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풍덩하는 귀한 몸
내가 누리는 최고의 사치는 매일 하는 탕 목욕이다.
아파트 공동목욕탕이 1일 1회 무료(는 아니고 관리비에 포함)
본격 목욕탕 찬사
1. 뱃속이 편안해진다.
나는 뭐 365일 24시간
토할 것 같거나, 토했거나, 배가 아프거나, 소화가 안되거나, 가스가 찼거나 하는 상태인데
(지금도 배란 때문에 아랫배에서 귓속까지 거품이 가득 찬 것 같이 빵빵하고 메스껍다!)
온탕에 들어가면 정말 70% 정도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주의: 옷 입는 순간 원상태 복귀)
2. 울어도 된다.
반신욕 자세로 팔짱 딱 끼고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어도 티가 안 난다.
콧물이 풀로 차면 냉탕 앞에 가서 찬물 세수하는척하면서 풀면 된다.
※좀 많이 울고 싶을 때는 수건을 뒤집어쓰고 사우나에 들어간다.
사우나에서 눈물과 땀을 좔좔 흘리다 보면 수분이 빠지면서 눈물도 안 나오게 된다.
☆사실 나는, 항상 무섭고 불안한 상태라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남몰래 질질 짠다 ㄴr는 ㄱr끔 눈물을 흘린ㄷr☆
3. 동네의 최신 소식을 들을 수 있다.
발가벗은 아줌마들이 풀어놓는 주변 소식과 필터링 없는 날것의 의견들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목욕탕 특유의 맑고 또렷한 음성으로 전달된다.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 연예, 해외토픽까지 빠짐이 없다.
4. 뒷정리를 안 해도 된다.
물기를 제거하거나 곰팡이 생긴 곳은 없는지 살피거나
바닥에 널려있는 머리카락을 치울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탈의실로 나오는 순간 느껴지는 뽀송함!!
5. 나를 돌볼 수 있다.
샴푸할 때 빠지는 머리카락의 양으로 어제의 스트레스 강도를 확인하고
비누 칠하면서 가슴 목덜미 겨드랑이 체크하고(조직 검사 4회차)
따뜻한 물속에서 뭉친 근육을 주물러 풀어주고
온몸에 꼼꼼하게 로션을 바르면서 몸에 뭐 생긴 거 없나 살펴보고(호화롭게 뒤꿈치 크림도 바른다)
방해받지 않고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다.
6. 똑똑해진다.
희한하게 탕에 들어가면 총기가 돌아서
온갖 아이디어가 샘솟고
더럽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빠져나가고
고민하던 일, 복잡한 사정들의 해결 방법이 탁탁 떠오른다.
(주의: 탕 밖에 나오는 순간 원상태 복귀)
최근 디프레스가 심해져서 바닥을 기고 있다.
그런데 순간순간 분노가 터진다.
화를 내는 건 조증의 증상이지만 입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울감이 심하기 때문에 조증은 아니고
갱년기이거나
정말 누구나 화낼 만한 일이거나(<이거면 좋겠는데^^)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드라마에서 신민아 우울증 표현 장면을 보고 날라차기 당한 기분을 느꼈고
바닥에 뻗은 몸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다.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와 함께 우울증 대환장 투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