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의 기쁨과 슬픔

살아있는 자 쉬지말고 삽질하라

by easygoing

매대는 본격 오픈했지만, 물건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도 며칠을 혼이 빠져 지냈다.


A4 가로 사이즈 가격표를 만드는 데 하룻밤 꼬박. 소개 문구가 들어가는 명함 비슷한 종이 쪼가리 만드는 데 또 하룻밤 꼬박. 상품에 붙일 태그를 구상하는데 또 하룻밤. 이런 식이었다.


명함을 만들라는 주변의 강권에 따라 근 10년간 무서워하면서 동경하던 일러스트레이터 체험판을 내려받았다.


1주일이야. 딱 1주일 만 더 하고 끝내자!! 각오와 함께 출발했다.



명함을 만들고 로고를 만들고, 그려놓은 캐릭터 파일을 ai로 변환해 놓고. 인쇄 관련 작업은 다 하려고 했으나. 명함에 들어갈 아이콘 4개를 만드는 데 이틀을 썼다. 직선. 네모. 세모. 동그라미. 칠하기. 테두리. 텍스트. 자간. 장평. 폰트 변형. 힘들어서 속으로 대성통곡을 몇 번이나 했는지 셀 수가 없다.




easynamecard.gif?type=w1

파일은 완성되었으나 사용할 수 없다.

왜냐면


도메인: 물건을 보려고 가보면 골프채가 나온다.

인스타/카톡: 인스타엔 뜨개와 책 이야기 찌끔 + 찜질팩 만들기 위해 장비 산 자랑만 있다.

메일: 계정은 파 놨지만 주고받을 메시지가 없다.

주소: 다른 분들 따라서 도서관 주소를 써 본 것일 뿐.


제품은 상세 페이지 만들어서 팔면 되는데, 복부 찜질팩 사진이 좋은 게 안 나와서 계속 보류(라고 말하며 슬며시 포토샵도 라이트룸도 아닌 일러스트레이터를 더블클릭...)



명함을 끝내고 나니(이번에도 완성이 아니라 그냥 마무리로 끝냄)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마침표를 찍기 위해 프린터로 출력을 했다.


그랬다가 또 처음부터 직선. 네모. 세모. 동그라미. 칠하기. 테두리. 텍스트. 자간. 장평. 폰트 변형. 수정과 확인의 무한 루프. 종이가 아까워 이면지를 모아다가 앞, 뒤, 오른쪽, 왼쪽 돌려가며 테스트 출력을 했더니 순서가 엉켜서 이게 아까 건지 지금 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고~~~


오늘은 드디어 아이패드로 주섬주섬 그려놓은 캐릭터를 ai로 변환하는데 성공한 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셨는데 문득 무료체험 7일이 맞나? 2주 아니야? 왜 이렇게 길어? 돈 빼간 거 아닌가? 생각이 들어 어도비에 로그인을 했다가 무료 체험 일자가 이틀 남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방황 중이다. 못 해! 못한다고! 드러누워버린 나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책상에 끌어앉히는 내가 격렬하게 싸우느라 하루가 너덜너덜하다.


그 와중에 딱 2세트 만들어 놓은 복부 찜질팩이 팔려서 3개를 더 만들어 갖다 놓았는데 소통 에러로 매대를 정리 당했다. 흠


제품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로터리 칼에 손을 살짝 베었는데 피가 멈추질 않았다. 대강 밴드 붙이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원단에 피가 묻으려고 해서 멈출 때까지 작업을 중단했다. 다음날 아침까지. 그러고는 또 상침에 집착을 하면서 눈 찜질팩 하나는 9번, 복부 찜질팩은 4번 뜯었다.


너무 힘들었다. 이 열정으로 그냥 남들처럼 물건 연결해서 팔았으면 그래도 지금 상품 수가 3가지는 됐을 텐데- 후회됐다.


내가 핸드메이드 제품을 팔면서 핸드 메이딩은 안 하고 아~무도 보지 않을 BI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는 것을 보고 재봉 도와주려고 하던 분이 나를 손절했다. BI는 끝날 기미가 없고(아직 패키징은 시작도 안 했..) 원단 사 놓은 것 반도 안 써놓고 밤마다 새 원단을 구경하는 한심한 일상.


자꾸 반복되어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회의에 매번 참여해서 뜻 모를 한국말을 막 쏟아내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내 맘에 안 드는 이야기엔 귀를 닫고...


이런 삽질 얼마 만인지.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정말 행복하다.




한껏 들뜬 나의 마음은 카드 고지서가 한 방에 가라앉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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