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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지 May 27. 2024

사람이 사람을 먹고 산다

<주머니 인간> ‘나는 너의 살이다’ 비하인드

나는 너의 살이다


저널리즘 대학원에 다닐 때 ‘나는 너의 살이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높은 산업재해 사망률을 짚은 글이었습니다. 18세기에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던 윌리엄 폭스가 “설탕 1온스를 먹는 것은 사람의 살 2온스를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현대를 사는 우리도 일상을 살며 끊임없이 누군가의 살을 먹고 산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출간한 책 <주머니 인간>에서 같은 제목과 주제로 우화를 실었는데요. 오늘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산재사망률은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늘어나는 소득의 속도에 비례해서 산재사망률도 줄어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지금 이 글을 쓰며 자료를 찾다, 작년 8월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께서 MBC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았는데요. 이상헌 국장께서 산재사망 문제를 ‘식인의 풍습‘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주머니 인간>에 수록된 ‘나는 너의 살이다’에서 하는 이야기와 같았거든요.


산재로 인한 사망뿐 아니라 질병이나 장애를 얻는 것까지 포함해 우리는 일상적으로 수많은 타인의 살을 먹고 삽니다. 내가 지내는 건물, 사용하는 전자제품, 우리 주변의 인프라들엔 사람들의 살이, 삶이, 한이 녹아있는 거죠. 우리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효율을 높이는 게, 사회경제적으로 발전시키는 게 정교한 사회적 기술들일뿐이니까요. 비정규직이나 하청의 노동자가 산재사고 위험에 더 크게 노출돼 있으니, 우리가 얼마나 교양 있고 영리하게 사람을 잡아먹는지 생각하면 산재사망 문제가 현대사회의 카니발리즘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너의 살이다‘에선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식인을 하는 후먼이라는 종족이 있었는데, 후먼 최고의 미식가가 죽고 나서 재판장에 다다릅니다. 거기서 저울에 올라가죠. 저울이 가리킨 숫자는 그가 먹은 타인의 살의 무게입니다. 미식가는 죽어 저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그 살을 품고 살이 살고자 했던 삶을 다시 살아내야 한다는 판정을 받게 됩니다. 이야기 일부를 여기에 소개합니다.



스스로 죽게 하는 방법은 차고 넘쳤다. 떨어지고 깔리고 치이고 잘리고 끼였다. 슬픔에 잠겨 서서히 익사하는 이도 있었다. 미식가는 쯔쯧 혀를 차며 바닥에 누워 있는 살덩이들을 주워 먹었다. 두리번두리번 누가 보는 건 아닌지 염려하면서도 한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향과 맛과 식감을 즐겼다. 미식가는 짭짭대며 미식을 계속할 수 있는 새롭고 기발한 그러나 윤리적인 방법들을 구상했다.


사람을 먹는 후먼들은 그것을 이식異食이 아니라 미식美食이라 믿었다. 미식은 특권이었다. 그래서 인간을 잡아먹는 행위는 타당한 전략이자 고상한 취향으로 여겨졌다. 미식가는 마음 한편에서 어떤 찝찝함을 느꼈지만 머리를 흔들며 쓸데없는 감정은 떨쳐내자고 자신을 다독였다. 그런 그가 죽은 후 심판장에 당도했을 때 적잖이 당황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 그가 얼마나 착하게, 혹은 나쁘게 살았는지 심판할 줄은 몰랐다. 아니 죽은 후 벌어질 일들은 저세상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주머니 인간> 달아실출판사, ‘나는 너의 살이다’ 中


<주머니 인간> 달아실출판사 ‘나는 너의 살이다’ 이현지


저는 그림을 그릴 때면 눈을 감고 숨을 쉬며 이야기의 인물들이 되어 느끼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눈앞에 위와 같은 화면이 나타났죠. 누더기처럼 타인의 살로 꿰매어진 인간이 다시 접시에 올라 누군가에게 먹힐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사람이 사람을 먹습니다. 누군가의 살의 살의 살로 만들어진 누더기의 인간을 통해, 산재의 위험을, 식인의 풍습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표현했습니다.



이야기 말미에 미식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토록 달았던 살의 맛이 결국 한의 맛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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