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지 May 24. 2024

우리 서로의 책은 읽지 말자

읽고 싶은 마음과 잃고 싶지 않은 마음

가족은 가까운 사이지만, 아니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잘 모를 수 있다고 하죠. 어쩐지 가족에게 내 속내를 말하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뭘 그런 걸 얘기하나 싶기도 한 겁니다. 내 안에 있는 나는 가족 안에 있는 나와는 다릅니다. 가족 안에선 그냥 ‘영 별로인 나’가 실오라기 하나 제대로 걸치지 않고 널브러져 있는 거 같아요. 그런 내가 멀끔하게 생각이란 것도 하고, 아주 적당한 사회적 스킬을 부리는 걸 가족이 본다고 생각하면 너무 민망한 겁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과 남편의 무관심을 바라고 그 무심함을 좋아합니다. 가족이 나에 대해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고 내 삶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는 모습에서 사랑을 느낍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벌거벗은 인간으로만 봐주는 게 저를 안심시킵니다. 난 아무것도 아니어도 되는, 특별한 사람이 되든 말든 그냥 괜찮은 사람이구나, 싶은 거죠.


최근 아빠가 책을 냈습니다. (아버지라고 써야 할 거 같지만 아버지란 말을 한 번도 써본 적 없기에 아빠라고 씁니다) 책상에 앉아 수십 년 책을 읽고 글을 썼지만 어디에 글이 발표한 적은 없던 아빠가 시집을 낸 겁니다. 그러니 우리 가족에게 아빠의 시집 출간이 얼마나 경이롭고 축하할 일일지 아시겠지요. 그런데 저는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두어 장 쓱 읽고는 자동차 조수석에 며칠을 그냥 두었어요.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제 기분을 살펴보다 시를 한편 두 편… 읽고는 깨닫게 되었죠. 저는 시집에서 아빠가 아닌 이강문이란 사람을 보게 될까 봐, 그래서 아빠를 잃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겁니다. 아빠가 아닌 이강문의 이야기에서 내 안의 무언가를 마주할까 봐 두려웠던 겁니다. 그러니까 가족은 가족으로서만 있어야 하고, 내가 믿어온 삶의 다른 면들을 보고 싶지 않다는 저의 갇힌 생각들이 두려움의 원인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는데, 그 시절은 제게도 좀 상처였던 시간입니다. 그날들에 관한 시에 저는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을 버렸습니다.



 <빈집의 기억>


밖으로 문을 잠갔네

기다리는 두 아이들의 손과 발에 자물쇠를 달았네

아무도 없는 빈집이 되라고

엄마 아빠 돈 벌러 나간 사이

엄마 아빠만이 빈집의 유일한 열쇠가 되었네

수상한 밖이 안전한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사랑스러운 안이 위험한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성냥불에 재가 된 몸으로

안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네

불타는 안에서 불타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네

안과 밖, 불타는 빈집에 갇혀 어디로도 나갈 수 없었네


밖은 이십 년 삼십 년 화르르 번성해서

잿더미가 된 안쪽을 지키고 있네

바닷가 물거품이 된 안쪽을 지키고 있네

안에서 기다리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새카맣게 탄 엄마 아빠의 가슴 나오지 못하도록

밖은 견고한 자물쇠가 되어

화창한 안전한 밖을 지키고 섰네


흉흉한 소문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기억을 날카로운 흉기로 만들어

텅 빈 사람들이 사는 빈집을

너도나도 지키고 섰네


-이강문 <너머의 너머> 2024, 삶창


가족이란 관계의 철창을 걷어내고 한 인간이라는 책을 펼쳐보아야겠습니다. 불편하고 두렵고 난감한 감정을 극복해서 가족이라도 서로의 책을, 삶을, 존재성을 잃지 말고 읽어야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왜 책에서 바람이 불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