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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혜 Jul 24. 2021

켄터키에서 마지막 3달

Photo by Devin Avery on Unsplash


재택근무가 길어지다 보니, 그리고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하다 보니 여행을 하고 가야 할 것만 같았다. 한두 달 정도 하고 가면 좋겠다 싶어서 가고 싶은 곳들을 찾아보았다. 애리조나의 세도나, 콜로라도의 덴버와 뉴멕시코의 산타페로 정하고 일단 일주일간 세도나에 다녀왔다.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우연히 연락이 된 친구와 9년 만에 만나서 같이 여행을 했다.


처음에는 여러 주에 한 달 살기를 하려고 했다. 한국에서 할 생각을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미국에서도 못할 이유가 없었다. 첫 목적지를 콜로라도로 정하고 그 주에 대해 공부를 했더니 한 달만 거주하기에는 가볼 곳이 너무 많은 주였다. 그래서 일단 2-3달 정도 있기로 결심을 하고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가려고 했었기 때문에 가지고 있던 옷의 60%를 이미 기부해버린 상태였다. 차에 모든 짐들을 싣고 떠나야 했기 때문에 가진 모든 물건들을 여러 번씩 점검하고 진짜 가져가야 하는지 아닌지 분석하고 계속해서 버리고 굿윌스토어에 기부하고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분명 나는 미니멀리스트인데 짐이 왜 이렇게 많은지. 그릇과 식기구 청소기 등 과 같은 모든 생활용품을 챙기다 보니 짐이 꽤 많았다. 두 달 정도를 계속 정리했다.


미국에 온 지 8년이 돼가는 시점이고 중서부에서만 살았어서 서부나 동부 쪽 큰 도시 근처에 살아보고 싶었다. 결심한 순간부터 하루빨리 가고 싶어 졌다. 지내던 곳이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에겐 단조롭고 너무 익숙해졌었다. 이사를 간다고 하니 다들 콜로라도에 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친구 없어 그냥 자연환경이 좋아서 가고 싶어 여행하려고.라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혼자서 훌쩍 떠나는 것은 미국에서도 흔치 않은 일임을 실감했다.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여서 나는 더 떠나고 싶었다. 어차피 여기서도 혼자 살고 있고 직장은 가깝지만 재택근무이기 때문에 여길 떠난다고 엄청 그립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지겹기도 했다. 여전히 직장은 같지만 다시 돌아올 일은 없었다. 돌아갈 마음  지금도 없다.


추웠고 조용했던 겨울 혼자서 오롯이 3달을 보냈다. 체중이 줄었었는데 잘 돌아오지 않았다. 혼자서 숲 속이나 공원을 산책하고 아파트 주차장을 걸어 다니고 유튜브 동영상들을 보고 아파트의 모든 가구들을 사진 찍어 올리고 사람들이 와서 사가고 그랬다. 일주일에 한 번 친구도 학교에서 일하는 날에 맞추어서 오피스에 나가서 일을 했다. 오랜만에 학교를 가니 좋았다 한 두 명 정도의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고 내가 일하는 층에는 거의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일을 하다가 친구의 오피스에 가서 한 시간 반 정도 이야기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학생들이 없는 학교는 어색하고 쓸쓸한 모습이었다.


팬데믹 이후로는 평일에도 아파트 주차장에 차가 많았다. 남은 자리에 주차를 하고 우편함을 확인하고 3층으로 올라간다. 많이 오르내리는데 항상 허벅지가 아프고 숨이 찬다. 3층에 도착했을 때, 건강에 좋은 거야라고 매번 생각한다. 앞집 강아지들이 내 발소리를 듣고 종종 짖고 주인이 Hey stop come here 이렇게 소리를 높인다. 나는 조금 서둘러 열쇠로 문을 열고 내 집에 들어간다. 오른쪽에 붙여놓은 훅에 열쇠를 걸고 신발을 어 오른쪽 벽 쪽에 두고 가방은 소파에 올려둔다. 집 공기가 차갑다. 히터를 69도로 맞추고 옷을 갈아입고 핸드폰을 들고 소파에 눕는다 이것저것 보다가 밥을 먹어야 할 것 같다. 어제 시켜먹고 남은 팟타이를 프라이팬에 올리고 파를 추가해서 다시 볶는다. 식기세척기에 접시와 포크를 넣고 주방을 정리하고 다시 소파에 눕는다. 거실을 본다. 어둡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어둡다. 아이케아 조명들도 다 팔았다. 아이케아 물건들은 올리면 바로 팔린다. 거실 천장에 있는 조명이 지난 주말에 꽃을 비춘다. 꽃을 좋아해서 그리고 꽃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매주 꽃을 사서 두세 개의 화병에 꽂아두었다. 꽃은 크로거보다 홀푸드가 오래가고 싱싱하고 다양하게 팔고 조금 더 비싸다. 춥지만 발코니 문을 열고 몸으로 바람을 느낀다 상쾌하다 옷 안에 가려져 있던 피부에 차가운 바람이 좋은 느낌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다. 조용하다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만이 있다. 앞에 있는 집 2층 창문이 노랗다. 굴뚝으로 연기도 나온다. 건너편 집들의 창문들도 노랗다. 평화로운 저녁을 보내고 있을 것만 같다. 쓸쓸함 외로움 쌀쌀함 무딤 그리고 고요함이 응축된 감정을 매일 밤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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