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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11장 | 독서기록#11

발췌와 단상

by 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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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췌




이제 나이를 먹은 그는 압도적일 정도로 단순해서 대처할 수단이 전혀 없는 문제가 점점 강렬해지는 순간에 도달했다. 자신이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기에 직면하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의문이 이토록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p.252>



그는 보잘것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것들 덕분에 이런 지식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울하고 역설적인 기쁨을 느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그에게 이런 지식을 알려준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움으로도 변하지 않는 무로 졸아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p.252>



그 죽음 같은 풍경이 그를 잡아당기고, 그의 의식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공기 중의 소리를 끌어당겨 차갑고 하얗고 부드러운 눈 밑에 묻어버릴 때처럼. 그는 자신이 그 하얀 풍경을 향해 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p.253>



순간적으로 그는 창가에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몸에서 자신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그러니까 그 하얗기만 한 풍경과 나무들과 높은기둥들과 밤과 저 멀리의 별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작고 멀어 보였다. 마치 그것들이 무를 향해 점차 졸아들고 있는 것 같았다. <p.253>



마른눈 속에 발을 디딜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억눌린 듯 커다랗게 울리는 것을 의식하면서. <p.253>



# 단상



스토너가 공허와 우울의 심연에 빠졌다. 그동안 누구보다 착실하게 살아왔건만, 가정과 일터 어디에서도 제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묵묵히 가정생활에 헌신했음에도 아내의 냉대는 변할 기척도 없다. 대학의 숭고함을 지키려 했던 노력은, 열등감으로 점철된 인물에 의해 함몰당했다. 그토록 사랑하는 딸조차 아내에게 빼앗기다시피 되어, 제대로 마주할 수가 없다. 인생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글로 적어보는 내내 기가 막혀 한숨이 나온다. 삶의 고통을 소설을 통해 제삼자의 시선으로 지켜보니, 인생이란 것이 참 원래 너무하고 인정머리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토너가 하얀 눈을 바라보며 ‘무’를 느끼는 장면의 고독이 참 깊다. 존재의 본질을 바깥에서 보는 것 같은 그 아득함.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잠깐 살아내는 지금 순간의 덧없음을. 그 순간을 하얀 눈으로 표현한 것이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선득하다.

가장 짧은 분량의 챕터였지만 스토너 삶의 고통이 눅진하게 들어있어 중요한 핵심 부분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집중해서 몇 번씩 읽은 장면이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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