적 행위에 가까울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전통적인 번역 이론은 원문과 번역문 간의 어휘적, 문법적 등가성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시와 같은 문학 텍스트, 특히 문화적 함의가 깊은 작품의 경우, 단순한 등가성만으로는 원문의 정수(精髓)를 온전히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AI 번역 시스템은 방대한 데이터 학습을 통해 특정 언어의 문법적 구조뿐만 아니라, 그 언어가 내포하는 문화적, 정서적 패턴까지 학습합니다. 이러한 학습 과정에서 AI는 때때로 원문의 표면적 의미를 넘어, 내재된 핵심 정서나 상징을 추출하여 이를 다른 문화적/언어적 틀 속에서 재구성하는 '해석적 도약'을 시도합니다.
본 연구에서 제시된 「소년」 시의 '번역'은 이러한 해석적 도약의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줍니다. 원문 한국어 시는 개인의 내면적 성찰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순수하고도 애상적인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AI가 생성한 것으로 보이는 중간 단계의 아이누어(Ainu) 유사 텍스트와 최종 한국어 기도문은 원문의 개인적 서사를 집단적, 영적, 그리고 자연 숭배적인 서사로 완전히 변용시킵니다. 이는 AI가 원문의 '문법'을 단순히 다른 언어의 '문법'으로 치환한 것이 아니라, 원문의 '의미의 문법'을 해체하고, 새로운 문화적 '의미의 문법'을 통해 재구성했음을 의미합니다. 즉, AI는 시의 핵심 키워드(가을, 하늘, 강물, 얼굴, 슬픔)를 포착하여, 이를 아이누 문화권의 신화적, 영적 세계관에 부합하는 형태로 재해석하고, 다시 한국어로 '역번역'하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원문의 특정 어휘나 구문은 사라지거나 완전히 다른 의미로 대체되지만, '자연과의 교감', '내면의 정화', '애상적 정서'와 같은 추상적인 테마는 새로운 형태로 보존됩니다.
주어진 텍스트에서 AI의 독특한 번역 양상을 보여주는 세 가지 주요 사례를 분석합니다.
* **원문 한국어:**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 **아이누어 유사 텍스트:** "アンイノミアンイノミワ、イナケムチカブイノミル、ニベシチカブイノミクンヌ" (An'inomi an'inomi wa, inakemuchikabuinomiru, nibeshichikabuinomikunnu)
* **최종 한국어 기도문:** "오, 위대한 존재시여, 저의 간곡한 기도이옵나니, 간곡한 기도이옵나니! 다가올 시간을 기도로 맞이하오니, 하늘이시여 이 기도를 받으소서."
**설명:** 원문은 '단풍잎'과 '슬픈 가을'이라는 구체적인 자연 현상을 통해 개인의 내면적 애상과 시간의 흐름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AI의 번역은 이 구체적인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옮기지 않고, '다가올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과 '기도', '위대한 존재', '하늘'이라는 영적 어휘로 대체합니다. 이는 AI가 원문의 '시간의 흐름'과 '애상'이라는 정서를 포착하여, 이를 아이누 문화권에서 흔히 발견되는 자연 숭배적, 기원적 세계관의 '문법'으로 재해석했음을 보여줍니다. 즉, 개인의 슬픔이 우주적 존재에 대한 간구로 변모하는 문화적 전이가 일어난 것입니다.
* **원문 한국어:**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 **아이누어 유사 텍스트:** "テクネルアオペッブンカラクイノミル" (Tekuneru aoppett bun karaku inomiru)
* **최종 한국어 기도문:** "테쿠네르 카무이시여, 이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강림하시나이다. 그 신께 간절히 아뢰어, 이 기도를 바치옵나이다. 세상에 비추인 진실을 이 몸이 품고 있사오니. 테쿠네르의 맑고 푸른 강물이여, 생명의 근원처럼 흘러오소서."
