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Deck는 어떤 동기로 만들게 되는걸까?
안녕하세요? 김성준입니다. 원래 페이스북에 짧게 써내려 가다가 글이 길어져 브런치에서 작정하고 쓰기 시작한 글입니다. 글 하나로 마무리하려 했는데, 생각이 확장되면서 다양한 소재와 이론들이 곁다리처럼 붙게 되었습니다.
시답잖은 연구자로서 글을 정리해 내려갈수록, 모든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위대하게 여겨집니다. 나이 연배 고하를 떠나서, 정말 존경합니다.
컬처 데크의 기본 개념과 현상을 1부에서 정리하고, 2부에서는 ‘어떤 동기로 만들게 되는가?’라는 화두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전에 1부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고 넘어가 보시지요. (1부: https://brunch.co.kr/@student/3 )
넷플릭스가 2009년 SlideShare 사이트에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조직문화를 정리한 컬처 데크를 업로드하였음. 페이스북 COO인 쉐릴 샌드버그는 이를 두고 “실리콘 밸리에서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문서다”라고 평가함
실리콘 밸리의 많은 기업들이 넷플릭스를 벤치마킹하여, 그들이 추구하는 문화를 명시적으로 정립하여 공개하는 일이 증가함(예: 링크드인社, Hubspot社 등)
이는, 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라고는 할 수 없음.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회사가 추구하고자 하는 조직문화를 정립한 사례들이 존재함(예: 존슨 앤 존슨, 선경그룹 등)
다만, 예전과는 다르게 조직을 제대로 갖추기 전에 컬처 데크를 먼저 정의하는 경우가 나타남. 구성원이 불과 2~3명인 상태에서 바람직한 가치 체계를 선험적으로 선언하고 공개함(예: Tettra社, Robin社 등)
인간은 의도를 가지고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생각 없이 했다가, 한참 후에서야 ‘아,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하고 되새김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그때 좀 제대로 해 볼걸’ 하고 후회하기도 하지요. 잘 모르고 생각 없이 하는 일과, 그걸 왜(why) 하는지 알고 행하는 일은 큰 차이를 빚어낼 수 있습니다. 컬처 데크를 멋들어지게 만드는데 힘을 쏟기 이전에, 그걸 왜 만들게 되는지를 알아보면 좋겠지요?
어느 조직이든 그 출발점이 있습니다. 조직을 주도적으로 설립한 사람이 있지요. 그는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여러 방면으로 의견이 분분한 학자들 사이에서도, ‘Founder’가 조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Ostroff et al., 2012).
예를 하나 살펴보지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신문과 우유 배달로 학비를 벌던 중, 커다란 고물상을 운영하던 사업가 ‘하나미쓰’가 그의 성실함을 높게 평가해서 사업 자금 5만 엔을 빌려 줍니다. 당시 일본 대기업 사원의 월봉이 80엔이었다니, 엄청난 돈을 투자받은 셈입니다.
신격호는 그 돈으로 윤활유 공장을 세우지만, 미군 폭격을 받아서 완전 불타 버립니다. 투자금 5만 엔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지요. 다시 하나미쓰에게 돈을 빌려서 공장을 세우지만, 1년 반 뒤에 또 폭격을 받아 건물과 기계가 전소되어 버리고 말지요. 하나미쓰는 신격호에게 “이것도 운명이다. 너도 살 길을 찾아라. 나는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고 살겠다”라고 위로를 하고는 떠납니다(소종섭, 2015). 신격호는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죽을 만큼 힘들었다’라고 소회를 밝힙니다. 나중에 그는 이런 말을 남기지요.
“빚은 몸안에 독과도 같아서, 결국에는 몸을 죽인다."
사업 초기의 힘든 경험 때문에 그는 ‘차입경영’을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창업주 경험은 곧 명시적으로는 경영 원칙에 반영되기도 하고, 묵시적으로는 조직문화에 투영되기도 합니다.
