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
널 매장시켜 버리겠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왕따 시키겠다는 말이었다. 1년 간 매일 축축한 베개를 끌어안고 풀다 풀다 막혀버린 코 때문에 입으로 숨을 쉬며 잠이 들었었다.(내가 이렇게 내성적인 사람이다!)
중학생 때 뒷번호 애들(키 큰 애들)이 어떤 아이의 지시에 따라 단체로 나를 모른 척해서 필사적으로 태연한 척하며 앞번호 애들(키 작은 애들)과 어울렸던 시기가 있었다. 30년 넘게 덩어리로 지내고 있는 4명의 친구들 중 그때 같은 반이었던 두 명이 몇 년 전(!)에 갑자기 그때 네 편 안 들었던 거 미안했다고 사과를 하는 바람에 기억이 났다. '괜찮아, 그때 너네 때문에 힘들었던 건 티도 안 날 만큼 다른 큰 일들이 많았었어.'라고 쿨하게 받아줬다. 밤에 생각해보니 화가 났다. 힘들었다 그때. 더 큰, 다른 힘듦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 그렇게 친했던 고년들이 내 반대편에 서서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던 것도 힘들었다. 상처는 남아있지만 14살짜리 두 년들을 마흔이 넘은 내가 용서 안 하면 어쩔 것인가.
사실 그때 앞번호 친구들의 '너네(몰려다니던 뒷번호 패거리) 너무 나대면서 학교 분위기 휘젓는 거 짜증 나. 너네 때문에 학교 오는 게 싫을 때도 있어'라는 말에 쥐똥만큼이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야겠다 깨우쳤던 성장의 기억도 있다.
가까운 이들이 통째로 나에게 등을 돌린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이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도 견디고 버티기 힘든 일이었다.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일부러 한 김 빠진 후에 읽었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와 같다.
안 나온다.
자극적인 사생활 폭로 이야기는 안 나온다.
참담했다. 피해자가 피를 흘리며 도와달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좀 더 확실히 파괴되어 홀딱 벗고 죽기를 원했다. 넷플릭스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섹스 스캔들이구나 잔뜩 기대했는데 그 얘기가 안 나오니 시시하다며 자리를 떴다. 피해자의 소식이 들릴 때마다 실망감을 떠올리며 혹시 뭐라도 나올까 싶어 피해자를 밟아댔다. 좀 피해자스럽게,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다 까발려 줄 테니 저 좀 살려주세요 빌기를 바랐다. 그러면 이 오갈 데 없는 가여운 여자아이에게 몹쓸 짓(정확하게 어떤 짓을 했는지 자세하게 알고 있는)을 한 그놈을 정의의 이름으로 우리가 혼쭐 낼께, 그게 인지상정이지. 이 플롯은 호화롭게도 미국씩이나 가 있는 다른 사건의 그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안희정이 한 짓은 범죄다. 그녀의 직장 동료들, 여의도 사람들, 기자들 그리고 구경꾼들이 한 짓은 범죄가 아니다. 아니, 범죄다. 아슬아슬하게 아닌 것 같겠지만 범죄가 맞다고 생각한다. 피해자가 당한 무수한 범죄들 중 애초의 사건 가해자만 징역 3년 6개월의 처벌을 받았다. 나머지 가해자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있다.
#김지은입니다 #성폭력 #피해자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