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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편 Aug 24. 2020

진급 대상자,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매일을 불안감과 싸워야 하는 그대들에게 보내는 위로

"올해 진급 대상자야?"

이 말은 진급 대상자가 된 해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인 것 같다. 

인사 관련 자료를 만들 때도 진급 대상자인 사람들에게는 별도의 표시를 한다.


진급 대상자가 된 사람은 그 한 해동 안은 특별한 사람으로 분류가 됨과 동시에 뛰어난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함께 주어진다.


진급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이래서 진급하겠어?

진급하려면 뭔가를 보여줘!!


팀 사람들도 직접 말로 듣는 안 하지만, 은연중에, 오가는 말속에 이 메시지를 숨겨둔다. 

신경 쓰지 않아야지 할수록, 진급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진급에 대한 불안감은 순간순간 튀어나온다. 


나는 진급이랑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11년의 회사 생활을 하면서 총 3번의 진급 누락을 경험했다. 

사원에서 대리가 될 때 2번, 대리에서 과장이 될 때 1번 진급 누락이 있었다. 

진급 명단에 내가 없을 때의 좌절감이란....

팀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 진급 누락을 예상을 했던 적도 있고, 아예 예상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처음 입사하고 3년 차가 되었을 때, 나의 첫 진급 누락이 있었다.

그때는, 같은 진급 대상자 중 선임들이 11명이나 있었으니, 이제 막 입사해서, 처음 대상자가 된 나는 진급은 꿈도 꾸지 않았다. 오히려 3번째 진급 대상자가 된 선배를 응원했다. 

첫 진급이 떨어진 날은, 다른 사람의 진급을 축하하며, 술을 진탕 마셨다. 


두 번째 진급 누락은, 1년 후, 팀이 바뀌고 진급 대상자가 3명이었을 때이다.

진급 대상자 3명 중 1명은 선배, 1명은 입사 동기, 1명은 나었다. 

그리고 결과가 나온 날, 나만 떨어졌다. 

이유는, 선배는 선배니까, 입사동기는 나보다 그 팀에 1년 더 있고, 나이도 많다는 것이었다. 

이날은, 술도 진탕 마시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리고는 다음 주에 휴가를 내버리고, 몇 달은 나름 화났음을 표현했던 것  같다. 

좌절감을 더 느꼈던 이유는, 입사동기 중 나와 동기 1명만 빼고 다 진급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부족한 것 같았고, 운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순간순간 밀려오는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과연 내년에는 진급할 수 있을까?  


연이은 2번의 진급 누락은, 당당했던 나의 자신감을 가져갔고, 내가 누락하는 동안, 후배들은 진급 대상자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선배라고 해도 나의 진급은 보장되지 않았다.

이 상황이 억울하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결국 그 결과의 책임은 나만 지는 것이었다. 

평소 일을 잘하다는 평가를 받았었고, 상사도 나와 일하는 것을 더 선호했던 터라, 진급 누락은 내가 더 뭘 해야 진급할 수 있을지의 답을 가져올 수 없었다. 

답은 찾을 수 없고, 내년은 될 수 있을까의 불확실성은 그렇게 나에게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과 내년에는 꼭 진급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계속되자, 몇 개월 후에는 10초마다 머리가 찌릿해오는 참기 힘든 통증을 겪기도 했다. + ∝일과 성과가 보이는 일에 집중해서 했고, 몸도 마음도 탈탈 털리고 나서야 나는 대리가 되었다.


나의 첫 진급! 

그때의 나의 기분은 한 단어로 '달콤 쌉싸름'이었다. 

진급을 했다는 기쁨과 그동안의 눈물겨운 노력들이 안쓰러워서 마냥 기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진급이 너무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리고 한 번의 더 진급 누락을 겪고 나서야 지금의 과장이 될 수 있었다. 


진급이 인생에 있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남편도, 내가 진급 누락을 겪고 좌절하고 있을 때,

'진급에 연연하지 말자'라며 나름의 위로를 건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다, 회사에서 진급을 통해 입사 후 차근차근 계단을 밝고 올라간 다는 것은, 회사 내에서 나의 능력을, 나의 자리를 보장해주는 인증서 같은 것이다. 내가 되지 못한 대리를 나의 후배들이 되고, 나는 그 후배들에게 직급이 낮으면서도 선배노릇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지 않았다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에 수반되는 자존감의 하락은 진급이라는 것을 해야만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급 대상자가 되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년의 진급을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전에 아무리 많은 성과를 내었을지언정, 진급 대상자가 된 해에 성과를 내지 않으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급을 보장하기에 1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길다. 


하지만, 불확실하다고, 두렵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진급은커녕, 회사에서의 나의 자리도 보장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다 보면, 불안감이 수그러들고, 그 일들이 쌓이면 진급으로 가는 꽃길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꽃길은 나만이 만들 수 있다. 


지금 진급 대상자인 나의 후배들을 보면, 과거의 씁쓸했던 경험들이 생각나서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그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불안감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럼에도 나 또한 그들의 진급을 보장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을 전하기도 한다. 


진급을 한 후에 느끼는 성취감과 많은 사람들의 축하는 앞으로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든든한  뿌리가 되어주기 때문에, 분명 진급은 직장생활에 있어 중요하다. 

하지만, 진급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진급은 모든 상황이 딱 잘 맞아야 할 수 있는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많이 상처 받아 온 선배의 마음으로,

진급 대상자로 하루하루를 불암감과 싸우고 있는 지금의 그대들에게 진심을 담아 응원을 보낸다. 


지금은 앞길이 안갯속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불안감을 잘 이겨내고 나의 일에 집중한다면, 

내년에는 진급에 성공한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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