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현실, 아름다운 서사
몇 년 전에 내 책갈피 목록에 들어 있던 [등의 일기]가 책으로 나왔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 업데이트가 되질 않아 걱정했었는데 무사히 책을 만들었다는 것에 기뻤다.
가혹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글은 참 덤덤하다.
끊임없는 자책으로 몸에 새겨진 조심스러움 때문일까?
다이내믹한 표현이 가능할 정도의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서 일까?
태국 여행에서 컨디션이 좋아진 것을 보고 역시 현실이 문제였구나 싶어 안타까웠고 좋아진 컨디션이 조증 삽화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내 시간과 겹쳐지면서 서글펐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몸이 아픈 것도 병이고 에너지가 차오르고 몸이 가벼워진 것도 병이라니.
그녀는 그녀가 죽을힘을 다 해 쥐어짜 낸 용기를 나눠준다. 읽어보면 안다.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척추 기립근에 힘이 들어간다. 웹사이트의 글을 읽을 때는 너무 아슬아슬해서 저러다 죽으면 어떡하지 걱정했었는데 책을 다 읽고, 마음이 놓였다. 고마웠다.
매년 공포의 계절이던 나의 겨울들이 떠올랐다.
입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애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불가능했다.
돈을 모아 비수기에 맞춰 제주도나 동남아 3박 4일을 다녀온 적도 있는데 방 밖을 나가지 않고 싶어 하는 폐쇄적인 아이들 때문에 바닷물에 발도 못 담가보고 더 지쳐 돌아오곤 했다.
남쪽 지방으로 피난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주변에 제주도 한 달 살기가 유행이었다. 아주 적게 계산해도 체제비로만 한 달 100만 원 이상이 필요했다. 남해 쪽 저렴한 펜션은 어떨까 싶어 알아봤는데 아이들이 싫다고 해서 불발되었다. 한계점에 달했을 때 이사를 했다. 30년짜리 대출을 끼고 원래 집에서 200미터 떨어진 다른 동으로. 층수를 높였고 오전 11시부터 일몰까지 직사광선이 들어오는 남서쪽에 내방을 만들었다.
자기만의 방이 생겼어요 울프 언니
내 방 천장은 이사 올 때 한 도배로 깨끗한 흰색이고 무늬도 없다. 그녀에게도 이런 날이 올 것이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