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인간>을 쓴 열두 살 아이의 마음
"엄마, 그런데 신은 누가 낳은 거야?"
어느 날엔가 아들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부쩍 죽음을 궁금하는 아이에게 나름 단련이 되었는데, 신은 누가 낳았느냐는 질문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얼버무리며 글쎄 모르겠다고, 그건 아무도 모를 거라고 서둘러 말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날을 떠올렸습니다.
초등학생 5학년쯤 점차 '나는 누구인가' 고민하던 시기, 난생처음 가족과 떨어져 2주간 뉴질랜드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이모가 다니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학 프로그램이었던 듯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가라고 해서 떠난 그곳에서 어떤 뒤집힘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간 곳은 좀 외진 마을이었고, 하숙하는 집에서 학교까지 30~40분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낯선 곳에서 그렇게 걷고 걷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에, 자신에, 우주에 잠기게 되었죠. 아파트 단지에 살며 몇 번 본 적 없는 세모집의 지붕, 그 너머 하늘을 올려다보며 떠올린 상상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여기서 밖으로 계속해서 나가면 우주의 끝을 볼 수 있을까. 우주에 끝이 있다면 그 밖이 또 있을 텐데, 그럼 그 바깥 우주의 끝도 있겠지? 그러면 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잖아. 끝이 없다는 건 뭐지? 어떻게 끝이 없을 수가 있지? 그런 건 말이 안 되잖아.'
우주가 대폭발로 생겨나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다는 가설도 있지만, 그렇다 한들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끝없이 확장한다는 게 도대체 뭔가요? 내가 사는 이 공간에 끝이 있다는 것도, 끝이 없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공간이 그러한 것처럼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에 끝이 있다는 것도, 끝이 없다는 것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면 계속해서 지나고 지나면... 계속해서 끝없이... 그러다 보면 시간이란 게 뭐지? 하는 생각에 이릅니다. 확장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물질을 쪼개고 쪼개어도,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도 절대 끝나지 않습니다. 거기에 무한 밖에 없다는 상상을 하다 보면, 무한에 빠지게 됩니다. 거기에 가라앉아 침잠하여 영원에 잠기게 되지요.
이런 고민을 이번에 낸 <주머니 인간> 중 '모든 것을 자를 수 있는 칼'에 담았는데요. 최소 입자를 찾기 위해 물질을 쪼개고 쪼개던 과학자는 결국 자기 자신 안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자를 수 있는 칼은 부피가 있는 것이라면 무조건 자를 수 있다. 무언가 잘라진다는 것은 그것에 부피가 있다는 뜻이다. 부피가 있으니 그것을 또다시 자를 수 있게 된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과학자들은 무한히, 무한히 자를 수밖에 없었다. 딜레마다. ‘무한’이라니. 끝없이, 계속해서, 영원히 잘라야 한다면 도대체 픽셀은 언제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픽셀을 찾겠다는 생각부터 모순이라는 사실에 과학자들은 절망했다.
픽셀은 없다. 픽셀이 없으면 물질도 없다. 그렇다면 이확실하고 분명한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이
세계가 진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인식하고 생각하고 결정하는 이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래, 이
걸 끝으로 한 번만 더 잘라보자.’ 모두가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과학자가 칼을 지그시 누르던 순간이었다.
다. 소리 없는 폭발과 함께 벌어진 조각 사이로 마지막 과학자가 떨어졌다.
- <주머니 인간>, 이현지, 달아실출판사
아무튼 무한을 사유하며 느낀 아득함은 제 삶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말로 설명하거나 이론으로 정리할 수 없는 이 감각을 갖고 살면 좀 가벼워집니다. 물론 일상 속에서 저열하고 찌질한 모습으로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질투하기도 합니다. 별일 아닌 것에 집착하며 자신을 괴롭히기도 하죠. 그러면서도 때때로 내 안의 아득한 무한의 감각을 되살립니다. "그래, 이 삶의 진실은 무한이다. 안이나 바깥이나 무한이다" 경을 외듯 되새기며 휘청이는 나를 저 깊이깊이 침잠시키는 거지요.
작은 아이가 "신은 누가 낳았는가"를 묻습니다. 인간은 본래 이 세상의 근원이 무한이라는 아득함 그 자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우리가 무한에서 왔으며 무한으로 간다는 숨겨진 진실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합니다. 살아온 지난한 나날들이 켜켜이 쌓여 그 물음을 덮어버리지만, 그 매캐한 시간들을 후후 불어내면 금방 드러나는 아득함에 대해 인간은 늘 알고 싶은 겁니다.
끝없는 우주를 생각했던 열두 살의 마음으로 <주머니 인간>을 썼습니다. 조금은 무섭고 때로 고독했지만 그 무섭고 고독하고 아득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