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은 있어요
쉽게 많이 만들 수 있는 상품을 하나 끼워 넣으세요.
매듭 팔찌를 만들어 파시는 영매듭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분은 매일 퇴근 후 하루 2~3시간 정도 작업한 결과물들을 마켓에 들고 가서 파신다고 했다. 팔찌의 가격은 5천 원 전후. 나도 몇 년 전에 밤마다 매듭을 땋던 시절이 있었는데 뜨개와 다름없이 한 땀 한 땀. 속도에 한계가 있는 일이다.
눈이 보이세요? 물었더니
눈으로 보고 하는 게 아니죠^^ 하고 웃으셨다.
초고속으로 해도 한 개 당 작업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리고, 어떤 팔찌를 어떤 매듭으로 어떤 실을 사용하여 만들 것인지 고민하는 데 며칠이 걸리는데, 그걸 어떻게 5천 원에 파세요? 물었더니
저는 직업이 따로 있잖아요. 제가 좋아서 만든 작업물을 누군가 사 간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득이에요 하셨다.
저는 안 그런데요. 몇 번씩 뜯고 다시 만들어야 해서 지치고 힘들어요.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거예요. 쉽게 만들 수 있는 상품 기획하시면 그것 만들면서 스트레스 푸실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에코백.
오버로크 재봉틀이 있으면 진짜 1시간에 2개씩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오버로크 재봉틀. 검색했더니 비용이...
일단 수익이 나서 돈이 만들어지면 사자.
가방의 세계로 점핑
익사 직전에 빠져나왔다.
전 세계 모든 핸드메이드 가방을 검색하고 패턴을 연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추리고
가장 간단한 것을 찾았다가
아무리 그래도 이건 포기할 수 없지- 하면서 다시 복잡해지고
새로운 방향으로 다시 검색해서 패턴을 연구하고
비용과 품을 계산하고
가장 간단한 것을 찾았다가
또 뭔가 아주 작은 나만의 디테일이 있어야지- 하면서 다시 복잡해지고
찜질팩 시작할 때랑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정보는 너무 많고 소화는 안되고, 마음은 급하고
기록을 남겨 본다.
1. 첫 번째 가방.
유튜브 등을 검색하니 가방 만드는 게 굉장히 쉬워 보였다. 아, 이건 그냥도 만들 수 있겠는데? 하면서 패턴 없이 그냥 아무 원단을 집어 막 자르고 막 박아서 만들었다. 2분짜리 영상을 보고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5시간. 모든 일에는 지켜야 할 순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접이 다 터지고 사이즈도 안 맞아 망. 경솔함의 결과를 잊지 않기 위해 들고 다닌다.
2. 두 번째 가방
원단을 직접 보고 사고 싶었다. 이케아에 가서 키친 크로스와 쿠션 커버, 리퍼 코너를 뒤져 이것저것을 집어 왔다. 원하는 느낌을 내기 위해 선택한 린넨과 폴리 안감 접근은 좋았지만 가방의 기본인 옆선이 안 맞았다. 흐늘거리는 가방은 입을 파파 벌려서 중간 여밈이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자석 똑딱이를 달아보려 했으나 안감을 뜯고 심지를 붙이는 작업을 다시 하기엔 에너지가 부족해서 포기. 겉감은 2장에 1만 원 하는 린넨 키친 크로스인데 2번째 장은 안 예뻐서 못 쓰고 안감은 폴리 혼방 쿠션 커버를 썼으므로 기실 비용이 1만 원을 넘어가서 망.
3. 세 번째 가방
에코백 하나로 5년을 쓰는 내게 가방이 2개나 생겼다. 친구들에게 SOS를 쳤다. 얘들아, 내가 가방을 더 만들어 보고 싶은데 명분이 없다. 친구 하나가 14인치 노트북 넣고 다닐 가방을 주문해 주었다. 허리 수술한 애한테 숄더백을 만들어 주면 안 되는데... 양심을 접어두고 제작에 몰입했다. 똑딱단추도 지퍼 속주머니도 장착했다. 쿠션 커버를 뜯어 만들다 보니 세로로 긴 패턴이 나왔다. 친구는 키가 크니까 길어도 예쁠 거라 합리화했다. 꽤 만족스러워 직접 노트북을 넣고 고양이 미용실을 다녀왔는데, 가로로 넓어야 노트북 넣고 빼는 게 편하다는 걸 깨달아서 망. 완성 소식을 못 알리고 있다.
4. 네 번째 가방
원하는 가방의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대강의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원단을 비싼 걸 샀다. 한 조각의 남김도 없게 하겠다며 또다시 최소공배수를 계산하고... 찜질팩 만들 때와 똑같은 실수를 또다시 반복했다. 숫자가 나왔다는데 흥분해서 식서 방향 체크 안 하고 꼼꼼히 접은 후 홀라당 잘라 원단 한 마를 통째로 날리는 것까지 똑같이 재현했다. 원단 로스에 집착하다 사이즈 미스로 망. 뭘 넣고 다니기에 너무나 애매한 사이즈이고 재단이 서툴러 직사각형들이 모두 제각각이라 형태도 이상하다. 마음이 무겁다.
5. 다섯 번째 가방
돈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 덜어보고자 찜질팩 때문에 대량 구매해 놓은 원단을 사용했다. 가방 사이즈만 생각하자. 아까워하지 말자. 다짐하며 과감하게 재단했다(물론 남은 조각들은 곱게 접어 지퍼백에ㅎ). 모든 시행착오를 극복했다 기뻐한 순간 가방끈이 자꾸 흘러내려서 망. 가방에도 핏이 있기 때문에 특히 이렇게 흐느적한 여름 가방은 가방끈의 길이와 간격을 가방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계산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2번 접어 박아 가장 두꺼운 부분인 끈을 가벼운 가방 몸체에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지만 여하튼 성취감이 매우 컸다.
학원에서 돌아온 딸에게 완성본을 자랑했더니
그거 설마, 팔려고 만든 거 아니지?라고 대못을...
그런 색을 누가 사냐면서, 진한 색으로 만들라고 했다.
아니, 나는 이 핑크가 너무 마음에 드는데... 남편도 이쁘다고 했는데... 같은 걸로 옅은 하늘색이랑 흰색이랑 회색 원단 벌써 주문했는데... 의욕이 다시 한번 와르르 무너졌다.
첫 번째 무너진 부분은 아래의 먼지.
뭔가 있어 보여서 바이오 워싱 린넨 100% 원단을 사용했는데 먼지가 심각했다.
나는 매일 작업 전과 후 청소를 한다. 물걸레질까지. 그러니까 저건 핑크 가방 한 개를 만들었을 때 주변에 떨어지는 먼지의 평균값인 거다. 저걸 보고, 내가 린넨 가방 만드는 걸 할 수 있을까? 내 피부와 호흡기가 버틸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여름의 아름다운 린넨 편물을 성취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산이었던 린넨 실 먼지를 결국 이렇게 만나 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