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2 거인의 어깨

P A R T 1 공 부 의 시 작

by 스튜던트 비

일곱 마리가 모여 얼추 계획했던 대로 팀이 완성되자, 기린이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는, 이 세상 동물들이 진짜로 공부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예요. 거북이와 여러분이 힘을 모아 ‘동물 전용 GPT’를 만들어 줘요. 이 GPT는 인간의 언어를 동물의 소리로 바꾸어 줄 수 있는 것이랍니다. 그걸 스마트폰에 탑재해서 동물들에게 나누어 주면, 세상 모든 동물들이 인간의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기린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자가 흥분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어때? 멋지지 않아? 이제는 우리도 냄새와 경험으로만 배우는 시대는 끝이야! 이젠 인간들처럼 책도 읽고 생각도 깊이 하는 거야!”


신나게 말하던 사자는 문득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아 있다는 걸 느꼈다. 기린과 사자의 계획이 너무 황당하다고 느끼는 듯, 주위 동물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두워져 있었다.


"동물들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한다고? 기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동물들이 지금까지 공부를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잖아요. 그리고 여태까지 안하고 살다가 이제 와서 무슨 공부를 시킨다고…"


카피바라가 먼저 나서서 기린의 계획에 대해 지적을 하였다. 카피바라 생각에 이 자리에서 기린에게 맞장구를 처 주다가는 기린이 여기 모인 동물들, 그리고 특히 오라클들을 언젠가 돕기로 약속했던 자신에게 계속해서 터무니없는 부탁을 할 것만 같았다.


“오래전, 지혜가 남다른 무(Moo)라는 이름의 소가 희망적인 말을 남겼어요. 그 소가 말하길, '동물들의 기억력, 판단력, 교재와 그리고 선생님'이 네 가지를 갖출 수 있다면, 우리 동물들도 인간만큼 공부를 잘할 수 있다'라고 했죠.” 1)


기린이 더 설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전설의 소 무(Moo)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무(Moo)라면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 본 동물이라면 들어 본 적이 있는, 동물 역사 최고의 천재로 추앙받는 존재였다.


"기억력, 판단력, 교재, 선생님이 좋으면 누구는 공부를 못하겠어? 그 말은 결국, 동물들이 애초에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걸 꼬아서 한 말일뿐이야."


카피바라가 여전히 납득하지 않는 듯한 말투를 보이자, 기린이 더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저는 무(Moo)가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동물들은 기억력, 판단력은 지금도 충분히 좋아요. 지금은 교재와 선생님이 문제인데, 앞으로 우리가 새로 만들 GPT가 그 역할을 해 준다면 분명 인간 이상으로도 공부를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아니 들으면 들을수록 말이 안 되는 소리를…"


카피바라가 냉소적인 태도를 감추지 않고 다시 반박을 해나가려는 순간, 회의장을 감싸는 공기 속에서 갑자기 서늘함이 느껴졌다. 동물들은 동시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바위 옆 어두운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흑표범이 앉아 있었다.


"카피바라, 과거 동물원에서 우리가 꺼내 주었을 때, 당신이 했던 말 기억하죠? '때가 되면 오라클들을 돕겠다'고. 그때하고 지금, 마음이 달라진 건 아니죠?"


“...하아.”


흑표범의 말에 카피바라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과거 그는 세 번이나 오라클의 도움으로 동물원을 탈출했었고, 기린과 흑표범에게 갚아야 할 빚이 많았다.


"알았다고 하세요."


"알았어요. 돕겠다구요."


흑표범의 강요에 카피바라가 마지 못해 답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예전에 한 약속이 있어 쉽게 거절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럼 기린의 계획에 모두 동의한 걸로 이해할게요. 그럼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당분간 자신들의 전공을 다시 머릿속에 정리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곳은 들어올 때는 자유지만, 마음대로 나가지는 못한다는 거 잊지 말아요.” 2)


흑표범의 말에 이번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기린과 흑표범 그리고 사자가 이미 방향을 정한 이상 자신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걸 동물 특유의 촉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1) 이것이 바로 동물 공부 속도의 획기적인 향상을 예측한 Moo의 법칙이다. 인간세계에는 이와 혼동하기 쉬운 Moore의 법칙이 있는데, 이는 반도체 성능의 향상을 예측하였다. Moo의 법칙의 전문과 함께 이론적 배경이 궁금하면 <부록: 동물은 10,000시간 내에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를 참고하자.


2) 기린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자금으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기린의 비자금이 궁금하다면 <부록: 기린이 마련한 비자금>을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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