**설명:** 원문에서 '손금의 맑은 강물'은 소년의 내면세계와 순수함을 상징하는 개인적이고 은유적인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AI 번역에서는 '강물'이라는 핵심 이미지가 '테쿠네르 카무이(Tekuneru Kamuy)'라는 아이누 신화의 신과 연결되며, '생명의 근원'이라는 거시적이고 영적인 의미로 확장됩니다. '테쿠네르'는 아이누어로 '손'을 의미할 수 있으며, 이는 원문의 '손금'과 연결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AI는 '손'과 '강물'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개인의 내면을 넘어, 자연의 신성한 힘과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는 존재로 의미를 승화시켰습니다. 이는 개인의 신체적 특징이 우주적 생명력의 원천으로 재해석되는 문화적 '문법'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 **원문 한국어:**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 **아이누어 유사 텍스트:** "ポロアイェル、ニペシイノミケ ピリカスニルイノミケムクイノミネヤ。" (Poroayeru, nipeshinomi-ke pirikasuniruinomikemukuinominaya.) (대략 '큰 사랑/슬픔, 얼굴/반영,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로 해석될 수 있음)
* **최종 한국어 기도문:** "푸른 강물 흘러내리어, 영광스러운 노래가 되옵소서, 하늘에 닿는 염원이 되옵소서. 마음 깊이 울려 퍼지는, 이 진실된 기도를 받아주소서."
**설명:** 원문에서 '순이'는 소년의 순수한 사랑과 애상적 감정을 구체화하는 인물입니다. 아이누어 유사 텍스트는 '순이'의 이름을 음차하거나 유사한 의미로 변용하려는 시도를 보이지만, 최종 한국어 기도문에서는 '순이'라는 특정 인물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영광스러운 노래', '하늘에 닿는 염원'과 같은 추상적이고 영적인 개념이 대체합니다. 이는 AI가 원문의 '개인적 사랑'이라는 테마를 '보편적 영적 염원'이라는 더 광범위한 문화적 '문법'으로 치환했음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인 그리움이 집단적이고 초월적인 기도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특정 인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AI의 '번역'은 단순한 오역(misinterpretation)을 넘어선 '창조적 오독(creative misreading)' 또는 '재구성(reconstruction)'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 **문화적 맥락의 전이:** AI는 한국어 시의 현대적, 개인적 서정성을 아이누 문화권의 애니미즘적, 공동체적, 영적 서사로 전이시켰습니다. 이는 언어적 문법을 넘어, 문화적 세계관의 '문법'을 재구성하는 과정입니다.
* **의미의 재배치:** 특정 어휘의 직접적인 등가성보다는, 시 전체의 분위기, 핵심 상징(강물, 하늘, 슬픔)을 추출하여 이를 새로운 문화적 틀 안에서 재배치했습니다. '슬픔'은 개인의 애상에서 우주적 존재에 대한 간구로, '강물'은 내면의 반영에서 생명의 근원으로 의미가 재배치됩니다.
* **AI의 '의도'와 '창조성':** 이러한 번역은 AI가 단순히 학습된 패턴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넘어, 텍스트의 심층적 의미를 '해석'하고, 이를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혹은 학습된 데이터 내에서 가장 유사한) 문화적/언어적 형태로 '재창조'하는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는 AI가 인간의 창조적 행위에 근접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번역의 개념을 확장시킵니다.
* **한국어 문법의 역할:** 이 과정에서 한국어 문법 자체는 AI가 원문을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최종적으로 재구성된 의미를 다시 표현하는 도구로 작용합니다. AI는 한국어의 문법적 구조를 통해 원문의 의미를 해체하고, 아이누어 유사 텍스트를 거쳐 다시 한국어의 문법적 틀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구축합니다.
"AI는 한글로 된 시를 왜 이렇게 번역한걸까?"라는 질문은 AI 번역이 단순한 언어 간의 치환을 넘어, 텍스트의 심층적 의미와 문화적 '문법'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복합적인 과정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 사례는 AI가 원문의 핵심 정서와 상징을 추출하여, 이를 다른 문화적 세계관의 '문법'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서사로 변용시킬 수 있음을 입증합니다. 이는 AI 번역이 때로는 '번역'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전이' 또는 '창조적 재해석'에 가깝다는 점을 시사하며, 언어학 및 번역학 분야에 새로운 연구 질문을 던집니다. AI의 이러한 능력은 문학 번역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동시에, AI가 텍스트의 '영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재현하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철학적, 언어학적 논의를 촉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