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출판

계속하는 삶

by easygoing

책 만들 때가 됐는데.

올해 초부터 스스로의 귀때기를 살짝 잡아당기는 중이다.

콘텐츠는 많다. 이미 '다음 책은 이걸 만들 거예요.'라고 허언증 환자처럼 막 뿌리고 다닌 것 만 해도 몇 개인가. 방에 커튼을 달기 위해 책장을 옆으로 15cm 정도 옮기는 과정에서 마스다 미리에 [여탕에서 생긴 일]이 툭! 나타났다. 시체가 번쩍 눈을 뜨는 것을 본 것 같았다.


목욕탕 책이라고 했잖아~ 이태리타월을 굳즈로 한다고 했잖아~

...

아무튼 시리즈와 겹친다. 그것과 경쟁하고 싶지 않다(뭐를?)


사실, '이제는 우리가~'을 만들 때 초심을 잃었다. 내 책은 참 후지구나. 텍스트까지 읽지 않아도 물성부터 후지구나. 창피했다. 처음 독립 출판에 진입했을 때 만 해도 집에서 손으로 오리고 접어 만든 책들이 많았다.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에 용기와 배짱과 마이너리티의 촉촉함이 넘쳐흘러 황홀했는데... 한 1년 간 갑자기 만듦새가 상향 표준화되더니만 '이렇게 만들어서 이 가격에 팔면 너무 마이너스 아닌가!?' 하는, 40대 중반의 주부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가치관의 혼란이 왔다.


작년부터 다시 시작한 번역 일이 많이 쉽고 편해서 책 만들기가 더 부담스럽다. 만들고는 싶다. 당연히.

에잇.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신예희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이주윤



아무튼 시리즈에 이어 등장한 드렁큰 에디터의 먼슬리 에세이


기획회의인지 채널예스인지에서 북 디자인 칭찬을 쏟아부었던 그 책. 1인 출판사로 알고 있는데 책 나오는 속도를 보고 한 명의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또 한 번 가치관의 혼란이(나 너무 포시랍게 살았나 봐) 왔다.

패기 넘치게도 '먼슬리 에세이'라고 써 있거든.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 육아 용품과 장난감 카테고리에 깔려 죽을 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신예희 작가도 나처럼 지구 최고의 물건을 사겠다는 남다른 각오를 가진 사람인 것 같다. '심미안 수업'을 포함하여 이전에 내가 읽었던 물건에 대한 책들은 물건의 가치를 찬양하고 이런 것을 다 알아보는 작가의 미적 감각을 뽐내는 내용이었다. 나의 고오급 취향을 단련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읽었더랬다.

이 책은 고오급 취향보다는 내가 만날 부모님께 던지는 "아이고, 엄마 아부지! 지금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예요!!" 대사의 흐름과 결을 같이 한다. 비로소 완성한 작가의 씀씀이를 의식의 흐름대로 펼쳐놓는다.

'먼슬리 에세이'에 딱 맞는 매끈한 요즘 책이다.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이 책은 앞의 책보다는 무게감이 있다. 채널예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맨 마지막 페이지 만화를 그리는 그 사람이 이 사람이다. 남들에게 강한 인상을 줄 정도의 비참함까지는 아니고, 말하기에 쪽팔릴 정도의 사건들을 시트콤처럼 윤색하여 상대방을 웃게 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이런 사람들이 알고 보면 엄청 예민하다. 나를 던져 사람들을 웃기고 진이 빠져 집에 돌아가면서 '나 때문에 사람들이 웃었다.'가 아니라 '나 때문에 기분 상한 사람 없었겠지'를 생각하는 혼자 짐 지는 자.

무려 조선일보에 칼럼을 3년이나 썼다는 얘기를 읽고 검색해서 읽어 봤는데. 사진을 보고 빵 터졌고, 글을 읽고 또 빵 터졌다. 맘대로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어진 역할에 영혼을 갈아 넣어 메서드 연기 중이라는 게 느껴졌다.


이 시리즈는 특이하게 다음 편 미리보기가 있다.

다음 편은 술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보다 더 심각한 내용인 것 같다.(샘플만 봤지만)


아무튼 시리즈도 그렇고 뭔가 집단의 기운이 느껴진다. 책읽아웃 집합이랄까? 작가 풀이 한정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소비자 층이 비슷한 책들을 고르고 있는 내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좀 더 지켜봐야겠다.(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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