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16
몇달 전 예약해두었던 어린이 공연에 갔다.
봄이 채 닿지못한 3월의 공연장은 을씨년스러운 바람과 핑크빛 요술봉이 대조스럽게 그 기세를 겨루고 있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공연이 시작 되자, 아이는 작고 여린 손을 맞대어 박수 갈채를 보냈다.
그 모습이 퍽 이뻤다.
그러나 공연 중간 쯤 이르자 아이는 슬슬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답답하다, 심심하다는 아이의 짜증은 후반부로 갈수록 심해졌다. 중간 퇴장이 어려운 동선이라 무척 난감했다.
생각해보면 소요시간이 긴 공연이라 당연한거였다.
고백하자면, 부끄럽게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주지 못했다.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자 한숨이 나왔다.
치사한 생각들이 머리에 솟구쳤다.
“다음에는 이런데 오지 말자.”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었다.
아이는 전보다 더 굳은 표정이 되었다.
그 후론 말 없이 공연을 봤다.
꼭 다투고난 연인 같았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객석으로 내려와 코 앞에서 인사를 하는데도 아이는 내가 다 무안할 정도로 무표정을 지었다.
끝나고 긴 주차정산 줄을 기다리는데,
바닥만 보는 아이 뒷통수 너머로
제 엄지 손가락을 손톱으로 짓누르는게 보였다.
“왜 그걸 그러고 있어.”
다그치듯 말하자 아이가 울었다.
아주 엉엉 울었다.
“낯설어서 그래.”
아이는 얼굴에 난 온 구멍들로
물을 질질 흘려가며 서럽게 울었다.
나도 모르게 와락 아이를 안았다.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듯 구석으로 나왔다.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미안함에 솜사탕을 사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엄지 손톱이 자꾸만 떠올랐다.
작은 인간이 애를 쓰고 있었다.
왜 어른인 나와 같을거라 생각했을까.
집에 도착하자 흐렸던 하늘이 개었다.
어느새 하얀 꽃봉오리가 우리집 담벼락 옆 나무에 피었다.
가운데가 볼록히 튀어나온 모습이 꼭 그 귀여운 뱃살 같았다.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뱃살 쓰다듬기 해줄게.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많이 노래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