다음은 롯데그룹 식품사에서 일하는 주요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경영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던 분이 관찰한 내용입니다. 그는 다양한 회사를 대상으로 경영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는데, 롯데 식품사 관리자들처럼 독특한 경영 스타일은 처음 봤다고 합니다. 경영 시뮬레이션에서 빚이 발생하면, 바로 갚아 버리고, 또 빚이 발생하면 바로 갚아 버리는 행동이 매우 인상 깊었다고요. 보통은 재무 레버리지(financial leverage)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경영을 하는데, 그들은 빚만 생겼다 하면 바퀴벌레 보듯이 내쫓는다고. 그래서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참 특이하십니다. 빚이 그렇게도 싫으십니까?” 그랬더니, 관리자들이 창업주의 과거 일화를 예로 들면서, 그게 문화로 자리 잡은 거 같다고 그들끼리 추론하더랍니다.
스타트업도 그러겠지요? 당연히 ‘창업자’는 스타트업 조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연구자들은 창업자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전략적 선택이 좌우된다는 점을 고찰해왔습니다. 가령, 어떤 산업에서 사업을 착수할 것인지, 마케팅을 어떻게 전개하는지, 사업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얼마나 버텨내는지 등을 말이지요(예; Bruderl et al., 1992; Chandler & Hanks, 1998; Cressy, 1996; Gimeno et al., 1997; Parker & van Praag, 2006). 컬처 데크를 만드는 일도 창업주에 영향을 받겠지요?
제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스타트업 초기에 컬처데크를 만드는 창업주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1) 예전 직장이 반면교사가 된 경우
속된 말로, ‘거지 같은 직장 문화’로 힘들어했던 분들이 계십니다. 구성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뒷발목을 잡는 요소는 무엇인지, 그나마 남아 있던 우수한 인재들을 떠나게 만드는 원인들은 무엇인지를 관찰해 왔지요.
그리고는 어느 순간, 이렇게 결심합니다.
"내가 여기서 이렇게 힘들어하느니, 차라리 내가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합니다. 반면교사가 행하던 '짓'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이를 명확하게 선언하고 싶어라 합니다. 그 결과, 컬처데크라는 산물이 나오는 거지요.
(2) 창업 실패로 교훈을 얻은 경우
과거의 창업 경험을 통해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경우입니다. 예전에 제가 만났던 어느 스타트업 대표님의 말씀 그 자체가 이를 잘 설명해 줍니다.
“제가 첫 번째 창업을 했을 때, 운이 좋아서 그랬는지 불과 2년 만에 매출이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어떤 가치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할지, 사람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너무 바빠서 신경 못 썼다고 하기엔 왠지 변명 같고, 제가 그만큼 성숙하지 못한 거겠지요. 돈은 잘 벌리는데 내부는 이합집산 같은 분위기로 흘러갔어요. 어느 날, 개발자들이 집단적으로 퇴사를 하겠다고 하니, 제가 잡을 방법이 없었어요. 핵심 개발자들이 빠지니 서비스 장애도 빈번하고, 그러다가 폐업을 해버렸지요. 이번에 창업을 할 때는 다짐을 둔 게 있어요. 돈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회사와 문화를 만들어 보자. 그래야 지속 가능하다고요."
컬처 데크를 보다 보면, 문득 그 옛날 ‘출사표’가 생각납니다. 원래 출사표는 전쟁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뜻을 왕께 올리는 글이었습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는 중요한 일에 임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밝히는 것으로 의미가 확대되었지요.
'전쟁'(war)이라는 표현은 오늘날 비즈니스 세계를 비유하는 주된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war for business, war for market share, war for talent라는 문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요. 경영학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전략이라는 용어 자체도 그리스어 'strategos'로 유래된 단어로, 전쟁에서 적을 이기기 위한 묘책들의 조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Eden & Ackermann, 1998).
창업을 '전쟁'이라고 은유한다면, 전쟁터가 어디인지, 전쟁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전쟁을 수행하는 우리 군대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계속 생각하는 거지요. 생각이 정련되고 구체화되는 어느 지점에 이르면, 그 의지를 명확하게 천명하고픈 욕구가 생깁니다. 제갈량이 출사표를 던진 것과 비슷하게 말입니다.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진실로 우리나라가 위급하여 흥하냐 망하냐 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신하들은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무사들은 충성스럽게 밖에서 애쓰고 있습니다."
