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인물 탐구 / 발췌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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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매스터스
스토너의 대학교 박사과정 동료.
예리한 말솜씨에 부드러운 눈,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청년.
스토너 보다 1살 어림.
거만, 건방지다는 평판.
그러나 매우 똑똑함.
고든 핀치
스토너의 대학교 박사과정 동료.
덩치 큰 금발 청년.
23살.
셋 중에 공부에 가장 무심하지만 여러 학위를 취득하려고 시도할 정도로 욕심이 있음.
매우 사교적이고 인간관계에 능숙하여 인기가 많음.
# 발췌
그는 자신의 장래를 수많은 사건과 변화와 가능성의 흐름이라기보다 탐험가인 자신의 발길을 기다리는 땅으로 보았다. 그에게 장래는 곧 웅장한 대학 도서관이었다. 언젠가 도서관에 새로운 건물들이 증축될 수도 있고, 새로운 책들이 들어올 수도 있고, 낡은 책들이 치워질 수도 있겠지만, 도서관의 진정한 본질은 근본적으로 불변이었다. 그는 몸을 바치기로 했지만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곳에서 자신의 장래를 보았다. 장래에 자신이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장래 그 자체가 변화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변화의 도구라고 보았다. <p.38-39>
그와 그의 부모는 벌써 낯선 타인들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그는 이런 상실감 때문에 사랑이 더 커졌음을 느꼈다. <p.25>
그는 자신이 느꼈던 경이와 놀라움이 자신 안에 여전히 감춰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p.41>
그가 느꼈던 흥분과 설렘은 거기에 전혀 드러나 있지 않았다. <p.41>
이 선언과 함께, 전국에서 수천 명의 청년들이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긴장감이 마침내 깨어진 것에 안도한 듯 몇주 전 서둘러 세워진 모병소로 몰려들었다. <p.48>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엄청난 무심함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중략)
자신의 내면에서 강렬한 애국심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중략)
독일인들을 미워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p.50>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 마음 속에서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죽어버린다네. <p.53>
# 단상
스토너는 이제 굉장히 주체적인 인물이 되었다. 불안정한 전쟁 직전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미래는 ‘탐험의 발길을 기다리는 땅’이다. 그에게 장래의 속성은 이제 변하지 않는다. 장래의 주권은 이미 스토너 자신에게 있으므로, 장래는 더 이상 변화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도구일 뿐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장래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았다. 나에게 장래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변수의 흐름이다. 그래서 나는 늘 거기에 만발의 준비를 하는 식으로 내 장래를 생각해 왔다. 하지만 스토너가 획득한 주체성은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이다. 그걸 아는 자는 어떤 시련에도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죽은 것과 다름없었던 과거에서 되살아난 스토너는 이제 부모로부터 심리적 독립을 이루었다. 이제 부모는 더욱더 낯선 타인들처럼 보인다. 역설적으로 그런 낯선 부모에게서 전보다 더 큰 사랑의 마음을 느낀다. 이 말은 즉, 부모를 한 명의 가엾은 ‘인간’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예전에 부모는 그저 ‘나의 부모’였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분리된 독립된 개체로서 본 내 부모는 나와 다름없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그 역설을 나도 현재 경험하고 있으므로, 스토너의 마음이 잘 이해가 됐다.
반복되어 나오는 ‘잘 드러나지 않는’, ‘여전히 감춰져 있는’것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잘 드러나는 것’은 무엇일까? 뒤에 나오는 두 친구 ‘데이비드 매스터스’와 ‘고든 핀치’를 통해 그 두 가지를 각각 생각해 볼 수 있다. 데이비드 매스터스는 자신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청년이다. 매우 똑똑하여 그의 안에는 본질을 꿰뚫는 예리함이 있지만, 함부로 드러내는 평가 속에는 그의 거만함이 보인다. 고든 핀치는 데이비드 보다도 더욱더 ‘잘 드러나는’ 청년이다. 큰 덩치에 금발을 가졌고 (외관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잘 드러나는 인물인지가 느껴진다.) 공부에 가장 무심하나, 여러 개의 학위를 목표로 할 정도로 욕심이 있다. 그리고 매우 사교적이다. 두 친구와 자신의 관계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던 스토너는 곧 두 친구와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청춘의 쓴맛을 느끼게 된다.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기로 하자, 젊은이들은 오히려 축제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 마냥 안도하고 마치 즐거운 일인 듯 과도하게 고무되어 자원입대를 결정한다. 그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일까, 이미 학교에서 현대사의 비극을 배운 우리는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안다. 그러나 그 시절 젊은이들은 몰랐던 것 같다.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그저 명예스러운 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남북전쟁을 경험한 아처 슬론 교수는 ‘전쟁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뭔가가 죽어버리는 일’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자신은 스토너에게 전쟁 참여를 권유할 수 없다. 그러나 아처 슬론 교수는 선택에 따르는 ‘사회적 시선’도 잘 알고 있기에 스토너에게 스스로 선택할 것을 권면한다. 아처 슬론 교수의 조언을 듣고도 스토너는 입대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그 전쟁에 무심한 지 깨닫는다. 스토너는 상대국인 독일을 미워하는 마음도, 애국심도 없다. 나는 이 대목에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울지 않았던 뫼르소, 그는 후에 사람들의 혐오와 냉대의 시선을 받는다. 잔뜩 고무되어 있는 젊은이들 사이로, 입대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사는 스토너. 그 둘은 실존을 깨우친 인물로서, 드러나는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과 냉소를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의미를 쫓을수록 의미가 없어지는 삶. 어쩌면 아처 슬론 교수가 처음 읊었던 ‘소네트’에서 스토너는 그 실존의 본질을 깨달아 버렸는지도 모른다. 결국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데이비드 매스터스.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 지, 매스터스와 다르게 외곽으로 발령을 받고 여가 시간을 이용해 대학에 다니는 것을 허락받은 고든 핀치. 스토너는 <리어왕>의 미치광이를 연기하는 ‘톰’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든 핀치와 어쩌면 만나게 될 다음 대목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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