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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going Oct 02. 2022

미각/후각 상실의 기록

코로나가 내 몸에 남긴 흔적

코로나 후유증으로 후각, 미각이 상실되었다.

임신했을 때마다 미각 상실이 있었는데 미각과 후각이 둘 다 사라진 것은 처음이었다. 


냄새와 맛이 느껴지지 않게 되자 물 이외의 모든 것들이 다 역하게 느껴졌다.

아무런 맛과 냄새가 나지 않는 음식을 씹고 있으면

내 몸을 씹고 있는 것 같은 묘한 불안감과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데.


아니, 글쎄 

냄새를 못 맡으니 일상이 편리해지는 게 아닌가!


나는 개코 중에 개코. 탑 오브 개코다. 고달프다. 

주변에는 좋은 냄새보다 안 좋은 냄새가 압도적인 비율로 많다.

여기까지.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흥에 겨워

건식으로 사용하던 화장실 바닥 전체를 세제를 사용해서 닦아냈다.

심지어 땀범벅이 되도록 청소를 했는데 내 몸에서 냄새가 안 나서 

젖은 옷만 갈아입으면 되는 가벼움까지 누렸다.   


설거지와 쓰레기 문제도 같은 맥락으로 쉬워졌다.

(이거 쓰고 나니 약간 서글프네...)


음식 냄새가 나지 않아 과감하게 내 방문을 열고 갈비를 구웠는데(당연히 후드는 '강'으로 설정했다.)

방에 들어왔더니 그 연기와 냄새의 입자가 느껴지면서 코와 눈과 목이 불편해 창문을 열었다.

냄새와 메케함은 다른 것이었다!




지금은 코와 혀에 아주 얇은 반창고를 붙여놓은 것처럼 감각이 둔하게 느껴지는 정도로 회복되었다.

엊그제 김밥을 먹다가 재료의 질감과 식감, 온도의 조화 만으로 '이것은 맛있는 음식이다.'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내 머릿속 뉴런들이 재조합되는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재미있는 건 냄새는 첫 순간에 딱 한 번 나고, 맛은 마지막 순간에 딱 한 번 느껴진다는 것이다. 

냄새가 순간적으로 확 나고 사라지는 것도 신기한데 씹고 삼킨 후에 맛이 느껴지는 것도 신기하다.


인체의 신비여


감탄했다.


...

치자;



10년 이상 반복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작은 이벤트들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어릴 때 어른들이 '너는 지옥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거야.' 했는데 

성격이 고약하다는 게 아니라 이 얘기하는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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