- 제갈량 출사표 서문을 각색하여 인용
(1) Valve Corporation 社
사례를 하나 살펴보시지요. 밸브(Valve corporation)社는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회사로, 하프라이프, 카운터 스트라크 등으로 유명합니다. 이 회사의 컬처 데크를 보면 그 첫 페이지부터 '출사표’ 느낌이 묻어납니다.
그들은 서문에 이렇게 명시합니다.
"1996년, 우리는 위대한 게임을 만들기 위해 출발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그 위대함을 담을 수 있는 담을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뛰어난 사람들이 최상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말이다. 이 책은 밸브를 가이드하는 원칙들을 집약한 것이다."
(Valve사의 컬처데크 다운로드: https://assets.sbnation.com/assets/1074301/Valve_Handbook_LowRes.pdf)
(2) Asana社
Asana사는 트렐로, 슬랙처럼 팀 간에 소통하고, 협업하고, 팀 프로젝트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도록 돕는 어플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2009년에 설립된 그 회사는 컬처데크에서 서두에 이렇게 밝히지요. "Asana의 미션은 모든 팀들이 수월하게 협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인류의 번영에 기여한다"라고요.
그리고는 그 회사가 탄생한 배경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Asana는 두 창업자가 페이스북에서 팀들이 협력하여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킨 협업 도구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두 창업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이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데 이 기술이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https://www.slideshare.net/asana/the-asana-culture-code-62785680
대부분의 스타트업에는 경영학에서 그토록 금과옥조로 말하는 ‘경쟁우위 원천’(source of competitive advantage)이 없습니다. 돈이 풍부합니까, 충성스러운 고객이 많습니까,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있습니까. 때로는 제품과 서비스가 구체적으로 정의되지 못한 체로 출발하기도 합니다. 겉으로 내세울만한 경쟁 우위가 별로 없습니다.
반면에, 자기네 스타트업이 중요하게 여기고자 하는 가치, 신념, 믿음,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서로 협업하는 방식 등은 구체적으로 그리고 선험적으로 ‘선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차별적인 요소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거지요. 과연 이게 진짜로 '경쟁우위'가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잠시 여기서, 경영전략 이론을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1980년대에 경영전략 이론에서 크게 주목을 받은 이론은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의 경쟁론입니다.
깔끔하게 잘생긴 이 남자의 주장을 다소 무리하지만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해 보면, “우리 군대가 어느 고지를 점령하는 게 유리할까?”입니다. 이를 비즈니스로 풀어서 보면, “우리가 어떤 산업에서 일해야 돈을 지속적으로 잘 벌 수 있을까? 그 산업 내에 플레이어들(공급자, 구매자 등) 간에 역학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우리가 상대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을까?”입니다. 가령, 화장지 산업에서 창업을 하기보다는, 고급 인쇄용지 산업에서 창업을 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요.
그런데 80년대 후반부터 경영학자들 간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화장지 산업의 평균 수익이 그리 좋지 못하지만, 그 안에서도 회사들 간에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겁니다. A회사는 업계 평균 대비 높은 수익을 지속적으로 거두는 반면에, B회사는 업계 평균보다 한참 못 미치는 현상입니다. 그런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하겠지요?
바로 이 지점에서 제이 바니(Jay Barney)가 ‘자원기반관점’을 잘 정립하여 제시하였고(Barney, 1991), 이 이론은 급격히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 이론을 다소 무리하지만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하면, “우리 군대가 지속적으로 승리를 거두려면, 어떤 인력과 무기를 갖추고, 어떤 체계를 갖추어야 하는가?”입니다. 비즈니스 맥락으로 풀어서 보면, 조직 내에 존재하는 가치 있고(value), 희소하며(rarity), 모방이나 복제가 불가능한(imitability) 자원을 보유할수록 지속적으로 높은 성과를 거둔다는 관점입니다. 특히, 이들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업이 잘 조직화되어 있다면(organization), 그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기업이 된다는 주장이지요.
두 사람과 주장을 아주 간단히 요약해볼까요? 마이클 포터는 그 잘생긴 외모만큼이나(?) 조직을 둘러싼 외부 환경을 강조하였습니다. 반면, 제이 바니는 수더분하게 생긴 외모만큼이나(?) 내면의 중요성, 즉 조직 내부에 있는 독특하고 고유한 자원을 강조한 것입니다.
