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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going Jul 28. 2022

울증 대탈출

쾌차의 기록 

6월 25일 해도두리 장터 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본격적인 울증이 찾아왔다.

장마철이잖아. 날씨 탓이야. 비 그치면 좋아질 거야- 했던 어제까지 와는 달랐다.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사는 건 다, 내가 무능해서 돈이 없기 때문이야.'

깊은 울증이 시작되었다는 신호가 울렸다. 

(중요한 점은, 건강한 상태일 때나 울증이 왔을 때나 내 환경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생활비를 계산해 봤다.

남편이 매달 주는 돈에서 학원비+적금+보험료+관리비+애들 용돈+통신비 등을 제외하니 35만 원이 남았다. 인간 4명과 고양이 2마리가 먹고 입고 바르고 쓰는데 35만 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한 돈이었다. 

(중요한 점은, 이 돈의 액수 또한 항상 동일하다는 것이다.)

※7월에는 딸이 갑자기 미술 학원을 등록했고 영어학원 방학 특강비(방학엔 학원을 다 쉬자고 꼬셨지만 실패), 재산세가 추가되었다. 


끙끙대다가 주식을 움직여서 돈을 벌었다. 

꽤 큰돈이 들어왔지만 지난달과 지지난달의 마이너스를 해결하고 나니 계좌 잔고는 다시 10만 원대로 떨어졌다. 잘했다- 스스로를 격하게 칭찬해 봤지만 울증은 그대로였다.


목욕도 가고, 재봉기 운전도 해 보고, 좋아하는 작가의 새 책도 읽어봤지만 집중할 수 없었고 좌절감만 들었다.   


지난 몇 달간, 나 드디어 좋아졌나 봐! 생각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는데

이렇게 과격한 울증의 역습이라니. 



기분의 좋고 나쁨을 -10에서 +10의 수치로 표현한다면
우울증이 0에서 -5를 오갈 때, 조울증은 +5에서 -5로 쾅 떨어지기 때문에 
체감하는 충격이 더 크다는 점에서 힘들다.
그래서, 우울증 약은 -상태로 떨어지지 않도록 위로 떠받치는 작용을 하고 
조울증 약은 기분의 폭이 -2에서 +2 사이에 머무르도록 제한하는 작용을 한다.   



지나가는 이벤트가 아니었다. 

7월 8일 병원에 가서 3년 만에 약을 늘렸다. 

왕창.


약의 효과가 나타나기 전까지 사고 없이 버티기 위해 자고 또 잤다.

깨어 있어야 할 때는 유튜브와 라디오를 틀어놓고 어수선한 잡생각에 집중했다.


그리고, 7월 20일 눈을 떴는데 어제의 내가 아니었다.

만세!


7월 21일 친구 모임에 가서 

모두의 내년을 기대하는 의기 찬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다.  





대탈출 후기


1) 반복적으로 계산해 놓은 결괏값 35만 원의 메모. 약이 돌자 '아니 이게 왜 내 몫이야?' 하고는 재활용 쓰레기통에 투척 

2) 이 글을 쓰면서 모든 게 한 달 동안의 일이었다는 걸 깨닫고 정말 놀랐다. 아주 긴 시간을 날려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딱 한 달이라니!

3) 이젠, 울증이 심하게 와도 약 늘리고 2주 만에 탈출한 이번 경험을 생각하며 더 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4) '바닥을 찍어야 올라오지.'라고 평생 나를 지켜봐 온 친구가 말했다. 추락이 시작되면 바닥을 찍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안달복달하지 말자.  



1.5kg 불어난 몸무게가 살짝 아쉽지만, 당분간 약은 이 용량으로 유지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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