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온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텍스트
혐오와 수치심을 읽고 어떤 물줄기를 보았다.
감정의 격동/마사 누스바움
보다 일반적으로, 인간적 감정은 동물적 감정과 달리 나의 목표 및 기획에 대한 일반적 숙고와 관련해 숙고 및 수정에 종속되어 있다.
무작위로 펼쳐 적었다. 이런 문장으로 가득한 1300페이지 책이다. 대학 때 철학과 친구들 얼굴이 항상 어두웠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단순한(?) 영한 번역서가 이 정도인데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문장들은 어떤 상태일까. 차라리 원서를 사전 찾아가며 읽는 게 더 쉬울 것 같다는 답답함이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읽은 책이 1판 1쇄인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수정하신 번역자 분의 정성이 무색하게도 변경된 단어의 폰트가 다르다. 심지어 기존 폰트보다 획이 굵고 커서 볼드로 읽힌다. 흐름이 뚝뚝 끊긴다. 과속방지턱이 아니라 포트홀 수준이라 읽는 내내 화가 났다.
2. 연민: compassion, pity, > 동정: sympathy /감정이입: empathy 연민은 타인의 재난을 나에게 발생할 수 있었다고 여기며 느끼는 슬픔. 동정은 그보다 작은 고통. 감정이입은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지만 나와는 별개라는 확신이 있는 상태.
3.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아담 스미스, 루소,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 프루스트, 말러에 대한 일반적(기본적이 아니다!)인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각각의 견해는 저 모든 이들이 과거에 풀어놓은 정보를 대입하고 취한 것과 버린 것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설명되고 있다.
4. 이 책 또한 2번째 읽었을 때부터 조금씩 이해(텍스트)가 됐다. 개인적인 기록은 5번 읽고 겨우 이해된 [에로스의 종말]이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스티븐 핑커
마사 누스바움은 '넌 알 수 있어. 내가 하나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다 가르쳐줄게!'라고 한다면, 스티븐 핑커는 '이봐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는 식이다. 그의 책이 유명하고 잘 읽히는 것은 일반인도 큰 무리 없이 흐름(내용이 아니다!)을 따라갈 수 있게 해 주는 캐주얼한 문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음의 작동 원리가 아니라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하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를 설명한다. 이건 철학이 아니라 인지 심리학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매직아이도 만나볼 수 있다. 오호! 아하! 와우! 이러면서 읽었다.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제리 포더
분명하게 인지 과학이라고 찍어준다. 과격하게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스티븐 핑커는 어째서 엉뚱한 분야의 이런저런 사례들을 순전히 자기 마음대로 종합하여 우리가 40여 년간 파고 있지만 전혀 진전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지과학의 난제들을 내가 다 마스터했다며 함부로 결론지어 버리는가! 따지는 내용이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와 같은 사람의 번역인데 차이를 느꼈다. 번역 작업 때 local이라는 단어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는데 이분은 이걸 그냥 '국소적'으로, 대비되는 단어를'전국적'이라 표기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신 과정은 귀추적 추론의 전국적 결정에 국소적이고 발견법적인 근사치들을 실행한다.' 응?!. 나의 경우에는 '부분적/전체적'으로 쓰다가 후에 '지역적/전체적'이라고 바꿨는데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근본 없는 번역자는 항상 힘들다.
(주의: 자식 자랑)
아들이랑 영어공부를 하는데 picture가 나왔다. 왜 얘네들은 사진이랑 그림을 같은 단어로 쓸까? 했더니 아마도 있는데 지금 직접 볼 수 없는 걸 말하고 싶었나 봐. 아이가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영어 단어를 볼 때마다 꼭 맞는 한국어를 찾아내려고 기를 썼는데 엉뚱한 관성을 고집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의 책들은 내 기준에서 심리학 책이다. 내가 궁금해하는 걸 알려주는 책이 아니구나 깨닫고 허탈했다. 이 류의 책들은 50대의 나에게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