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17
아침에 일어나면 CD를 골라 튼다.
어떤 날은 제목이 끌려서, 어떤 날은 앨범 재킷이 좋아서 골라진 CD들은 대게 남편이 20대때부터 차곡차곡 사 모은 것들이다.
그 시절 보물 같았던 인디 가수들부터 우리나라 대중가요 앨범까지.
미국 90년대 팝 부터 아이슬란드 음악까지.
동료와 제자들의 발매앨범부터 본인 앨범까지.
그 종류와 스펙트럼은 태평양의 어종처럼 다양하고 넓다.
아침에 CD를 틀어 좋은 점은, 그 음악이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가 된다는 것이다.
잊고 지냈던 아티스트의 음악이 들리면 남편은 무척 반가운 얼굴로 잠에서 깬다.
그 시절 이 노래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누구와 어디서 들은 것인지 이야기하다보면 아침은 어느새 추억으로 가득한 시간이 된다.
물론 아이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동요 CD를 듣고 싶다며 삐진 입을 죽 내밀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민주적인 가정이 되도록 다음날엔 꼭 아이 동요 CD를 먼저 튼다.
오전에 내 책상에 앉으면 그때는 이름 없는 음악을 튼다. 이름 없는 음악이라 하면 [Meditative healing guitar music 1hour (명상 힐링 기타 음악 1시간)] 과 같은 음악이다.
주로 유튜브에서 재생 하는데, 그 음악들은 뚜렷한 구성과 형식이 없고, 대체로 반복되는 코드와 멜로디를 가진다. 쉽게 이야기 해 명상이나 쉼을 도와주는 음악이다.
생각해보니 언제부턴가 음악들의 이름을 잘 외우지 않게 되었다. 아침에 듣는 CD를 제외하면, 유튜브 playlist에 의존하며, 필요에 맞는 음악을 트는 것으로 음악 듣기를 만족하곤 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훗날 이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음악의 이름을 기억 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렇게 된다 해도 미래의 발전된 기술 속에선 상관 없을까? 아니면 그래도 후회스러울까?
미래의 내가 어떤 판단을 할 지 알 수 없는채로,
오늘도 책상에 앉아 이름 없는 음악을 들으며 가계부를 썼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름이 없는 채로 살고 있다.
지금 내 삶을 뭐라 불러야 할까.
굳이 말한 다면 전업주부다.
하루하루 할 일이 반복되며 흘러가지만,
그 안에서 뾰족한 정체성은 느끼기 어렵다.
누군가 나에게 무얼 하는 사람이냐 물으면 마음이 따갑다.
그냥 무명가수에요.
그냥 애기 엄마에요.
실제로 내가 날 무엇으로 여기는지와 무관하게
현재 내 모습은 그렇게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이름 없는 음악들이 내 삶에 흐른다.
실체 없이 사라질까 걱정하는 그것들은 분명히 내 일상을 채워주고 있다.
후회할 것이란 걱정은 부질 없다는걸 안다.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가치가 있으니까.
이름 있는 CD들처럼 살 수는 없어도,
유유히 흐르는 이름 없는 음악처럼 사는 것.
또, 그런 선택들을 섣불리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https://on.soundcloud.com/tKaUmiwUqPR7Yk2u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