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어제저녁부터 시작된 두통이 잠을 꽤 오래 잤음에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심각해진 코로나로 인해 앞당겨 겨울 방학을 시작한 유치원생 아이와 9시간을 full로 집에서 업무를 봐야 하는 컨디션 좋지 않은 엄마와의 24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역시, 아이와의 24시간은 롤러코스터처럼 나의 감정을 왔다 갔다 하게 만들었다.
9시 땡 하자마자 걸려온 팀장님의 전화에 긴장하며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아이는 그새를 참지 못하고 엄마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관리자에게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동안 육아를 병행하고 있다는 것을 들켜버리자,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을 들켜버린 것 같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이미 벌이진 것을 말이다.
마음을 다잡고, 끊임없는 업무 연락과 처리할 일들 사이로, 틈틈이 아이의 식사를 챙기고, 엄마가 함께 있지만 놀 수 없음에 실망하는 아이를 위해 각종 미디어들을 틀어주었다.
나의 점심은 포기하고, 아이를 챙기며 오후가 지나고 있었는데,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나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내가 대답을 친절하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이날 하루 많은 순간 내가 아이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았다.
아이가 그것을 참고 참다 터져버린 울음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아침부터 경고등이 켜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는 아프지, 일은 많지, 내 마음 같지 않은 아이는 옆에 있지....
예민해진 엄마를 아이는 본능적으로 알아챘을 것이다.
왜 엄마가 자신과 놀아 줄 수 없는지, 계속 일만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기에 나의 아이는 아직 어리다.
그리고 이날은 나도 재택근무를 하는 첫날이었다.
막 우는 아이를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바쁜 엄마를 이해해 주지 않는 아이가 너무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엄마다.
나의 아이는 막 울더니 손을 뻗은 나에 품에 안겼다.
안정을 찾은 아이가 자기 나이만큼의 조그마한 화를 실은 어조로 차분히 말했다.
"엄마! 내가 어른이 되면요!!"
그러고 한참을 있었다.
순간, 아이가 무슨 일을 할지 두려웠다.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거지? '
실체 없는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오버스럽지만 TV에서 봤던 사춘기 아이들이 부모에게 대드는 장면도 스쳐 지나갔다.
그 이후의 아이의 말은....
"짜증 낼 거예요"
아이는 양 팔을 흔들며 진심을 다해 말했다.
짜증??!!!
세상에, 너무 귀여웠다.
한 참을 고민해서 고른 말이 짜증이라니.....
나의 조그마한 아이에게 최선의 반항은 짜증인 것이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를 생각하며, 나를 되돌아보았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아이에게 짜증을 내었는가.
요즘 부쩍 자신의 주관이 뚜렷해지는 아이가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안돼'라는 말에 '왜'를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설득을 해야 하는 일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아이에게 엄마 말을 듣지 않는다며 혼을 낸 건 아니었을까?
이날 난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 아장아장 걸었을 때, 처음 엄마라고 했을 때를 떠올렸다.
너무 작아서 안아보는 것도 조심스러웠던 나의 아이를 말이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재택근무 2일째부터는 나에게 전화가 오면
"엄마, 저는 조용히 이거 하고 있을게요"라고 말하는 나의 아이.
앞으로 나와 아이가 함께할 많은 시간들이 남아 있다.
그 시간들 속에 나와 아이가 안 좋은 감정들에 흔들리지 않도록, 이제부터 호흡을 맞추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