경쟁우위의 원천이 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풍부한 자금, 특허, 기술력, 정보력 등이 먼저 거론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 심층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인재, 그리고 문화입니다. 제이 바니 교수는 1991년에 ‘자원기반관점’을 제대로 정립하기 5년 전인 1986년에 바로 그 점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Barney, 1986). 그는 그 논문 마무리에서 이렇게 결론을 짓습니다.
"문화는 기업들 간에 차이를 빚어내는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특히 문화는 한 기업이 지속적으로 높은 성과를 달성하게 만드는 동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그 초기에 내세울 자원이 별로 없습니다. 자금도 없고, 이렇다 할 특허도 없고, 기술력이나 정보력도 별로 없습니다. 사업 아이템도 아직은 시장에 제대로 먹힐지도 잘 모릅니다. 모든 게 불확실합니다. 그나마 확실하게 또는 구체적으로 내세워 볼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네, 그 조직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 그리고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입니다. 아울러,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이 힘겨운 전쟁을 치를 건지, 서로 어떻게 협업할 건지를 미리 규명하는 일입니다. 만일 그와 같은 선언적 가치가 실제적으로도 굳건한 문화로 정착하게 된다면, 외부 투자자에게도 매력적인 요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에어비앤비는 2012년에 시리즈 C 투자를 받습니다. 투자자는 피터 틸(Peter Thiel)로 페이팔(Paypal)의 창업주 이자, Founders Fund를 운영하고 있는 유명한 사람이지요. 에어비앤비 CEO인 브라이언 체스키를 포함한 창업자 3명은 그를 다양한 지표들이 걸려 있는 사무실로 초대를 합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중에,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조언을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피터는 이렇게 말했다지요. "문화를 망치지 마라(Don't fuck up the culture)"라고요.
의외지요? 무려 1억 5천만 달러나 투자를 한 사람이 그런 조언을 하다니요. 브라이언은 잘 이해가 안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좀 더 상세히 설명해달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피터는 "당신들에게 투자 한 이유 중 하나가 에어비앤비의 고유한 문화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Chesky, 2014).
스타트업에 계신 분들은 ‘모든 게 불투명하다’고들 하십니다. 이 아이템이 시장에서 먹힐까? 매출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까? 이익은 언제부터 날 수 있을까? 언제 누구에게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이 힘겨운 싸움을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할까? 등, 정말 모든 게 불확실하지요.
어느 창업가는 1960년대 최초로 우주 비행을 준비하는 '유리 가가린' 같은 심정이라고 말하더군요.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향해 작은 로켓을 쏘아 올리고, 그 안에 자신이 불안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 기분이라고요.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면 온갖 부귀영화를 얻겠지만, 우주로 가는 중에 터지면 장렬히 산화해야 하는 신세처럼요.
불확실성,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두려움, 조바심이 사업 초기에 ‘컬처 데크’라는 유형의 구체화된 산물을 만들어내는 동인이 아닐까 저는 추론합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투자자들이 스타트업들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당신의 스타트업은 어떤 스토리를 이루어가고자 합니까?"라고 합니다(김혜진 등, 2018). 모든 스타트업이 그 초기부터 명확한 그림으로 출발을 하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숙소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어비앤비는 2008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했습니다. 창업 계기가 흥미로운데요, 그 지역 집 값이 너무 비싸서, 창업자들이 집을 임대하고 남는 공간을 빌려 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거실에 에어 매트리스를 놓고 빌려주던 아이디어가, 침대와 아침 식사로 발전하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단지 몇 달러를 버는 게 목표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AirBed & Breakfast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차렸지요. 그리고는 그 사업 아이템에 맞는 스토리를 만들어 내려고 지속적으로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창업 후 6년이 지난 2014년에서야 "어디서나 우리 집처럼(belong anywhere)"이라는 문구를 만들어 냈지요. 이 스토리는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목적이 되었고,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Patreon社의 사례를 한번 보시지요. 이들은 2013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을 했습니다. 현재 임직원 150명이 '예술가와 팬/스폰서를 매칭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받도록 돕는 회사'입니다. 창업 초기부터 구성원들과 함께 스토리를 구체화하고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3년 간에 걸쳐 구체화를 하고, 다음과 같이 정리를 했지요(Palmer, 2017). 이들의 컬처 데크를 보면, 비즈니스의 Why, What, How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https://www.slideshare.net/TarynArnold/patreon-culture-deck-april-2017
컬처 데크를 만드는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는 마지막 항목입니다. 이 글의 1부에서 '신제도 이론'(neo-institutionalism)과 '동형화'(isomorphism)을 말씀드렸습니다.
