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3일
여행을 다녀왔다.
3년 만에 처음으로 집 반경 20km (아, 큰엄마 장례식 때 봉화 갔었구나..)를 벗어났다.
네 식구 한 번도 안 싸우고 정말 한 번도 안 싸우고 다녀왔다.
조식 시간에 따라나서는 아이들을 보고 정말 많이 컸구나 싶어 기쁘고 슬펐다.
시폰 원피스 차림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출발하는 딸아이를 보고 그동안 내가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으면 항상 뭔가 후줄근했던 이유가 여행자 모드였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너는 참 유럽 배낭족 언니 같아. 그게 칭찬이 아니었다. 샤워 후에 드라이를 하고 스포츠 샌들 말고 스니커나 구두를 신고 화장을 하고 일상보다 살짝 화려한 옷차림으로 - 관광객 스타일로 착장해야 하는 거였다.
계획은 바닷가에 그늘집을 치고 앉아 몰래 마스크를 벗고 책 읽다가 오는 거였는데 아들이 1분마다 '엄마 와바'를 반복해서 한 권만 겨우 읽고 왔다. 바닷가에서 책을 읽으려면 반드시 그늘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직사광선 아래서 백색 모조지로 된 책을 펼쳤다가 순간적으로 눈이 머는 경험을 했다.
늘 그렇듯 유명 관광지나 맛집은 패스하고 오로지 숙소에서만 버티다가 왔다. 그래도 어질러 놓고 나가도 청소해주고 밥을 차리지도 치우지도 않아도 되는 2박 3일은 꿀이었다.
집에 돌아와 짐 풀고 빨래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모래 지옥은 앞으로 최소 두 달은 흘러야 탈출이 가능할 것 같다.)
출발하기 전날 밤 12시까지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정리하는 나를 보고 딸이 '극한직업이구나.' 한마디 던졌다. 주부는 참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