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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볕이 스민 오후의 저녁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5.03.13

by 수현

하루의 시작이 달라졌다.

알람 시계는 이제 평소보다 30분 일찍 운다.

일어나 찬물로 머리를 감았다.

고등학교 때 하던 짓인데, 아침잠을 쫓아 내기에 그만한게 없다.

그때처럼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고 그다지 이른 시간도 아니면서 오늘은 괜히 찬물로 머리를 감았다.


여느때처럼 아침을 차리고 아이를 깨웠다.

미꾸라지처럼 도망다니는 녀석을 잡아 등원 준비를 시키고 유치원에 보냈다.


집에 돌아와 환기를 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9시 30분이었다.

평소 였다면 이제 막 등원을 마쳤을 시간이었다.


커피를 내려 간단히 도시락을 쌌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옆에 있는 도서관에 갈 요량으로 책과 노트도 챙겼다.


첫 출근의 알싸한 긴장감을 느끼며 차에 올랐다.

Brian Eno의 Airport 앨범을 틀었다.

기도도 하고, 명상도 했다.


30분 일찍 도착해 옆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시계를 2분에 한번씩 쳐다봐 가며, 잘 들어오지 않는 책의 글자를 눈에 넣었다.


첫 출근은 정신이 없었다. 한꺼번에 많은 정보를 입력하려니, 에너지가 많이 쓰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몰입이 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끝나고 계획대로 도서관에 갔다. 작은 하천이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뇌가 피곤한지 하품이 나왔다.

그래도 수업을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하루의 밀도가 달라졌다. 어제의 서글픔은 어느새 멀어지고 꽉 찬 기분을 느꼈다.


다음주부터는 이런 하루들이 쭉 펼쳐질 것이란 생각에, 기대하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적당히 소모되어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나왔다.

엄마도 오늘 잘 지냈어.

평소와 다른 미소가 흘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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