'동형화'는 특정 제도나 규범이 효과적이라고 알려지면, 이를 그대로 복제하거나 변형하여 들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남 따라 하기'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남 따라 하기'의 힘은 때로는 무섭습니다. 남들이 하는 일을 또는 남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입니다. 주체적이지 못하게 말이지요. 한때 우리나라에서 회사마다 '인재상 정립'이 유행이 될 때가 있었지요(예; 김현기, 2003). 그 당시 많은 학자들이나 컨설턴트들이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고들 말했었지요.
이를 촉발시킨 계기는 하바드 비즈니스 출판사가 2001년에 출간한 책, [인재전쟁, the war for talent] 덕분입니다. 이 책은 '창의적인 인재가 회사 성과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동인이며, 탁월한 인재를 유인하고 개발하고 보유하는 회사야 말로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주된 내용입니다.
수많은 경영자들이 [경영자 조찬 모임]에 참석하고서는, 그저 무비판적으로 창의적 인재가 우리 회사에 필요하다고 받아들였지요. 2000년대 중반에 '귀하의 회사에 어떤 인재가 필요합니까?'라고 여쭈어보면 하나같이 가장 먼저 말씀하시는 게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였습니다. 산업 자체가 딱히 창의, 혁신과는 관계가 없는 회사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원래 이렇게 길게 쓰려던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글 하나로 끝내려고 했다가, 너무 길어져서 2부로 나누었고요. 2부에서 마치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또 길어졌습니다. 글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3부에서는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고찰해보겠습니다.
컬처데크, 어떤 장점/효과가 있을까요?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감사합니다.
참고 문헌
김현기(2003). "핵심 인재 이렇게 확보하라." LG경제연구원, Retrived from http://www.lgeri.com/report/view.do?idx=1758
김혜진, 박정리, 송창걸, 유호현, 이종호 (2018.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회사는 뭐가 다를까? 스마트북스.
소종섭(2015). "[新 한국의 가벌] #20. 신격호와 동생 9명 재벌가와 문어발 혼맥.” Retrieved from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41068
Barney, J. (1986). Organizational culture: can it be a source of sustained competitive advantage?.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11(3), 656-665.
Barney, J. (1991). Firm resources and sustained competitive advantage. Journal of management, 17(1), 99-120.
Brüderl, J., Preisendörfer, P., & Ziegler, R. (1992). Survival chances of newly founded business organization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57, 227–242.
Chandler, G. N., & Hanks, S. H. (1998). An examination of the substitutability of founders and financial capital in emerging ventures. Journal of Business Venturing, 13, 353–369.
Chesky, B. (2014, April 20). Don't Fuck Up the Culture – Brian Chesky – Medium. Retrieved from https://medium.com/@bchesky/dont-fuck-up-the-culture-597cde9ee9d4
Cressy, R. (1996). Are business startups debt-rationed? The Economic Journal, 106, 1253–1270.
Eden, C. & Ackermann, F. (1998) Making Strategy. London: Sage.
Gimeno, J., Folta, T. B., Cooper, A. C., & Woo, C. Y. (1997). Survival of the fittest? Entrepreneurial human capital and the persistence of underperforming firms.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42, 750–783.
Hartnell, C. A., & Walumbwa, F. O. (2011). Transformational Leadership and Organizational Culture. The Handbook of Organizational Culture and Climate, 225.
Parker, S. C., & van Praag, M. C. (2006). Schooling, capital constraints, and entrepreneurial performance: The endogenous triangle. Journal of Business & Economics Statistics, 24, 416–431.
Palmer, T. (2017, April 05). How to Build Culture That Lasts – art/work -behind the scenes at patreon. Retrieved from https://patreonhq.com/how-to-build-culture-that-lasts-dc25b086cef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