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자마자 로그인하는 시스템과 회사의 출입문은 그대로인데, 나의 옆에 앉아 일을 하는 동료들이 바뀌어 있었다. 그야말로 젊은이들이 가득가득 사무실을 채우고 있었다.
처음 보는 직원도 있었고, 내가 휴직을 쓰기 직전에 발령 나서 벌써 발령 후 2년 차가 된 직원까지 다양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90년대 생이라는 사실!!
1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회사는 신입사원을 꾸준히 채용했고, 나의 후배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춤을 선택했지만, 나의 회사는 그동안 부지런히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휴직한 기간이 무색하게 느껴지도록, 나는 복직 후 새롭게 부여받은 업무를 잘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업무를 인계받는 동안 최선을 다했고, 기존의 업무 컨디션을 따라잡았다고 생각이 들 때쯤,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의 생각이 들었다.
나의 팀의 팀원들은 70년대 생 30%, 80년대생 50%, 90년대 생 20% 정도의 분포도를 가지고 있다.
80년대 생이 가장 많았지만, 90년대생의 존재감은 더 컸다.
70년대 생들은 말을 잘 듣던 80년대 생들과 업무를 하다가, 90년대 생들과 업무를 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자신들의 부담감을 80년대생에게 미루기 시작했다.
그중 나는 이러한 난해한 문제를 미루기 가장 좋은 포지션이었다.
80년대 생이고, 중간관리자의 직책을 가지고 있으니, 은근슬쩍 나에게 미루는 일들이 많아졌다.
70년대 생들에게는 당연히 해야 하는 야근, 회식과 같은 업무 외의 일들이, 90년대 생들에게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인 것이다. 그 외에 소소한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소위 말하는 조직을 위한 일들까지, 계속해서 일어나자 팀 내 어느 누구 하나 만족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도 젊은 꼰대 었다. 야근, 회식은 당연한 일들로 신입사원 때부터 학습되어 받아들여진 상태 었고,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의 자기 합리화까지 더해지니, 가끔은 90년대 생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도 90년 대생들과 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느 순간 답답함이 밀려왔다.
나에게도 어느 정도 익숙한 70년대생은 일단 놔두고, 90년 대생들을 공부하자는 결심을 했다.
90년대생 관련한 유명한 책도 사서 읽고, 관련 다큐들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자기를 표현하는 것을 즐기고, 일상의 행복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
부의 계층이동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는 세대.
회사가 더 이상 정년을 보장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회사에 대한 충성보다는 자신의 권리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는 세대.
그래, 이거다.
70년대 생들에게 회사는 충성을 다하면 결코 해고하지 않고 정년까지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곳이지만, 90년대 생에게 회사는 언제든 자신에게 '안녕'을 외칠 수 있는 곳인 거다.
언제 헤어지자고 할지 모르는 연인에게, 최선을 다할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다음에 올 자신에게 평생을 약속할 상대를 만날 준비를 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90년대 생은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을 원하게 된 것이고, 회사는 월급을 주는 만큼만 일해주는 곳인 거다. 그리고 회사도 평생을 약속할 수 없다면, 월급 이상의 일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90년대 생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이런 꼰대 같은 우리의 조직에 맞추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90년대 생이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조직은 원래 이런 거야'라는 말을 멋들어지게 포장해서 설득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90년대 생들에게 설득당했다.
그래, 회사에 월급 이상의 충성을 다하지 말 것.
그래, 오늘 꼭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야근은 하지 말 것.
그래, 회식에 참석하기 위해 무리하지 말 것.
그래,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일들은 당당하게 개선을 요구할 것.
그동안 옳다고, 아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잘못된 것이며, 당당히 개선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90년대 생을 공부하며 알게 되었다.
나는 70년대 생을 이해는 하지만, 무작정 옳다며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고, 90년대 생을 인정하지만, 기성세대가 닦아 놓은 길들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다면, 사이다 경고를 날려 주는 80년대 생이 될 것이다.
조직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비판하지 않으며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몇 년생이라는 게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의 팀이 아직은 삐그덕하고 있지만, 내가 80년대생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 들을 하다 보면 당장은 아닐지라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데굴데굴 잘 굴러갈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